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소도시 여행 #타이중 2
타이중에서 가장 먼저 찾아가는 곳이 안과라니!
타이베이를 벗어나 타이중을 가야겠다고 결정한 사람들의 십중팔구는 바로 궁원 안과(宮原眼科)때문이다. 기껏 타이중까지 가서, 게다가 웬 안과냐고 할 테지만 안과에 가는 것이 맞다. 다만 그곳은 병원이 아니라 아이스크림 가게라는 것. 지진, 태풍, 화재 등을 견뎌낸 독특한 건물 외관도 독특하지만 더 독특한 건 내부다. 도서관 혹은 박물관을 연상하게 하는 내부에서 병원 시절 간호사 복장을 한 직원이 건네는 환상적인 아이스크림에 눈이 휘둥그레 해질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EYE SCREAM!. 궁원 안과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을 먹기 위해 타이중을 찾는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궁원 안과는 그런 곳이다. 타이중역에서 큰 대로변을 건너 길을 따라 내려오면 길거리에서 현지인, 관광객들이 남녀노소 불문하고 삼삼오오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곳을 발견하게 된다. 아, 저기가 궁원 안과구나! 구글 지도를 더 이상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다.
궁원 안과는 1920년대 일본인 미야하라(Miyahra) 박사가 세운 안과였는데 타이완의 유명한 베이커리인 일출(日出)에서 매입한 후 아이스크림, 펑리수, 쿠기, 차를 비롯해 다양한 디저트 등을 판매하는 곳으로 탈바꿈했다. 포장 패킹이 고급스러워 선물로도 그만이지만 가격이 만만치는 않다. 이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건 단연 아이크스림이다. 이 아이스크림이 뭐라고 묵직한 아이스크림을 받아 든 순간 다들 타이중에서 큰 일을 해 낸 것처럼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내부에는 따로 앉는 자리가 없기 때문에 길거리에 서서 아이스크림을 먹어야 하는데도 불편해하기는커녕 여행자의 낭만이라 여긴다.
길거리에 서서 먹는 것이 조금 그렇다면 이번엔 은행으로 가면 된다. 은행에서 아이스크림이라니 또 웬 뚱딴지같은 소리냐 싶지만 옛날에 은행이었던 제4신용 합작사(第四信用合作社) 역시 일출의 분점이다. 궁원 안과에서 큰길을 따라 몇 블록 걸어내려 오니 채 10분이 걸리지 않아 제4신용 합작사에 도착했다. 입구에 들어서려는 순간 센스 넘치는 인테리어에 역시! 라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궁원 안과와 마찬가지로 은행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할 뿐만 아니라 은행에서 가장 중요한 금고문을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세히 둘러보니 은행의 시설물을 그대로 인테리어에 활용했는데 독특한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건물 위쪽은 저녁이 되니 화려한 조명이 현대적이면서도 세련된 느낌을 자아낸다. 육중한 금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니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1층 2층 모두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다. 이곳저곳 둘러보는 사이에 다행히 빈자리가 생겼다.
궁원 안과에서는 볼 수 없었던 와플을 만드는 모습도 볼 수 있고 와플을 베이스로 한 아이스크림도 있고 커피도 있어 선택의 폭이 더 다양했다. 자리를 맡고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 사이 매장 구경을 나섰다. 안쪽에는 고급스러운 패킹으로 구성된 상품들이 진열돼 있는데 한쪽 부분의 타일 장식이 좀 독특하다 싶어 기웃거리고 있으니 직원이 미소를 띠며 조금 자세히 보라고 한다. 뭐가 있나 싶어 허리까지 숙여가며 뚫어져라 쳐다보니 어머나! 이게 뭐야! 동전이잖아!!! 단순한 타일 장식인 줄 알았는데 모두 동전을 활용한 것이 아닌가. 정말 버릴 것 하나 없이 디테일 하나 놓치지 않고 은행의 흔적을 이렇게 알뜰히 재현해 놓다니 새삼 놀라웠다. 이때만 해도 시간이 녹아 있는 옛 것을 이용해 현대적인 세련된 감각을 입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 타이완을 설명하는 또 하나의 문화적 특성이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타이중을 여행하는 사람들의 90% 이상은 궁원 안과에 아이스크림을 먹기 위해서 찾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타이중을 여행한다면 '궁원 안과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기'는 이젠 여행자의 정석이 됐다. 단순히 아이스크림에 끌려 찾았던 궁원 안과였지만 궁원 안과는 그 이상의 의미였다. 오래된 것이 모두 사라지고 없어지고 편리한 것만 추구하는 우리나라 문화에서 놓치고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궁원 안과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한다. 어떤가, 이만하면 일부러라도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타이중에 갈만하지 않은가?
주문했던 메뉴가 나오고 나니 낯선 타이중에서 비로소 마음을 놓는다. 역시 사람은 입에 달달한 것이 들어가 줘야 한다. 배 부르도록 아이스크림을 먹다 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타이중이 원조인 것은 없을까?
다음 이야기는 '타이중이 원조'인 것을 찾아가 봅니다.
글. 사진 이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