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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흐니 Jul 29. 2020

누가 내 영어 좀 도와줘요!

영어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일단 해보는 수밖에

혼자 여행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 중 하나는 소통이었다. 못 알아듣거나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을 때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파파고를 사용하기에는 인터넷 속도가 참으로 느렸다. 여행을 시작한 지 2~3개월 지났을 땐 눈치로 어떤 말을 할지 예상할 수 있었는데 처음에는 아주 기본적인 말도 알아듣지 못했다. 영어를 못해서 그렇기도 했지만, 진짜 원어민의 말투와 속도는 처음 경험했다. 영어 때문에 답답함을 느낄 때마다 후회감을 느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 어리석은 후회를 매일 했다. 매~일


토론토에 도착하고 다음 날 물을 사러 마트에 갔을 때의 일이다. 물 한 통을 결제하는데 그렇게 많은 대화가 오고 갈 줄은 몰랐다. 우리는 삑! 바코드 스캔, ‘얼마입니다.’, 계산, ‘안녕히 가세요’가 끝 아닌가? 토론토에서는 계산할 때 ‘How are you?’라고 물으며 소소한 대화가 이어진다. 그리고 ‘봉지 필요하니? Do you need a bag?’라고 물어본다. 나는 이 쉬운 문장을 알아듣지 못했다. 점원이 봉지를 흔들기 전까지 말이다. 물 하나 사는데 물어볼 거로 생각하지 못해서 그냥 계산하면 끝이겠거니 했다. 그리고 ‘Do you need a receipt? 영수증 필요하니?’도 물어본다. 나는 예의 없게 ‘No!’ 이러고 돌아섰다. 어색해서 얼굴에 미소만 머금고 있었을 뿐 내 영어에는 미소가 없었다. 

저 물 주문하는데도.. 물이 이거 저거 있는데 뭐 줄까?  몰라... 암거나... (땀 줄줄)

이렇게 점원과 기본적인 대화도 쩔쩔매는 데 아주 용감하게 토론토 대학교 캠퍼스 투어를 신청하고야 말았다. 캠퍼스 곳곳 건물 내부를 제대로 구경하고 싶었다. 내 영어 실력은 까맣게 잊은 채 투어에 합류했다. 투어를 책임진 학생은 뉴욕 출신의 말이 아주 빠른 학생이었다. 그렇게 나는 건물만 구경하고 어떤 용도의 건물인지 상세한 정보를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30% 정도만 알아듣고 대~충 이런 용도겠거니 추측한 것이 전부였다. 투어가 끝나고 카페에서 멍하니 커피를 마시는데 커피가 유독 썼다. 내가 공부한 것은 영어가 아니었구나. 부모님이 결제한 학원비는 모두 부질이 없었구나. 어떤 할아버지가 내 옆자리로 오면서 ‘여기 옆에 잠시 앉아도 되나요?’라는 말까지 못 알아들었으면 너무 슬펐을 것이다. 정확하게 알아들은 단 한 문장이 나를 위로하는 날이었다.

나는 한국어가 모국어인 사람이다. 나에게 영어는 외국어이기에 당연히 영어권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게 영어를 구사할 수 없다. 첫술에 배부를 순 없지만 내가 놓친 문장들, 잘못 표현하고 있는 것들을 조금씩 바꿔보자 다짐했다. ‘No!’ 대신에 ‘No, thanks’만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되어도 성공이라는 마음을 가졌다. 혼자이기에 틀린 것을 시도할 수 있었다. 영어를 잘하는 친구와 함께 여행을 갔다면 많이 의지했을 것이다. 혹은 굳이 다른 사람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많이 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무엇이 틀렸는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영어울렁증에게 서브웨이 주문이란.... 모든 채소의 이름은 먹으면서 생각이 났다.


처음엔 이러다 영어를 못해서 불상사가 벌어지는 것은 아닐까 조바심이 들 정도였다. 정말 다행히도 영어에 적응해서 나중에는 ‘와! 그래도 이곳에서 살면 죽지는 않겠어!’라고 생각할 정도가 되었다. 이른바 생존 영어 가능 레벨로 성장했달까? 아직 생활영어로 올라가려면 더 노력해야 하지만 ‘잘’ 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원어민이 아니고 원어민들도 내가 원어민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예의가 없었던 것은 아닐까?’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들이 하는 말을 잘 듣고 따라 하다 보면 어느새 조금씩 다가갈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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