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동해남부선 호계역 마지막 날의 기록
영원한 건 없고, 영원해서도 안 되고
오늘부터 호계역에는 기차가 서지 않는다. 중앙선, 동해남부선이 복선화로 이설 되면서 100년을 하루같이 쉼 없이 달리던 열차는 이제 새로운 기차역에 그 자리를 내어주게 된다. 기차가 서지 않으니 사람들의 발길도 멈추겠지. 100년 동안 사람들을 실어 나르던 동해남부선과 영원히 이별한다 생각하니 아쉬움 한 가득이다. 끝은 새로운 시작이라고 했던가. 기차가 떠난 호계역이 울산에서 또 하나의 명소로 재탄생하길 기대하며..
#호계역
호계역은 1922년에 문을 열었으니 올해로 꼭 100년이 되었다. 호계역이 있는 동해남부선은 부산-울산-포항을 잇는 단선구간으로 운영의 효율을 넓히기 위해 복선화를 추진했다. 1단계로 부산 일광까지 복선화를 완료했고 2021년 12월 27일 2단계로 태화강역, 호계역, 불국사역, 포항역까지 모두 복선화가 완료됐다.
단선으로 운행되는 동해남부선이 이설 완료되고 또한 울산-포항 간 동해선 완공이 같이 이루어지면서 울산에서는 유일하게 남아 있던 호계역을 비롯해 전 국민의 수학여행 추억으로 남아 있는 불국사역 등 단선 구간에 있던 모든 역들이 어제부로 폐역이 됐고 같은 날 기념식을 열었다. 호계역의 철도 업무는 인근에 있는 북울산역에서 이어받게 된다. 태화강역에서 기차를 타면 명촌교를 지나면 신설역인 북울산역으로 기차가 달리게 된다.
복선화가 결정되면서 이미 떠날 시간이 정해져 있었던 호계역이었지만 막상 그날이 되니 기분이 조금 서글퍼졌다. 호계역도 이리될 줄 알았을까. 호계역을 이용하던 주민들은 더 이상 호계역에 기차가 다니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 나오셨다. 몹시 추운 날씨에도 부러 고운 화장을 하고 단정하게 옷을 입고 삼삼오오 호계역을 찾아온 사람들은 '서운타, 서운타'를 되뇌며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기념사진을 남긴다. 이런 귀한 시간을 철도 덕후들이 놓칠 리가 없으니 카메라로 연신 현장을 담느라 분주하다.
울산을 찾을 때마다 동해남부선이 어느 정도 진척이 있는 것인지 궁금해 공사현장을 찾아가 보기도 했다. 얼마 있지 않아 기차가 다니지 않을 호계역을 사진으로 담아 놓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호계역도 그걸 알았을까. 긴 세월 동안 끄덕 없이 역 앞을 지키고 있던 소나무 두 그루가 2020년 여름 태풍에 속절없이 쓰러져 버렸다. 운치 있던 소나무가 속절없이 꺾이고 나니 역은 황량했고 하필이면 겨울에 작별을 고하는 마지막 순간이 더없이 처량하다 느껴지는 건 내 기분 탓이겠지.
호계역은 1922년부터 기차가 다녔으니 올해로 꼭 100년. 울산에 기차가 들어온 건 1921년, 그 이듬에 호계역이 생겼다. 우리나라 철도의 역사가 일제강점기 수탈의 역사이듯 호계역 또한 인근 동대산과 무룡산에 벌목한 목재나 곡식을 수탈에 이용됐다. 그러다 한국전쟁 때 역사가 소실된 것을 1958년에 복구해 지금의 호계역이 됐다. 마땅한 교통수단이 없던 시절 기차는 황금마차였고 전성기를 누렸지만 버스와 자가용이 다니기 시작하고, KTX가 생기며 일반 열차는 서서히 뒤로 밀려나며 기차 편수도 줄어드는 등 부침을 겪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호계역은 다소 특이한 역이었다.
울산 시내 한가운데 있던 울산역은 도시가 팽창하면서 지금의 태화강역으로 자리를 옮겼다. 울산역은 KTX가 생기면서 이름마저도 내어주고 태화강역이 됐다. 병영역과 야음역은 도시가 팽창하면서 모두 사라졌고 즐비한 아파트들이 빼곡하게 자리를 잡아 한때 역이 있었던 흔적마저도 모두 지워버렸다.
기차의 전성기 시절 호계역의 앞뒤로 있던 모화역과 효문역은 사람의 왕래가 줄어들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폐역이 된 지 꽤 오래전 일이다. 한때 승객수가 많이 줄기도 했던 호계역이지만 울산 도심이 계속 팽창하면서 울산 북구 거의 끝에 있는 호계 일대에도 대단위 아파트가 지어지면서 인구가 계속 늘다 보니 오히려 역을 이용하는 인원수가 계속 증가하는 기현상을 보이는 아주 특이한 역이었다. 조그만 간이역이라고 하기엔 이용객수가 2,500명이나 된다. 호계역에서 울산 도심인 태화강역까지 약 10여분, 불국사까지 20분에 저렴한 요금까지 자가용으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속도다. 특히 대중교통이 다소 소외된 영천, 안동 등 경북 일원까지 연결하니 호계역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는 교통수단이 바로 '기차'였다.
그래서일까. 호계 장날이면 타도 시에서 기차를 타고 장날을 찾는 사람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매월 1일과 6일이 되면 호계역 앞부터 진을 노점들이 끝도 없이 이어지며 사람 사는 정겨운 풍경을 느낄 수 있던 호계역이었다. 호계 전통시장이 장날마다 엄청난 사람들로 북적일 수 있었던 것도 호계역의 기차가 한몫을 톡톡히 담당했을 것이다.
호계역이 없어진다는 아쉬움은 어쩌면 바다를 따라 달리던 동해남부선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 인지도 모르겠다. 어릴 적 아버지에게 혼이 나면 "원래는~ " 이러면서 핑계를 대곤 했었는데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월내는 기장 밑이 월래고..." 매번 이러셨다. '원래'가 '월래'로 발음되니 지금으로 치자면 아버지의 아재 개그인 셈. 가본 적 없는 동해남부선의 월내역은 나에게 의문투성이었고 고등학생 때 친구들과 동해남부선을 타고 월내역을 지나가면서 추억을 읊기도 했었다.
호계역 사진을 찍고 집으로 돌아와 "엄마, 이제 호계역에 기차가 안 다닌다."라고 얘기하니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엄마도 "섭섭하고 섭섭하다"라고 울컥한다. 엄마의 먹먹한 가슴은 말하고 있었다. 고작 호계역 하나가 폐역이 됐을 뿐이지만 어쩌면 이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라는 것을. 이렇게 또 한 세월이 끝이난다. 영원한 건 없고, 영원해서도 안 된다고 하지만 그 시절 호계역에 남은 추억만은 사람들의 마음에 살아 숨 쉬고 있을 것이다.
멀어져 가는 기차를 보며 100년간 쉼 없이 달려온 호계역에 안녕을 고한다.
덧. 앞으로 호계역은 그대로 보존해 철도 역사의 박물관이자 시민들의 쉼터로 거듭나게 된다. 폐철로는 경의선 숲길 등을 벤치마킹해 선형공원으로 조성될 예정이라고 하니 이 일대가 어떻게 변모할지 기대해본다.
글. 정해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