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과 부적응
2018.03.19
캐나다를 여행하면서 차츰 적응을 하고 즐겁다고 생각했던 것이 있다면 '선글라스'다. 캐나다에서는 강한 햇빛에 눈을 보호하기 위해서 계절에 상관없이 선글라스를 착용한다. 여행 준비를 할 때 다들 선글라스를 꼭 가져가라고 해서 챙기긴 했는데 과연 많이 쓰게 될지 의문이었다. 한국에서는 여름이 아니면 선글라스를 잘 쓰지 않고 여름이어도 휴양지 같은 곳에 놀러 가서나 쓰기 때문이다. 평소에 자주 사용하는 아이템이 아니기 때문에 사서 가져가긴 하지만 쓸 일이 별로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일! 선글라스는 여행하면서 카메라보다 자주 사용하는 아이템이 되었다. 길거리에 선글라스를 안 쓴 사람을 찾는 게 더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면서, 유모차를 끌면서 커피를 손에 들고 걸으면서 모두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양말'신듯 몸처럼 생각하며 사용하는 아이템이었던 것이다. 나는 자연스럽게 '오호. 그러면 나도 좀 써볼까?'라고 생각했다. 여행 온 느낌도 내고 싶었고 기분 탓인지 햇살이 강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마치 프랑스에 온 것 같은 분위기의 퀘벡에서 눈을 밟으며 코트를 휘날리고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나의 모습은 상상만으로 만족스러운 모습이었다. (사진은 아니더라...)
선글라스를 끼고 자연스럽게 TTC(토론토 메트로)를 타며 일주일 만에 캐나다에 적응한 듯했다. '키야. 영어는 조금 못해도 이 정도면 캐내디언처럼 보일 거야!' 하며 뿌듯해했다. 캐내디언처럼 보이고 싶었다기보다는 그만큼 빠르게 타지에 적응해 나가고 있는 내가 스스로 기특했다. 워낙 처음인 것이 많았고 두려움이 많았기에. 여행 초보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정보 없이 간 탓도 있다.
교통과 날씨, 영어로 주문하는 것에도 조금씩 적응이 되고 있었지만 절대 끝까지 적응하기 힘든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팁 문화'다.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식사값의 일정 퍼센트를 팁으로 서버에게 준다. 손에 쥐어주기도 하고 팁 통( Tip jar)에 넣어주기도 한다. 가장 편한 방식은 카드결제를 할 때 내가 퍼센트를 설정해서 추가로 더 결제하게끔 하는 방식이다. 한국에는 팁을 주는 문화가 없다 보니 팁은 준다는 것은 ‘서버한테 지폐를 쥐어준다라?’ 나에겐 아주 어색한 행위였던 것이다. 피할 수 있으면 최대한 피하자는 마음이 컸다.
사실 동남아 여행을 가서 안마를 받거나 각종 서비스를 받으면 팁을 주긴 한다. 보통 가이드가 미리 준비하라고 알려주기도 하고 금액도 딱 정해줘서 크게 어렵지 않다. 다들 줄 때 나도 같이 그냥 주면 됐으니 ‘뻘쭘’하다는 감정을 느끼지는 않았다. 어색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가족들과 그냥 ‘흐흐 어색하다~’ 멋쩍게 웃고 넘겼다.
그런데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자유롭게 주면 된다.(그리고 나 혼자다.) 내가 주고 싶은 대로 주면 되는데 말이 자유고 통상적으로 줘야 하는 퍼센트가 있다. 15~20% 사이라는데 최소 음식값의 15%는 서버에게 팁으로 줘야 진상 손님이 되지 않는 것이다. 진상 손님은 되고 싶지 않은 감정과 팁을 주는 것에 대한 어색함 사이 갈등이 여러 번 있었다. (심지어 자연스럽게 먹고 계산할 거 하고 Bye! 하고 나왔는데 아! 팁 안 줬네! 생각한 적도 있다
.)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서 이후에 한 레스토랑에서는 뻔뻔하게 물었다. ‘팁은 어떻게 주면 되겠니?’ 그랬더니 ‘너 마음대로!’라는 것이다. 하아... 그게 제일 어려운 거야. 다 먹고 테이블에 돈을 두고 나왔다. ‘이.. 이렇게 하는 거 맞나?’ 아주 그냥 팁 주는 게 어색해서 레스토랑은 가고 싶지 않은 지경이었다. 하지만 다시 한번 레스토랑에 도전했다. 정말 너무 맛있게 먹고 나서는 용기를 내어서 지폐를 서버에게 드렸다. 서버분이 감사하다며 팁을 받았다. 그래도 이 어색한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우리 엄마보다 나이 많은 서버분께 지폐를 쥐어드리는 것이 참으로 어색하고나!
팁을 주는 것이 북미 문화권에서는 서비스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일 뿐인데 나에겐 지폐를 손에 쥐어준다는 느낌이 자꾸 들었다. 퀘벡을 다녀온 후에는 여행을 하면서 레스토랑에 갈 일이 있으면 무조건 카드결제를 하거나 상황이 안되면 테이블에 지폐를 올려두고 나왔다. 사실 팁을 주지 않아도 괜찮은 곳을 더 많이 갔다. 그냥 테이크아웃을 해서 공원에서 먹거나 패스트푸드점에서 먹곤 했다. 예산이 부족해서도 그랬지만 서버의 서비스를 받고 팁을 내고 하는 것들이 내게는 적응하기 힘들고 불편했다. 당연히 북미는 한국이 아니기에 식당문화가 다른 것인데 다른 그 어떤 것 보다도 (신발을 신고 실내에 들어가는 것보다도) 더 나에겐 어색하고 적응하기 어려운 문화였다.
북미를 다녀온 뒤 북유럽, 동남아 등 다른 곳들도 다녀왔다. 여러 문화권을 경험하면서 잘 적응하는 것들이 있고 적응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사람 마다도 좀 다르고 적응을 하더라도 소요되는 시간이 다르다. 적응을 하든 못하든 다른 문화를 경험하면서 나를 알아가는 것이 즐겁다는 것이다. 늘 익숙하고 편한 환경에서는 볼 수 없었던 나의 또 다른 모습을 타지에서는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이 또 혼자 하는 여행이라면 더 잘 느껴진다. 북미 여행 초반에는 선글라스는 잘 끼지만 팁을 줄 때는 쿨하지 못한 나의 모습이 그랬다.
'의외로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에 신경 쓰지 않네?'
'하지 않았던 것을 하려고 할 땐 많이 어색해하는구나. 역시 그렇구나'
p.s. 동전 너무 달라서 당황한 적도 많다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