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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미리 Jun 16. 2020

글쓰기가 어려울 때

저는 편지를 씁니다

봄의 끝과 여름의 시작에서,

선생님께.


선생님, 몇 년 만에 편지로 인사드리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봄이 되었나 싶다가도 여름이 되어버리는 6월입니다. 날씨 얘기로 편지를 열다니, 저는 참 고전적인 사람인가 봅니다. 더운 날, 선생님께서는 어떤 것을 사랑하고 계실런지요? 선생님이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 듣고 싶은 날입니다. 그러면 제가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아름답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글을 쓰겠다며 억지를 부리던 제게 선생님이 해 주셨던 말이 떠오릅니다. '좋아하는 건 취미로 두면 된단다.' 하지만 선생님. 저는 도저히 취미로 둘 수가 없습니다. 저에게 취미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것인데요. 어떤 아침이나, 어떤 점심이나, 대다수의 밤들에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솟아오릅니다. 그러면 글쓰기라는 것은 저에게는 더 이상 취미가 될 수 없는 것이 아닐는지요.


제가 편지를 쓰게 된 이유는 간단합니다. 매일 글을 쓰고 싶다던 제자가 글을 쓰기 무서워졌기 때문인데요. 이상하게 서간문을 쓸 때에는 망설이지 않고 여러 가지를 말할 수 있게 되어서, 선생님께 보내는 편지를 쓰겠다며 자판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아마도 수신인이 정확히 정해져 있는 글을 써야만, 조금은 친절한 글을 쓸 수 있게 되어서 자꾸만 서간문을 쓰게 되는 걸까요? 정말이지 글쓰기의 세계는 어렵습니다. 이 글은 뭐라도 쓰고 싶은 제자의 또 다른 글쓰기이자, 선생님께 보내는 편지랍니다.


어릴 적 저는 누구보다 책을 가까이하는 학생이었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엄마의 영향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매일 밤 엄마의 무릎에 앉아 책을 읽고 있으면 반쯤은 현실에, 반쯤은 꿈속에 둔 채로 깜빡거리곤 했습니다. 그 시간을 너무나 사랑했다는 것은 선생님도 아시겠지요. 하지만 저 역시 성인이 되어 버린 것인지, 전보다 책을 덜 사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 저의 문장이 별로인 것도 그것이 문제가 아닐까 싶어 반성과 슬픔을 느낍니다.


저는 솔직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솔직한 글을 쓰자고 마음을 먹어도 도무지 저를 어디까지 열어서 가공할지 가늠을 못 잡고 있습니다. 몇 년간 글을 써 오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건 문장의 흐름입니다. 문장들이 스스럼없이 슬그머니 읽혀서 다 읽고 나면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글의 마무리를 정하지 않고 저의 머리에 있는 문장들을 적당히 배열하고 최대한 그림처럼 읽힐 수 있도록 문장을 수정해왔습니다. 다만 제가 간과한 부분이 있습니다. 저는 아직 숙달된 화가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어떻게 하면 숙달된 화가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 매일 밤 고민합니다만, 도저히 제 안에서는 정답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글쓰기가 정답이 없는 행위라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행동입니다. 하지만 고민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고민을 한다는 것은 저의 머릿속의 한 방을 내어 주고 꾸준히 열어보는 행위라고 생각하기 때문인데요. 저에게는 그 모든 것이 '나'를 이루는 것이자, 사랑의 한 모습입니다. 여전히 글쓰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 방을 내어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의 글쓰기는 저만이 아는 세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이보다 더 최악인 글이 있을까요? 요 근래 저는 그렇게 최악인 글만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글쓰기가 무서워졌답니다. 한 번에 뚝딱 좋은 글을 써 내려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 것을 알고 있는데도 말이죠. 못난 글을 읽어 내려가기도 무서워서 퇴고하지 않고 버린 것들도 수두룩하답니다.


"일단 해봐, 일단 써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어떤 문장도 따라오지 못한단다." 선생님께서 하신 말을, 기억하시나요? 네, 저는 어떤 문장도 따라오게 하지 못하고 있답니다. 이런 것을 슬럼프라고 할까요? 저는 전문 작가가 아니므로 슬럼프라고 이름 짓는 것도 너무나 거창하게 느껴집니다. 어떨 때는 선생님이 패기 넘치던 어린 저의 미래까지도 예견하셨던 건 아닐까 몰래 추측하기도 합니다. 선생님께서 하신 모든 말들이 저의 미래에 펼쳐지고 있다는 점에서, 어른이라는 건 선생님과 같은 분들을 부르는 단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저는 성인이 되었으나 어른이 되기는 여전히 멀었다는 생각도 함께 했습니다.


제가 한참 시를 지어 선생님께 보여줬던 그 시절, 저는 참 솔직했습니다. 훌쩍 커버린 지금은 어떻게 그렇게나 감성적일 수 있을지 상상이 안될 지경입니다. 이미 사회의 때가 탄 저는 솔직하다는 단어의 뜻을 잊어버린 걸까요? 선생님의 예언가 같은 말들에 기대고 싶은 건지 오늘은 참 질문이 많습니다. 부디 귀찮게만 여기지 말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아름답고 솔직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편지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수필과 가까운 이 편지가 그런 글의 시작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답장을 기다리며,

제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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