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라면 누구나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혹은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사이에서 고민한다. 직업이나 적성을 이야기할 때 흔히 등장하는 주제다. 나 역시 이 두 세계 사이에서 자주 갈팡질팡하곤 한다.
그래서 오늘은, 그 괴리감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누구나 한 번쯤은 느껴봤을 익숙한 감정이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복잡한 그 감정들 말이다.
앞선 글들을 읽어온 독자라면 알겠지만, 내가 처음 번역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소설이나 에세이 같은 문학작품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다. 순수미술을 전공한 덕에 미술사나 만화, 예술, 인문학 같은 분야에도 관심이 많고, 지금도 여전히 욕심나는 장르들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문학작품을 번역하고 싶어 한다.
앞 회차에서 언급한 번역 아카데미에서는 소설, 에세이, 취미, 의학 등 다양한 장르를 공부했다. 의외였던 건, 잘할 줄 알았던 장르가 생각보다 어려웠다는 점이다.
소설과 에세이는 내가 좋아하는 장르였고 내게 가장 자연스러운 언어라고 생각했건만, 막상 실전처럼 번역해 보니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았다. 좋아하는 만큼 ‘절대 이따위로 번역하고 싶지 않아!’라는 나만의 분명한 기준이 있었고 문학은 문학답게 번역문에라도 조금은 멋이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이상한 집착이 생겨났다.
담백할 땐 담백해야 하고, 묵직할 땐 묵직해야 하는데 어느 하나 놓칠 수 없어 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내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멋들어진 문장을 만들고 싶다는 일종의 허세나 욕심이 아니었을까 싶다. 좋게 말하면 문학작품을 향한 과도한 애정이겠지.
한편으로는 ‘역시 이 장르는 나랑 맞지 않구나.’ 하고 오히려 더 푸욱 안심하게 된 장르도 있었다.
“이 분자가, 그래서 어떻게 결합한다고요?”
“세포 시냅스가 뭐 어쨌다고요?”
한치의 빗나감 없이 수학이나 과학과 관련된 장르는 진행 기간 중 몇 번이나 나를 울렸다. 다시 한번 무역회사에 다닐 때의 두려움이 떠오르기도 했다.
기계적으로 번역해도 되겠지만 원문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게 아니겠는가……. 정확히 말하면 글자는 읽을 수 있고 뜻도 알지만 머릿속으로 그 과정들이 그려지지 않는 상태다.
그럴 때면 키보드를 열심히 두드리던 손을 잠시 멈춘다.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번역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하…….”
내가 만약 흡연자라면 이럴 때 바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을 테지만 그럴 수 없으니 침대에 뒹굴거리는 고양이들의 두툼한 배에 얼굴을 묻는다.
이과 관련 도서는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았고 머리카락도 몇 가닥 뽑혀 나갔지만 내게 확실한 선을 그어주기도 했다.
샘플 번역이나 검토서를 의뢰받아도 아까워하지 않고 거절할 수 있겠다는 이상한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지금도 과학이나 수학과 관련된 책 의뢰가 들어오면 매우 정중하게 거절하는 편이다.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고 진솔한 메타인지를 기반으로 퀄리티를 최우선으로 챙기는 번역가가 좋은 번역가라고, 나는 생각한다.
관심 있고 자신 있는 분야들을 이력서에 적어 보내면, 종종 검토서나 샘플 번역 요청이 들어오곤 한다.
검토서(보통 리뷰라고도 한다)는 출판사가 책 출간을 결정하기 전에, 원서를 미리 읽을 수 있는 번역가에게 내용을 보여주고, 해당 책이 한국 시장에서 통할지, 어떤 장점과 약점이 있는지, 그리고 예상 독자층은 누구일지 등을 간략히 분석한 내용을 정리한 문서다.
그 과정에서 겪은, 울지도 웃지도 못할 몇 가지 에피소드를 나눠보려 한다. 너무 무겁지 않게 그냥 ‘그런 일도 있었구나’ 정도로 읽어주면 좋겠다.
어느 날, 미술 관련 서적의 검토서 의뢰가 왔다.
“선생님! 미술로 다양한 사고를 해보는 내용의 책인데요, 리뷰 부탁드려도 괜찮을까요?”
‘미술로 다양한 사고’라니?
미술 전공자인 나로선 그야말로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 수 없는 것 같은 이치의 주제였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검토서를 수락했고, 책을 읽어 내려가다가 점점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감지했다.
‘담당자님……. 미술……, 미술이 아니에요……. 이건 그냥 도형이에요….’
그렇다. 그 책은 내가 예상했던 다양한 미술 작품을 감상하며 사고의 폭을 넓히는 예술·인문학적 내용이 아니라, 도형을 이용해 메모하며 업무 관리나 리스크 대비 등을 하는 이른바 ‘자기계발서’였던 것이다.
