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지만 차분하고, 화려하지만 조용한
한낮의 열기 속에서도 문득 마음이 서늘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건 선풍기 바람에 넘어간
달력 한 장 때문일 수도 있고,
길을 걷다 마주친 이름 모를
여름 들꽃 때문일 수도 있다.
여름은 그렇게, 언제나
예상치 못한 틈으로 나를 들여다본다.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 부딫혀 반짝이는 햇살, 슬리퍼를 끌며 골목을 걷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밤이면 창문을 두드리는 매미 울음과
선풍기의 요란한기계음.
모든 것이 생생하고, 왜인지 오랜 추억처럼 느껴진다.
올여름 나는,
지나간 계절의 조각들을 꺼내어 바라본다.
어느 여름밤
좋아했던 사람과 나눴던 짧은 대화, 바닷가에 남겨진 발자국, 수박을 반으로 쪼갤 때의 맑은 소리와 그 안에담긴 여름의 단맛.
여름은 언제나 나에게 무언가를 안기고, 그다음
계절로 사라질 준비를 한다.
나는 그런 여름의 태도를 좋아한다.
뜨겁지만 차분하고, 화려하지만 조용하다.
올여름도, 그렇게
마음 한쪽에 조용히 스며들기를 바란다.
햇빛보다 더 따뜻하게, 소나기보다 더 짧게,
하지만 확실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