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소도시 여행 ㅣ 타이중 #1
타이중으로 향하다.
타이완 소도시 여행의 가장 첫 도시는 바로 너. 타이중으로 정했다. 타이완은 험준한 중앙산맥이 섬을 남북으로 가로지르고 있는 지형 탓에 동서 간의 이동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교통이 다소 불편하다. 또한 고속열차가 운행을 하고 있는 서쪽 지역과 달리 동쪽 지역의 경우 아직 고속열차는 운행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섬나라인 타이완을 동서로 이동하기 보다 기차를 타고 한바퀴 돌아보는 환도여행으로 결정했다. 하지만 시계방향으로 움직일 것인지, 반시계 방향으로 움직일 것인지 고민이 됐다.
타이베이에서 서쪽에서 남쪽으로 이동하면 타이중이, 북쪽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면 이란이 나오는데 어느 쪽으로 움직일지 결정장애가 생겼다. 그러나, 고민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제 조금 익숙해진 타이베이를 떠나 낯선 소도시를 찾아간다는 두려움은 이란보다 큰 도시인 타이중에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타이중은 타이완 중부 여행의 관문으로 타이중에서 한두 시간이면 르웨탄, 루강, 장화, 자이, 아리산 등으로 여행이 가능하기에 베이스캠프로 삼아도 좋은 곳이었다. 그러니 이란보다 훨씬 큰 도시인 타이중에 마음이 움직인 건 당연했다.
타이중까지 뭐 타고 가지?
엄격히 따지면 타이베이를 벗어나는 게 타이중이 처음은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타이베이를 여행한다면 반드시 방문하는 타이베이 근교 도시인 예스진지(예류, 스펀, 진과스, 지우펀)와 타이루거 협곡이 있는 화롄도 있기때문이다. 이곳은 버스나 기차 혹은 택시투어로 많이 여행하지만 대부분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여행이다. 그러니 타이베이를 떠난 건 맞지만 단 하루만이라도 머무는 여행이 아니라서 그런지 심리적으로 타이베이를 떠났다는 느낌은 크게 들지 않았다. 이제 그런 타이베이를 벗어나려 하고 있다.
중국어도 능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지하철이 거미줄처럼 편하게 연결하고 있고 굳이 중국어를 해야 할 이유도 없는 타이베이를 떠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가지도 않고 지하철도 없고, 여행 정보도 별로 없는 타이완 소도시를 여행한다는 건 설레는 마음보다 두려운 맘이 더 컸다. 살짝은 두려운 마음으로 타이베이가 아닌 타이완 소도시에서는 머무는 첫 번째 도시 타이중으로 향하는 길. 두려운 마음을 빨리 떨쳐 버리고 싶은 욕망을 한껏 담아 타이완 초고속열차(THSR)를 이용했다. 초고속열차는 가격이 다소 비싸긴 하지만 불과 1시간이면 타이베이에서 타이중에 도착한다.
타이완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작은 나라지만 타이완 역시 초고속 열차가 운행을 하고 있다. 타이완은 일본, 중국 그리고 우리나라에 이어 지난 2007년에 초고속 열차를 개통했다. 타이완 초고속 열차는 일본 신칸센이 만든 열차로 평균 시속은 우리나라 KTX보다 조금 빠른 편이다. 타이베이처잔역에는 일반열차와 초고속열차 매표소가 따로 있고 열차를 타는 곳도 따로 구분돼 있다. 기차표를 구매하고 승강장으로 내려가 얼마 기다리지 않으니 초고속열차가 미끄러지 듯 승강장으로 들어온다. 큰 캐리어를 들고 기차에 오를 생각을 하니 대략 난감이었는데 옴마야. 타이완 고속열차는 승강장에서 계단없이 바로 탑승이 가능하니 쓸데없는 고민이었다. 기차와 기차 사이에 짐칸이 있는 것과 달리 객차 안에 마련된 짐칸, KTX보다 넓은 좌석 등 누가 시키지 않는데도 순식간에 고객평가단 모드가 장착된다. 한국에선 무신경하게 넘겨 버리던 것도 이상하게 외국만 나오면 사소한 것 하나도 일일이 비교하게 되는 건 익숙한 것을 떠나 '낯선'것에 대한 적응의 단계라고 치자. 어차피 이런 유난스러움도 익숙해지기 마련이고 그 시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짧다. 인간의 적응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여행할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왜 버스 요금이 그대로지?
약간의 긴장감, 설렘, 흥분 등 복잡 오묘한 감정이 정리되지 않은 채 타이중에 도착했다. 우리나라 지방도시들이 KTX역과 일반역이 위치가 다른 것처럼 타이중도 고속철도역은 외곽에, 일반철도역은 도시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통상 타이중역은 일반 기차역을 말하며 고속철도의 경우 타이중 고속철역이라고 구분해서 부른다. 따라서 고속철도를 이용한 경우 도심에 있는 타이중역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기차 혹은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기차이 경우 타이중 고속철도역에서 내부통로로 일반열차 역인 신우르( 新烏日 , Xinwuri)와 연결되는데 신우르 역에서 기차를 타면 약 10분 정도면 타이중역에 도착한다. 고속철도 개찰구를 나가면 타이중역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신우르역으로 몰려 가는데 문득 버스는 어떨지 궁금해졌다. 남들이 모두 '예스'할 때 '아니오'하는 용기는 왜 하필 이때 나를 용기녀로 만드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씩씩하게 안내데스크로 직진 후 물어보니 6번 출구에서 타이중역으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다고 했다. 5~6번 출구 방향을 따로 내려가니 5번 출구에는 타이완 하오싱 난터우 객운 안내데스크와 버스 정류장이 있는 것이 아닌가. 타이완의 유명 관광지인 르웨탄 등을 오가는 타이완 하오싱 버스는 타이중역을 출발해 타이중 고속철도역을 거쳐 르웨탄까지 운행하고 있기에 타이완 사람은 타이중 고속철도역에서 르웨탄으로 가는 버스를 이용하기도 한다.
