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사전

#3

by 정적

지하철 입구를 향해 앞다퉈 빠른 걸음을 옮기던 사람들 틈 사이로 그 절반도 안 되는 속도로 걸어오는 사람이 있다. 마치 그의 세상만 슬로우 모션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그는 자신만의 속도로 한 발, 한 팔을 움직인다. 그를 중심으로 주변의 속도가 자연스레 느려진다. 한 손엔 등산지팡이와 다른 한 손의 신문을 놓칠세라 살가죽만 남은 손의 몇 남지 않은 근육을 쓰고 있다. 흔들리는 팔과 같은 횟수로 발을 굴리고 있지만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는 건 젊어서 너무 빨리 달렸기 때문이다. 그의 머리에 걸쳐진 모자는 트렌디한 패션잡지를 연상시킨다. 그걸 소화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그의 느린 동작들이 혹시나 연기는 아닐지 의심을 더한다. 그는 그렇게 몇 걸음 가지 못하고 신호등에 걸리고 말았다. 이 주변에 산이라곤 적어도 1시간을 부지런히 걸어야 만날 수 있는데, 그의 속도로는 오늘 안에 도착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하지만 그건 지극히 타인의 시선과 판단이고, 땅을 박차는 본인의 발걸음에는 그 만의 속도가 느껴진다. 그의 뒷모습은 결코 초라하지 않다. 남들과 다른 속도로 걸어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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