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히 글쓰는 2019년을 위해
연말 기분을 내고 싶어서 새해 목표를 적어봤다. 요리, 취직, 대학원, 운동, 어학... 새해 목표 단골 항목들이 올해에도 어김없이 쓰였다. 다만 이번 연말에는 새로운 새해 목표가 있다.
'쓰는 습관을 들이기. 브런치에 꾸준히 글 쓰기'
올해 나는 대체로 글을 써보고 싶은 상태였다. 나름대로 격동의 시기를 지나면서 내 경험을 글로 남기고 싶었다. 글쓰기 가이드북 몇 권을 사서 읽었다. 심지어 아직도 책 사재기는 계속되고 있다. 좋아하는 작가가 많아졌고, 그들을 닮고 싶어서 그들이 쓴 글을 열심히 읽고 있다. 계속 내가 어떤 글을 쓸 수 있을까 고민했다. 어떤 테마의 글을 쓰면 좋을까. 매거진 이름은 뭐라고 지을까. 첫 글은 어떻게 시작할까.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뭐가 있을까.....
고민만 했다.
9월에 스위스로 이사하고 나서는 고민이 더 깊어졌다. 기껏 한국을 떠나 살고 있는데, 외국인의 삶을 재미있게 풀어내지 않으면 어떤 글도 재미있게 쓰지 못할 것 같았다. '스위스스러운' 이야기를 모으기 위해 매거진 제목을 짓고 고치고 지우기를 반복했지만, 어떻게 글을 시작해야 할 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외국에서 사는 사람에게 기대할법한 다이나믹이나 다른그림찾기를 써야 하나? 지금 내 머릿속에 있는 건 스위스인지 한국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평범하기 이를데없는 일상인데. 아무도 시키지 않은 나만의 기준과 모순이 생기니 글을 쓰기 시작하는 타이밍은 한없이 미뤄지고, 그렇게 한 분기가 지났다.
말로는 "뭔가를 하고 싶어. 하지만 평범한 건 하기 싫어. 나는 특별한 걸 만들거야!"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평범하고 진부한 것도 만들어낼 기본기가 안 되어 있고, 그 모순에 갇혀 뭘 하지도 놓지도 못하는 꼴이라니. 좋게 말하면 높은 목표치. 나쁘게 말하면 기본기도 안 된 겉멋. 글쓰기 뿐 아니라 내 인생 전반을 관통하는 키워드이고, 내가 뿌리채 뽑아버리고 싶은 기질이다
다양한 글쓰기 가이드북을 읽으며 내가 얻은 가장 유용한 조언은 두 가지였다. '일단 써라'와 '많이 읽어라'. 이 단순한 원칙을 따라서, 내년에는 글쓰기 습관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위해서, 지금부터 뭐라도 일단 쓰려고 한다. 나만의 아이템도, 촌철살인의 매거진 제목도, 강렬한 매거진 첫 글도 스위스 생활기도 잠시 잊자. 진부한 똥글을 쓰자. 인터넷에 넘쳐나는 일상 에세이에 한 톨 더 얹어보자. 똥글도 쓰다 보면 늘고, 그러다가 좋은 주제도 나의 개성도 나올 수 있지만, 고민만으로는 똥글조차 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
글을 다 쓰고 업로드까지 했는데 뭐가 꼬였는지 완전히 날라갔다. 손목이 아파오고 눈이 아픈데 한시간 반을 더 앉아서 처음부터 다시 썼다. 나의 의지력을 시험하는가 브런치. 어림없다. 나는 미뤄왔던 첫글을 오늘에는 올리고야 말거다. 그러고 나면 2019년의 첫글은 좀 더 수월히 쓸 수 있을 거고, 그 다음 글과 다음다음 글은 더 쉬워지겠지. 그리고 내년 이맘때에는 '내년에도 꾸준히 글을 쓰기'를 새해 목표로 적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