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가 오래 머무는 날엔, 마음도 천천히 젖는다

조연이 주연이 되는 시간

by 해문

장마가 시작되면 모든 게 느려진다.


창밖에 맺힌 채 꿀처럼 흘러내리는 물방울,

유독 낮아 보이는 처진 하늘,

오래된 비디오테이프처럼 늘어진 하루.


장마는

빗소리가 배경이 아니라 주인공이 되는 시간이다.


그걸 아는지 거리의 사람들은 장마의 조연처럼 하나둘우산 속에 숨는다.


우산들이 부딪히고, 사람들은 서로를 제치며 빠르게 걸어가지만, 나는 그 속에서 오히려 천천히 걷고 싶어졌다.


젖은 나무 냄새 가득한 비 오는 날의 풍경은 어딘가

익숙하고 다정하다.


이제는 아침이면

늘 그렇듯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그것이 어제의 연장인지, 오늘의 시작인지

헷갈릴 만큼 장마의 시간은 경계 없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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