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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흐니 Oct 19. 2020

간만에 혼자가 되어보기

코로나로 너무 가까운 우리 사이 조금 거리를 두어보자. 

#혼자가 되고 싶어요. 

낮잠님 추천합니다!!

여름이 한층 가까워지던 지난 6월, 여전히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고 밥줄은 위태롭던 하던 그때 정말 세상에 혼자이고 싶었다. 가족들과 이렇게 가깝게, 오래 집에 함께하는 것도 싫고 일거리는 작년보다 1/5 정도 줄어서 멍하니 있는 상황. 짜증이 뇌를 지배하고 있었다. 회피형 인간인 나는 정말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가 쌓이면 모든 것을 놔버리고 동굴로 들어가 버린다. 집에서 프렌즈 전 시즌을 밤새워 보는 일도 끝이 나버렸다. 이젠 정말 들어갈 동굴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하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들이 생기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 ASMR을 귀에 꽂았다. 지금 내가 있는 곳과는 가장 이질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ASMR만을 골라 틀었다. 이를테면 바다.. 바다... 바다!! 바다에서 타닥타닥 키보드를 치는 소리를 들으며 꾸역꾸역 일을 하는데 터질 것이 터지고 말았다. 세 명이던 창업팀에서 한 명이 또 팀을 나가게 된 것이다. 안 그래도 위태로운 우리 팀이었는데 또 한 기둥이 사라지다니. 가슴이 막 답답하고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코로나19라는 X같은 상황이 계속 우리를 찢어놓고 넘어트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나저러나 내일의 해는 계속 뜨고 내 눈도 계속 떠지고 (사실 뜨기 싫은데 저절로 떠졌다. 후...) 뭔가 숨통 트이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충동적으로 얼마 안 남은 통장 잔고를 탈탈 털어서 동해의 한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다. 행복한 추억이 깃든 숙소였고 꼭 한 번 혼자서 시간을 보내고 싶은 곳이었다. '그래, 지금이다!' 싶어서 바로 예약을 하고 엄마의 차를 빌렸다. 그렇게 나의 첫! 혼자! 자동차 여행! 시작!




#이토록 완벽한 혼.여라니! 

동해로 떠나는 날은 정말 더웠다. 와 진짜 여름이 오는구나 싶은 날이었는데 해도 쨍쨍하니 내 충동적 여행이 무탈할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기분전환을 위한 에스닉 스커트를 입고 유튜브에 유행하는 시티팝을 틀었다. 시동을 걸고 출발! 처음 도전하는 장거리 운전이었지만 나는 눈에 뵈는 것이 없었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운전하는 시간이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이 되었고 늘 피곤하기만 했던 운전을 즐기는 시간이 되었다. '여행'이라는 단어가 붙는 순간 펼쳐지는 매직이다. 모든 것이 다르게 느껴진다. 



차도 막히지 않았고 숙소 근처에 주차도 완벽. 체크인을 하고 내가 선택한 메뉴 역시 완벽. (그저 숙소 근처 보이는 물회 집에 들어갔을 뿐이다.) 배가 불렀는지 모르고 많은 양의 물회와 밥 한 공기를 뚝딱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엄청 맛있는게 아니었는데 그냥 술술 다 먹음!

 그 많은 저녁으로는 배가 차지 않았는지 맥주 한 잔을 하며 '이웃집 토토로'를 감상했다. 진짜 여행 와서 제일 잘한 일이었다. 영화 선택. 모든 것이 지치고 다쳐있는 나에게 잔잔하게 흘러가는 동화는 딱 맞는 치료제가 되어주었다. 빗방울이 토토로 우산 위로 토독토독, 토도도도독 떨어지는 장면은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 

영화 덕분에 불안했고 불쾌하기까지 했던 감정은 고요해질 수 있었다. 또 덕분에 낯선 곳에서도 쉽게 잠들 수 있었다. 참 웃긴다. 낯선 이들이 주는 편함이라니. 분명 내 방도 나 혼자 있는 공간이다. 침대도 방도 혼자 쓴다. 그런데 혼자 있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계속 가족들과 연결되어 있고 언제든 방문은 열릴 것만 같다. 그런데 게스트하우스의 내 침대는 그렇지 않았다. 발 밑에 쳐진 커튼 너머로 연결된 이는 아무도 없다. (캡슐 형태의 침대였다.) 그 누구도 나를 찾지 않고 내려간 커튼을 열지 않는다. 가끔은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것이 안정감을 주기도 한다. 



