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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햄사 May 21. 2024

후쿠오카|#02 무릉도원이세요?

유후인 료칸 콘자쿠앙 숙박기

그간 일본에 자주 놀러는 다녔지만 정작 료칸에 머무른 적이 없었다. 이동에 편리한 위치의 비즈니스호텔이 대부분이었고 그나마 뷰를 고려한 숙소를 꼽으라면 레인보우 브릿지가 한눈에 들어오던 오다이바 힐튼 정도일까. 이번에야말로 조용한 곳에서 따뜻한 온천을 즐기며 쉬고 싶었지만 급하게 결정한 여행이다 보니 마음에 드는 료칸들은 이미 매진 상태였다. 단풍철이 겹친 데다 호텔과 달리 한 곳 당 객실 수가 적어서인 것 같기도 했다.


조건은 두 가지였다. 긴린 호수와 가까울 것, 객실 전용 노천탕이 있을 것. 한 번 가기로 마음먹으니 타협하고 싶지 않아져서 열심히 알아보기 시작했는데, 예약 플랫폼 담당자님이 취소분으로 딱 하나 나와있는 곳을 알려 주신 게 료칸 콘자쿠앙이었다. 후기도 위치도 맘에 들지만 빈 방이 없어 아쉬워하던 곳이었어서 이야기를 듣자마자 큰 고민 없이 예약할 수 있었다.


아늑하게 꾸며진 별채 정원

숙박 당일 히구라시 혹은 톤보 중 한 곳을 랜덤으로 배정받는 플랜이었고 체크인 후 톤보 객실을 안내받았다. 본관 리모델링 중이라 입구에 공사 자재가 널려있고 약간의 소음도 있었지만, 오후 다섯 시쯤 되니 그날 분의 공사는 끝나 이후 딱히 불편한 점은 없었다. 객실이 배정되면 간살 현관을 지나 아담한 정원으로 들어서게 되는데 우리는 이 정원을 포함한 별채 한 채를 전부 사용했다.

톤보의 거실 공간과 침실 공간

객실에 들어서니 신발을 벗고 오르는 작은 툇마루가 있었다. 마루에 올라서면 정면은 침실 벽이고, 왼편은 노천탕, 오른편은 거실로 이어진다. 기본적으로는 거실을 거쳐 침실로 들어가게 되어 있지만, 현관과 침실을 가르는 벽이 미닫이 문이라 인원이 많을 때에는 그냥 열어두고 사용하는 것도 편리할 것 같았다.


정원이 한눈에 들어오는 거실에는 넉넉한 크기의 좌식 탁자가 있어 노닥거리기 아주 좋았다. 아마도 웰컴푸드인 화과자와 함께 간단한 다구가 놓여 있었는데, 미리 사들고 온 마실거리가 많아 사용해보지는 못했다. 4인용 객실이라 침실도 널찍했고 이불장 위에는 유카타와 덧옷, 버선과 수건류가 곱게 개어져 있었다.


일본 료칸에서는 '나카이상'이라고 부르는 객실 전담 직원을 붙여준다. 체크인 후 나카이상에게 간단히 객실 안내를 받고 저녁식사 시간을 예약하니 할 일은 다 끝났다.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인 탓에 너무나 피곤했기 때문에 식사 전까지 노천탕에서 따뜻하게 몸을 녹이기로 했다.


편안하게 쉴 수 있었던 전용 노천탕

다짜고짜 손부터 집어넣었다가 너무 뜨거워 놀랐지만 수도를 잠깐 틀어 찬 물로 온도를 맞춰주니 그곳은 금세 무릉도원이 되었다. 탕은 분명 외부에 있는데 신기하게도 물 흐르는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서, 내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바깥과 분리된 다른 세상 같았다. 뜨끈한 물에 잠겨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도란도란 떠들고 웃는 순간들. 간혹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나뭇잎을 건져내기도 하고 차가운 맥주를 한 모금 마시기도 하면서 이번 여행의 목적에 딱 알맞은, 마음이 잔뜩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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