이게 왜 미술이 되었나. 어디서부터 미술이 되었나. 잘 움직이지 않던 뇌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책 속의 도형 그리기와 내가 아는 미술 사이에 무언가 공통점이 있었던 걸까, 억지로 끼워 맞춰보기를 한참, 내 나름의 해답을 찾아냈다. 도형을 그리며 메모한다고 했으니 ‘그리는’ 행위에 방점을 둔 나머지 ‘그리기=미술’이라는 식이 성립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어찌어찌 검토서는 잘 마무리했지만, 그날 이후로 책 제목만 보고 들뜨는 자신을 믿지 않기로 했다. 어떤 책을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되겠다는 조금은 진땀 나는 교훈을 얻은 것이다.
또 다른 이야기를 하나 해보겠다.
내가 주로 의뢰받은 실용서들은 미술 관련 책으로, 색연필 일러스트 그리기, 수채화 일러스트 그리기, 만화 캐릭터 인체·옷 주름 그리기 등이 주를 이룬다. 예대를 나왔고 그림 실력은 없지만 어쨌든 소소하게 웹툰을 그리거나 일러스트를 그린다고 이력서에 쓰여 있으니 출판사들이 왜 이런 의뢰를 하는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의뢰들은 나도 그림을 더 배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흔쾌히 수락하는 편이다.
하루는 클립 스튜디오 프로그램에 관한 검토서 요청이 들어왔다. 클립 스튜디오는 웹툰 작가들이 자주 쓰는 프로그램이다. 출판사 측에서 내가 웹툰을 연재한 적이 있다는 이력을 보고 의뢰를 한 게 분명했다.
공교롭게도 그 의뢰가 들어왔을 때, 나는 내 만화에서 부족한 부분을 좀 더 공부하기 위해 잠시나마 웹툰 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디지털 드로잉 초급반에서 클립 스튜디오 기본기를 배우고 있었는데, 잔잔하던 생각의 수면 아래서 무언가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클립 스튜디오 사용법에 관한 책이니까, 수업 시간에 배우는 걸 정리해서 책 내용을 이해하고 쓸 수도 있지 않을까?
담당 선생님께 부탁드려서 사례비를 드리고 강의해 달라고 하면, 이 책, 어쩌면 할 수 있을지도?’
그것은 아주 위험하고 얄팍한 희망이었다.
나는 아직 번역 이력이 없었고, 뭐든 좋으니 ‘이력서의 한 줄’ 같은 시작점이 간절하던 시기였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어떻게든 쥐어짜 내다보면 결과는 나오지 않을까? 그런 막연한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몇 시간 고민해 본 끝에, 나는 이 의뢰를 고사했다. 노력하면 어찌어찌 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내가 번역하고 싶은 책도, 나답게 번역할 수 있는 책도 아니었다. 결과적으로는 ‘나다운 번역’에 대한 기준을 더 또렷이 확인한 경험이 되었다.
경력이 없거나 햇병아리일 때는 누구나 다급하고 조급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그런 조급함에 휩쓸려 잘 알지도 못하는 분야에 손을 댔다가는, 평판만 깎이게 된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건대 번역이란 나의 최선을 갈아 넣어도 어딘가에서는 오역이 생기고 늘 후회가 남는 작업이다. 더 무서운 건 한 번 책으로 출간되고 나면 번역문이 세상에 퍼져나가며 고칠 수도 없다는 점이다. 그런 일을 어정쩡한 지식과 위험한 욕심으로 시작하면 결과는 뻔하다. 내 눈에도 불안정한 게 보이면 타자의 눈에는 그 불안정함이 두 배, 세 배는 더 잘 보이는 법이니까.
내가 절대로 못 할 것 같은 분야나 아직 지식 정립이 덜 된 애매한 분야는 과감하게 버릴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은근히 염세주의적인 면이 있는데, “노력은 종종 배신하지만, 포기는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꽤 좋아한다. 하지만 일할 때의 포기는 염세주의적인 단념이라기보다는 정확하고 확실한 결과물을 내는 용기에 더 가깝다.
포기해야 할 때는 확실하게 포기하자.
이 일은 스스로 커리어를 쌓는 일이며 자기 브랜드를 구축하는 일이다.
이 글에서는 주로 검토나 샘플에 관한 경험이 많이 녹아있지만,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내가 하고 싶은 번역과 할 수 있는 번역, 또는 해야 하는 번역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좁힐까 하는 것이다.
그 간극을 좁히기 위해, 나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언어와 장르의 무게를 알고 일을 선택하는 번역가가 되기로 했다. 내가 바란 건 단순한 '번역가’라는 직함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작품에 책임을 지며 일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그걸 깨닫는 데는, 한 번쯤 얄팍한 희망에 몸을 기대어 자신의 못난 점을 톺아볼 시간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손에 쥔 책의 무게를, 욕심보다는 책임감으로 측정하고 있다.
그 무게를 감당할 준비가 되었을 때, 비로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번역도 시작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