지방에 살고 있던 나는 아침 일찍 시작하는 수업을 듣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새벽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가야만 했다.
지금은 몇 시 기차였는지도 가물가물하지만, 몸에 남은 피로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새벽 5시쯤에 일어나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고 인디고블루 색의 하늘을 보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을 나섰다. 안타깝게도 이때 자리 잡은 고양이들의 아침 식사 시간이 지금까지도 나를 괴롭히고 있다. MBTI J의 끝판왕인 고양이들과 사는 일은, P가 90% 이상 나오는 나에게는 아침마다 작은 전쟁이기도 하다. 이제 그 시간에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데…….
커다란 가방 안에는 수업 자료들과 필기구, 스마트폰 충전기, 화장품과 의약품이 들어있는 파우치, 틈새 시간에 아침으로 먹을 쉐이크 등이 들어 있어 항상 묵직했다.
역에서 파는 납작한 도시락을 사 새벽 기차에서 먹는 그때의 감각을 나는 아직 꽤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당시는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이라 지금보다 열차 안에서의 취식이 비교적 자유로웠다. 지금 돌이켜 보면 꽤 낭만적인 풍경이다.
시험에 합격하고 처음 교실에 들어서던 날, 얼마나 설렜는지 기쁘게 요동치던 심박수가 아직도 기억에 또렷하다.
그렇게 희망에 부풀어 있던 것도 잠시 한 명씩 자기소개가 이어질수록 점점 작아지는 내 존재감을 느껴야 했다. 번역 아카데미답게 그곳에는 통번역 대학원 졸업생, 기존 번역가, 통역가 등 실력자들투성이였다.
내 이력이라곤 고작 일본 예술대학 졸업장 하나와 일본어 학원 강사 경험, 무역회사 근무 경험이 다인데?!그때부터였을까, 나의 라운딩 숄더가 더 심해진 게……. 급속도로 말려들어 가는 나의 어깨.
‘나 따위가……. 나 따위가……!!’
수강생들의 연령대는 대부분이 30대 후반에서 40대 초중반이었는데 당시 20대 후반이었던 나는 그곳에서 가장 나이가 어렸다.
나이가 깡패라고, 다들 “어려서 좋겠네”, 젊을 때 빨리 잘 시작했네!” 하며 나를 부러워했지만정작 나는 젊었기 때문에 그 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수업을 거듭할수록 문장에서 느껴지는 인생 선배들의 기운이라고 하면 느낌이 올까?
번역이란 –아니, 글을 다루는 직업 대부분이 그러하지만- 살아온 연륜을 무시할 수 없는 일이다.사소한 단어 하나, 구절 하나가 모여 결국 그 사람의 글 냄새를 만드는데, 그 글 냄새를 나는 도무지 흉내 낼 수 없었다.나이란 단순한 세월의 중첩이 아니라 어느 한 개인의 인생이 얼마나 건강하고 맛있게 발효되었느냐 하는 하나의 표식이다. 나는 내 인생의 발효 정도를 아직 알 수 없는 단계에 있었다. 물론 지금도 잘 모르겠다!
아빠가 걱정하던 것도 바로 그러한 점과 맞닿아있었다.
“니는 사회생활도 얼마 안 해봤고, 2n년이면 짧은 인생인데 그 얕은 경험으로 우째 글을 쓸라고 그라노?”
평소 입담으로는 어디서 밀리지 않는 나지만 그 말은 되받아칠 수가 없었다.
“일하면서 쌓아가면 되지……. 그것도 다 경험이다…….”
그냥 얼렁뚱땅 대답하긴 했지만 아빠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현재까지도 마땅한 정답을 찾지 못했다.여전히 이런 경험도 해보고 저런 상처도 받아보며 건강하게 숙성되도록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너무 조급해하지 않으려고, 그저 묵묵히 시간을 견디는 중이랄까.
우리 엄마는 나에게 수많은 명언을 남겼는데, 그중에서 좋아하는 말 하나를 꼽아보자면 “무언가를 배우러 온 사람 중에 나쁜 사람은 없다.”라는 말을 꼽겠다.
쉬는 시간에는 같은 반 사람들과 커피나 차도 마시고(정말 쓸데없는 TMI지만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우유가 그렇게도 좋다. 그래서 더 어린아이처럼 보였던 건 아닐까 괜히 곱씹어 본다)저마다의 지역에서 사 온 간식거리도 먹으며 서로의 번역을 이야기했다. 다들 피곤하고 삶에 대한 어떤 무거운 부담을 안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그게 참 위로가 됐다.
번역은 혼자 하는 작업이지만, 고민은 늘 함께했다. 서로 다른 삶을 살다가 온 사람들이 같은 문장을 두고 서로 다른 각자의 언어로 머리를 싸맸다. 누군가는 리듬을, 누군가는 정확도를, 또 누군가는 문장의 향기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정답이 없기에 더 깊이 고민했고, 바로 그 고민의 틈에서 나는 조금씩 나만의 언어를 찾아갔다.
출판번역은 역시나 글을 다루는 일이라, 번역문 말고도 글을 쓸 일이 많다. 종종 시간이 남으면 책을 다 읽은 후 서평을 쓰기도 하고 언젠가 번역가로 데뷔해 역자 후기를 쓰게 될지도 모른다는 김칫국을 벌컥벌컥 들이마시며 연습 삼아 역자 후기를 써보기도 했다.
서평과 후기를 보신 선생님은 잘 써진 예시로 내 글을 종종 언급해 주셨는데, 어찌저찌 어릴 때부터 글을 끄적이던 취미가 쓸모는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내게 말씀하셨다.
“번역만 하기에는 아까워요. 요즘은 번역하면서도 자기 글 써서 책 내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꼭꼭 자기 글도 써봐요.”
??네??
그때는 그냥 흘려들었지만, 그 말은 마음 한구석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원래도 그림을 그리고 글 쓰는 걸 좋아하기는 했지만 그게 누군가에게 읽힐 만한 글이고 그것이 책으로 만들어질 가능성에 대해서는 그다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말씀은 그 생각에 잔잔하지만 짙은 금을 냈다. 어쩌면 나에게도 나만의 독창적인 서사가 있을지 모른다는 믿음이, 아주 천천히 싹을 틔웠다.
훗날 정말로 내 그림과 글이 책으로 나오게 될 줄은, 그때는 정말 상상도 못 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좋아서 했던 일이 조금씩 모여 내 언어의 모양을 만들어갔고, 그 모양은 결국 세상에 내보일 수 있는 형태가 되었다. 그저 흘려들었던 말 한마디가 나를 여기까지 이끌 줄이야.
이 한편의 짧은 글에 2년이라는 긴 시간과 과정을 전부 담을 수 없는 게 참 아쉽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번역을 배움으로써 나는 더 단단해졌고, 동시에 더 말하고 싶은 사람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그때 몸에 익히고 마음에 담은 배움들로 지금까지 한 문장 한 문장을, 나만의 언어로 성실히 번역하며 동시에 이렇게 어딘가에 글을 써 내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