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후인 료칸 콘자쿠앙 숙박기
김이 모락모락 나는 노천탕에 눌러앉아 있으려니 슬슬 허기가 졌다. 마침 예약해 둔 저녁 시간이 다가와 노곤하니 풀어진 몸을 일으켰다. 콘자쿠앙 가이세키 석식은 샤브샤브 코스와 야끼니꾸 코스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기본 샤브샤브 코스는 객실 내에서, 추가금이 붙는 야끼니꾸 코스는 식당 건물에 마련된 별실에서 진행되는데 아마 고기 구울 때 나는 연기 때문인 듯. 야끼니꾸 코스를 선택한 우리는 유카타 위에 쌀쌀한 바람을 막을 덧옷까지 야무지게 껴입고 식당 건물로 사부작사부작 걸어갔다.
평소에도 다양한 요리를 조금씩 먹어보는 것을 좋아해서 인생 첫 가이세키에 대한 기대가 컸다. 식당에 도착하니 달큰한 식전 살구주부터 시작해 제철 재료를 사용한 전채와 계란찜, 사시미, 은어구이, 와사비 만두, 튀김까지 정갈하게 담긴 음식들이 차례차례 내어졌다. 메뉴 하나하나가 예쁘게 세팅되어 있어 듣던 대로 눈으로도 즐길 수 있는 요리구나, 생각했다.
메인을 먹을 때가 되니 작은 화로를 가져다주셨다. 오이타 특산 소고기 분고규와 미야자키 토종닭이라는 휴우가도리에 호박이며 버섯도 함께 구워주고 고구마 소주도 곁들이기 시작했다. 이때부터였을까... 맛있는 술과 음식에 점점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한 것이...
사실 처음에는 요리 하나하나의 양이 적어 보여서 방에 돌아가면 뭔가 더 먹어야겠거니 했는데, 마지막 메뉴인 셔벗과 젤리푸딩을 먹을 때 즈음엔 딱 기분 좋을 정도로 배가 불렀다. 가이세키는 그때그때 제철 재료들로 구성되기 때문에 이번에는 가을 은어가 나온 것 같았는데, 봄에는 또 얼마나 향긋한 요리들이 나올지 상상하는 것도 나름의 재미였다.
우리가 저녁을 먹는 동안 나카이상이 객실을 다시 정비해 주셨다. 침실에는 두툼하고 푹신한 후톤으로 잠자리가 마련되어 있었고 천장등도 어둑한 밝기로 조정되어 있어 부른 배를 두드리며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긴린호수 물안개를 보러 나가겠다는 계획은 역시나 없던 일이 되었다. 전날 과식 과음의 여파로 컨디션이 아주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조식은 간이 세지 않은 반찬 위주로 차려져 속이 한결 편했다. 계란말이, 연어구이, 오리고기와 나물 조금. 특히 따로 담아와 퍼주신 쌀밥이 아주 찰지고 맛있었다. 여행을 다니면 뭔가 재미있고 맛있는 걸 먹어야 할 것 같아서 소박한 밥상이 참 귀하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이 아침식사가 자꾸 생각나는 것 같기도 하다.
아침식사 후에도 가볍게 온천을 즐겼다. 객실을 나서며 영 아쉬워서 정원에 있는 작은 의자에 앉아 있는데 현관 너머로 보이는 커다란 단풍나무에 햇빛이 정말 예쁘게 내렸다. 가을철 료칸에 대한 막연한 로망이 있던 나에게 이곳은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 경험을 선사한 곳이었다.
열심히 살다가 다음에 또 쉬러 오겠다는 다짐과 함께 유후인 역으로 돌아왔다. 북적북적한 도시로 향하는 마음이 그리 밝지만은 않았지만 또 재밌는 일이 잔뜩 있겠거니 생각하며,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후쿠오카 시내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