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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신 Mar 25. 2016

십자가엔 구원이 없다

델로어스 윌리엄스의 십자가 신학


십자가 피엔 그 어떤 성스러움도 없다.


유니온 신학교의 교수였던, 델로어스 윌리엄스는 하나님이 죄지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아들 예수를 십자자가 희생제물로 보내셨다는 대속론을 전면적으로 부정한다. 그러면서, 십자가를 영화롭게 하는 것은 폭력과 착취를 정당화하는 것이라며 비판한다. 왜 윌리엄스는 십자가 구원을 거부한 것일까?



흑인 여성들의 고난과 예수의 대속


윌리엄스의 우머니스트 신학은 미국 흑인 여성들의 역사적 경험에서 출발한다. 흑인 여성들은 노예제 하에서 백인 집안의 가정부로서 가사와 백인 아이들의 양육을 담당했다. 자의가 아닌 강요된 노역이었다. 대농장에서 일하던 흑인 여성 노예들의 삶은 더욱 비참했다. 이들은 남성들의 일이라 여겨지던 중노동들을 강요받았고, 노예 주인에게 성적인 착취를 당한 뒤 버려지기도 했다.


백인 남성 노예주들은 법적인 아내와는 자녀 생산을 위해 성관계를 맺은 반면, 흑인 여성 노예들로 부턴 오로지 성적 즐거움을 얻기 위해 강간했다. 노예제가 공식적으로 폐지된 후에도, 노예주는 고용주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흑인 여성들의 비참한 삶은 바뀌지 않았다. 빈곤에 시달리던 흑인 여성들은 노예제 시기와 마찬가지로 가혹한 노동착취로 고통받아야 했고, 백인 고용주들의 강간 역시 이전과 다를 바 없이 자행되었다. 백인 가정은 여전히 가사와 양육을 담당해줄 가정부가 필요했고, 이는 흑인 여성들의 값싼 노동력으로 이를 메꾸어졌다. 대표적인 예로 1960년대 뉴욕 할렘과 브롱스에 성행했던 “노예시장”은 흑인 여성들의 값싼 노동력이 백인 여성들의 필요와 교환되던 장이었다. 물론 흑인 여성들은 노동자로서 정당한 권리들을 누리지 못했다.


노예제나 짐 크로우(흑백분리정책)가 사라진 후에도 백인들은 흑인 여성들의 “희생”을 필요로 했다. 이런 요구들은 흑인 여성들에게 거룩한 고난을 겪고 있단 대속의 역할자로 이미지를 덧씌운다.


윌리엄스에게 전통적인 십자가 대속론에 맞서는 것은 곧 흑인 여성들을 향한 착취에 대한 신학적 저항이었다. 고난 그 자체가 구원의 목적이라면 흑인 여성들은 착취의 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십자가 고난을 미화하는 것은 백인 가부장제의 착취를 고착시키는 것이었다. 윌리엄스에게 자신의 아들을 희생시키기 위해 보낸 하나님은 흑인 여성들의 희생을 묵인하는 가부장적 폭력의 하나님이었다.



구원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윌리엄스는 구원은 예수의 십자가 피가 아니라 예수가 보여준 목회적 비전과 삶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예수는 죽음을 위해 세상에 온 것이 아니라 생명을 위해 왔고, 예수는 십자가로 죽음을 극복한 것이 아니라 저항과 사랑으로 죽임에 맞섰다. 예수의 광야 경험은 죽음을 극복한 삶으로 극복한 대표적인 예다. 예수는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는다. 그는 물질과 권력에 저항했고, 자살을 시도하란 마귀의 요구에 응하지 않고 삶을 택한다. 구원의 근거는 바로 이러한 삶 속에서의 저항에서 비롯된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선물은 정의로운 관계로 모든 이들을 품어내는 목회적 비전으로의 초대이지 아들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가 아니다.


십자가는 오직 좋음을 파괴하는 역사적인 악을 대변할 뿐이지 부활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예수의 부활은 십자가가 아닌, 예언자적 비전을 통해 쟁취한 악에 대한 승리다.


예수는 죽음이 아니라 삶 속에서 죄를 정복했다.
하나님은 흑인 여성들의 대속적 희생의 경험을 의도하지 않으셨다.


구체적으로 윌리엄스에게 구원은 죽어서 가는 천국에 대한 약속이 아니라 이 땅에서 흑인 여성들이 누릴 생존과 의미의 발견, 더 나은 삶이다. 죄는 흑인 여성들을 착취하는 인종주의, 성차별, 빈곤과 같은 사회 구조이며 이런 사회적인 죄에 저항하고 억압의 고리를 끊는 것이 중요하다. 죄는 사회적인 것이기에, 구원 또한 사회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재클린 그랜트는 구원을 그 자체로 완결된 것이 아닌 과정으로 이해하며, 악에 저항하는 행위들을 혁명적 구원의 과정으로 규정했다. 윌리엄스에게 구원은 고통이 아니라, 고통 그 자체가 사라지거나 줄어드는 것이다.



십자가를 다시 생각하다


오리겐과 안셀름, 그리고 개혁주의 신학자들에게로 이어져 내려온 예수의 십자가 피 흘림을 통한 대속론은 억압받는 이들의 특수한 상황들을 담지하지 못한 체 일괄적으로 강요되었다. 그 결과 흑인 여성들의 고난은 예수의 십자가 피 흘림 같은 숭고하고 거룩한 것으로 미화되었고, 착취와 폭력의 사슬은 신학적으로 정당화되고 지속되었다. 윌리엄스는 대속론을 억압받는 이들의 특수한 상황 속에서 해석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수는 대신 죽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예수는 삶을 위해 온 것이고, 오래전 사람들이 잊어버린 목회적 비전을 보여주기 위해 온 것이다. 기독교인으로서 흑인 여성들은 십자가를 잊어선 안된다. 그러나 그것을 미화해선 안된다. 십자가를 미화하는 것은 착취를 거룩하게 포장하는 것이며, 죄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참고자료


Coleman, Monica A. Making a Way Out of No Way: A Womanist Theology.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08.


Williams, Delores S. Sisters in the Wilderness: The Challenge of Womanist God-Talk. Maryknoll: Orbis Books, 1993.


Williams, Delores S. “Black Women’s Surrogacy Experience and the Christian Notion of Redemption” in Cross Examinations: Readings on the Meaning of the Cross Today. Marit Trelstad, editor. Minneapolis: Augsburg Fortress,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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