6번 출구로 나가니 마침 82번 버스가 출발 대기 중이었고 서둘러 버스에 탑승했다. 타이중에서도 이지카드 사용이 가능하기에 버스에 탑승하기 전에 편의점에서 카드 충전을 했다. 버스 요금이 얼마인지 확인하려고 버스카드를 찍어 두었다가 내릴 때 다시 버스 요금을 확인하는데... 어, 뭐가 잘못됐나? 아까도 카드 잔액이 TWD979이었는데 왜 그대로 TWD979인거지? 카드가 잘 못됐나? 아니면 기계가 잘 못됐나? 이러고 있는데 아저씨가 그냥 내리면 된다는 눈짓을 보낸다. 알고 보니 타이중은 버스 요금이 10km까지 무료였던 것. 단. 이지카드 등 교통카드 소지자에 한한다. 이거 실화냐 싶겠지만 타이중에서는 실화다. 아참, 버스는 어땟냐고? 버스 요금이 공짜라는 건 좋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약 30분 정도면 타이중역에 도착한다고 했지만 차도 막히고 신호에 계속 걸리다 보니 30분보다는 훨씬 많은 시간이 걸렸다. 타이중역까지 남들이 다 기차 탈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 남들과 달리 버스를 타고 처음 만난 타이중 도시 구경이라도 하겠다 생각했지만 다음에 또 간다면 그냥 기차를 타겠다. 어차피 초행이라 어떤 노선으로 왔는지도 기억도 못하는데 시간도 절약되고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기차 놔두고 버스 타는 건 괜한 객기였다.
버스를 타고 다녀야 하는 타이중 여행, 겁먹을 이유 하나도 없어요.!!!
지하철이 없는 타이중에서 대부분 이동수단은 버스다. 얼핏 생각하면 버스 노선도 모르는데 시내버스를 이용해 관광지마다 이동하려면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외국에서 상당히 난이도를 요하기 때문에 지레 겁을 먹게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지하철이 있는 가오슝을 제외하면 다른 도시로 여행을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도 이런 이유도 한몫할 게다. 물론 그런 점에서 다소 어려운 점이 있기도 하겠지만 타이중에서라면 그런 부담은 조금 내려놔도 된다. 최근 우리나라 세종시와 부산시에서 운행을 시작한 간선급행버스(Bus Rapid Transit)는 타이중에서는 일상적인 대중교통수단이다.
타이중에서 가장 큰 대로인 타이완따따오(台湾大道) 전용차선을 달리는 간선급행버스는 복잡한 타이중 시내로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차가 막힐 염려도 없을뿐더러 이 버스만 잘 활용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가는 타이중 주요 여행지인 동해대학, 국립미술관, 고미 습지 등으로 모두 이동이 가능하다. 또한 10km까지는 모든 버스 요금이 무료이기 때문에 잘만 움직이면 타이중에서는 교통비가 거의 들지 않는다.
타이중에서 처음 버스에 탔을 때 어떤 기사분들은 영어를 잘 못해 불안한 것도 잠시, 버스 정류장마다 중국어와 영어로 안내방송을 하고 버스 내 안내판 역시 하차역에 중국어, 영어가 안내되고 있으니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간선급행버스 정류장에는 버스 번호와 버스 노선이 상세히 안내가 돼 있으니 버스를 몇 번 탈 필요도 없이 그것만으로도 바로 타이중 간선급행버스에 적응이 가능했다. 버스 시스템에 적응하고 나니 지하철 없는 타이중 여행을 망설였다는 게 머쓱해졌다. 꼭 간선급행 버스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각 호텔에는 호텔에서 관광지까지 이동해야 하는 버스번호와 버스 정류장이 적힌 안내문을 배치해 놓고 있으니 고민할 필요 1도 없는 타이중 여행이었다. 뭐든 직접 부딪치면 별 것 아니라는 걸 아는 것이야 말로 여행에서 얻는 최고의 소득일지도.
아무리 버스에 적응했다고 하더라도 타이중역은 정말 적응이 안 되긴 했다. 타이중역 근처에 숙소를 정했기에 하루 종일 신나게 돌아다니다가 저녁엔 타이중역으로 이동을 해야 했다. 한 번은 타이중역에 다 왔다고 해서 내렸는데 타이중역이 안 보여서 멘붕이었다. 알고 보니 타이중역 앞 도로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버스 정류장이 있었고 그곳의 버스 정류장 이름도 타이중역이었던 것. 타이중역은 타이중에서 가장 많은 차들이 다니는 곳 중 하나로 상당히 복잡한데 대부분의 버스들은 모두 타이중역을 거쳐간다. 따라서 버스 정류장은 타이중역이라고 부르지만 무려 타이중역 버스정류장은 7개나 됐다. 타이중역 앞은 간선급행버스정류장이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일반 버스를 타는 곳과 같이 사용을 하고 있기 때문에 노선에 따라다 버스 정류장이 전부 제각각이라 결국은 타이중을 떠날 때까지 어느 버스가 어느 정류장에 서는지 결국 알지 못했다. 그런데 또 굳이 전부 알 필요가 없는 게 자신의 호텔 가까운 곳에 있는 타이중역 버스 정류장 한 곳만 알면 되니 큰 문제는 아니었다. 지하철이 아니어도 의외로 쉬운 도시니 지하철 없다고 지레 겁먹을 이유는 하나도 없는 타이중이었다.
과연 타이중엔 무엇이 있을까.
글. 사진 이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