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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정해경 Aug 06. 2019

<영화 김복동> 우리는 김복동을 기억해야 한다.

브런치무비패스#7 <영화 김복동>을 봐야 하는 이유   

브런치무비패스 영화 #7  <영화 김복동> 

일본 아베 정권은 우리나라 대법원이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책임 인정에 대한 재판을 인정할 수 없다며 결국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 제외했다. 이를 빌미로 우리나라에 대한 경제보복조치가 도를 넘고 있는 상황이다. 아베 정권의 반성하지 않는 역사를 바라보는 심정은 착잡하다. 이런 시점에 아주 뜻깊은 <영화 김복동>이 개봉된다.  

영화 김복동 개봉일 : 2019년 8월 8일 


미디어 몽구를 통해 김복동 할머니를 담고 있다는 것을 벌써부터 알고 있었기에 영화가 개봉되면 꼭 보리라 생각했었다. 그렇게 손꼽아 기다리던 <영화 김복동>을 한 발 앞서 브런치무비패스 시사회에서 만날 수 있었다. 

<영화 김복동>은 위안부의 실태를 알리기 위한 김복동 할머니의 27년 간의 여정을 다루고 있는 영화지만 정작 이 작품의 주인공인 김복동 할머니는 이 영화를 보실 수 없다. 올해 초 김복동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할머니 평생의 소원인 일본에게 사과를 받지 못한 채 할머니는 먼 곳으로 떠나셨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살아 계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 마음에 다소 착잡한 마음으로 <영화 김복동>을 만났다. 


“나이는 구십넷, 이름은 김복동입니다"


소녀였던 김복동은 16세(만 14세)에 공장으로 돈 벌러 가는 줄 알고 나섰다가 중국에서 일본군 위안부의 생활을 했고 20대 초반이 되어서야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 지옥 같은 생활로 인해 한 사람의 생이 얼마나 철저히 부서졌는지는 굳이 더 설명이 필요하지는 않겠다. <영화 김복동>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던 한 여성이 피해자로 머무르기보다 일본군 위안부는 없었다고 주장하는 일본 정부에 대해 "내가 바로 증인이자 증거"라며 용기 있게 나섰고 27년 간 일본 정부의 만행을 알리며 투쟁해 온 시간을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다.  


중요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언론을 통해 간간히 김복동 할머니를 보기는 했지만 사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김복동 할머니가 어떤 시간을 살아왔는지는 잘 몰랐다. 김복동 할머니는 1991년 故김학순 할머니의 위안부 피해를 신고한 것에 용기를 얻어 1992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신고하게 된다. 이후 김복동 할머니는 고향인 부산 생활을 모두 정리하고 서울로 옮겨와 본격적인 증언자로 나서게 된다.  <영화 김복동>은 김복동 할머니가 수요집회는 물론이고 일본, 미국, 독일 등 세계 각국을 다니면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자신의 피해 사실을 증언하는 것을 담아내고 있다. 하지만 영화는 단지 그런 사실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일본 위안군 피해자'에 대해 모를 수가 없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피해자 할머니들의 심정을 얼마나 헤아리고 있었나는 다른 문제였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심정이 실로 어떤 것인지 김복동 할머니의 시간을 통해 고스란히 보여 준다.  그동안 영화, 혹은 다큐멘터리로 일본 위안부 피해자의 참상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조차도 사죄하지 않고 있는 일본 정부에 대해 할머니들이 가지는 심정은 막연히 내가 이해하고 안다고 생각했던 그런 것이 아니었다.  <영화 김복동>을 보는 내내 우리가 일본 위안군 피해자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 그래서일까. 영화 속에도 나오는 박근혜 정부가 정작 당사자인 일본 위안부 피해자인 할머니들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국민 정서에도 반하는 '위안부 합의'는 그래서 더 열불이 터질 지경이었다.  



김복동 할머니는 단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여성 인권 운동가로 불러 마땅한 큰 어른이었다. 사죄하지 않고 반성하지 않는 일본 정부를 향해 '일본 아베는 들어라. 내가 증인이다. 일본은 사죄하라! '며 꼿꼿하게 외치는 김복동 할머니의 목소리는 결기가 가득했고 구순을 넘긴 나이에도 그녀는 젊은이 못지않았다. 러닝타임 101분 동안 한 장면 한 장면 눈을 떼 수 없을 정도로 김복동이라는 사람에게 몰입됐다. <영화 김복동>이 담고 있는 한 사람이 투쟁한 27년의 시간은 김복동 할머니만의 시간이 아니었다. 그건 바로 우리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영화 김복동>의 김복동 할머니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미어지도록 먹먹한 건 지난 27년간의 외침은 아직은 대답 없는 메아리라는 점이다.  최근 일본이 저지르고 있는 만행을 보고 있자니 현실의 시계는 백 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드는 건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 이제 그만하자는 사람이 있다면 <영화 김복동>을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최근 소녀상에 침을 뱉었다는 학생들에게도 <영화 김복동>을 보여주고 싶다.  <영화 김복동>을 봤다면 아마 그런 미친 행동은 하지, 아니,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제대로 알아야 한다. 사죄하지 않는 일본의 아베 정권에 대해 전 세계에도 무엇이 문제인지 제대로 알려야 한다. 그러니 이 영화는 일본에서도, 전 세계에서도 상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제 김복동 할머니는 안 계신다. 지난 4일 일본군 위안부였던 할머니 한 분이 또 돌아가셨다. 올해 초 김복동 할머니 별세 이후 벌써 5분이나 돌아가셨고 이제 남은 피해 생존자는 20명뿐이다. 할머니들이 살아 있을 때 우리는 일본에게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 우리가 '김복동'이라는 이름 석 자를 잊지 않아야 하는 이유다. 


김복동 할머니 이제 그곳에서 편히 쉬세요. 나머지는 우리가 하겠습니다. 아니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김복동 할머니, 이젠 모든 아픔을 잊고 편히 쉬세요. 


덧. 영화가 끝나고 자막 스크롤이 올라가는데 선물 같은 노래 한 곡이 흐른다. 김복동 할머니에게 바치는 헌정곡 '꽃'으로 가수 윤미래의 재능기부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한 송이 꽃으로 살다 간 할머니의 생애와 너무 잘 어울리는 곡이었다. 슬프지만 할머니를 생각하며 용기를 얻게 되는 곡이었다. 

김복동 할머니와 행사장에서 만난 인연으로 내레이션에 참가한 한지민 배우의 담담한 목소리도 더없이 좋았다. 



글 : 이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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