#어쩔 수 없는 계획주의자

다음날 아침, 전날 마신 맥주가 안주와 함께 아직 뱃속에 있는 느낌인데도 조식을 잘도 챙겨 먹었다. 넓은 바다 옆 가파른 언덕에 오밀조밀 모여있는 집들을 바라보며 우동을 먹었다. 게스트 하우스 주인으로서 손님에게 적당히 친절함을 보이는 주인아주머니 덕분에 마음이 든든해졌다. 좋은 여행이 되라며 내 뒷모습을 바라봐주셨고 그렇게 나는 다시 시동을 걸고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무계획으로 다녀야지! 다짐해놓고 나는 절대 그렇게 하지 못했다. 폭풍 검색 끝에 내가 원하는 그 그림이 그려질 수 있는 카페를 찾았다. 내가 묵었던 숙소에서는 꽤 먼 거리에 있었지만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았고 열심히 바다를 보며 달린 끝에 또 다른 바다 근처 카페에 도착했다. 주말이라 늦게 도착하면 자리가 없을 것 같아서 오픈 시간에 맞춰서 도착할 수 있도록 출발했더니 제시간에 도착했다. 덕분에 바다가 제일 잘 보이는 자리에 혼자 앉을 수 있었다. 


이번 여행 가장 큰 계획은 바다랑 데이트하는 것이었다. 하루 종일 바다랑 같이 있는 거. 그래서 처음엔 카페에서 바다를 한참 바라봤다. 카페에 꽤 오래 있었고 사람들이 슬슬 들어오고 시끄러워지니 바다와 함께하는 시간이 방해가 되었다. 바로 모래사장으로 가서 또 한참을 앉아 있었다. 여름이 시작되고 있어 꽤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바다를 멍하니 보았다. 사실 막 뛰고 싶고 춤을 추고 싶었다. '드디어! 드디어! 바다다!' 막 소리 지르고 싶었는데 속으로 삼켰다. 허허


혼자 바다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고 소리 지르지 않아도 만족스러웠다. 나는 이렇게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을 군중들 속에서 보낼 때마다 왠지 모를 우쭐함을 느낀다. '나는 편하게 여길 즐겨~'같은 마음일까? 아님 가족들과 연인들과 함께하는 사람들 사이 혼자 있는 내가 오히려 특별하게 느껴진달까. 혼자 여행을 하면서 괜한 뿌듯함을 느낀다. 진짜 스스로도 웃긴데 쓸쓸함을 느끼며 청승 떠는 것 보다야 낫지 뭐!




#다시 현실로 

간단히 점심을 또 다른 카페에서 해결한 뒤 집으로 갈 시간이 되었다. 한없이 바다를 바라봐서 미련 없이 핸들을 돌릴 수 있었다. 아쉬운 마음도 없었다. 이만하면 됐다. 만족스러웠다. 물론 서울 다 와서 차 막히기 전까지는..

어디서부터 였을까 기름을 넣으러 간 휴게소부터였을까 차가 억수로 막히기 시작했다. '허허~ 차가 막히네 흥얼흥얼' 그때까진 괜찮았는데 날이 어둑해지고 점점 뻐근해지기 시작하니 역시 장거리 운전은 쉽지 않구나 싶었다. 

동해로 갈 때는 그렇게 뻥뻥 뚫리던 길이 다시 돌아갈 때가 되니 이토록 막힐 수가 있나. 마치 그때의 내 현실 같은 시간이었다. 답답하고 옆길로도 못 가고 후진은 더더욱 못하는 현실. 예상시간보다 한 시간 반은 더 걸려서 집에 도착했다. 집에 결국 무사히 잘 도착했으니 됐지 뭐. 장거리 운전도 선방했고 말이다. 잘 도착하기만 하면 되지! 




그렇게 충동적으로 여행을 다녀오고도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한두 번 더 있었다. '아오... 아예 한 달 동안 칩거 생활을 할까?' 이런 생각을 한 달 하니까 어느새 일은 다시 조금씩 들어왔고 지금은 글 하나 쓰기도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언제 그렇게 굶주렸냐는 듯.  아무튼 짧디 짧았던 그 여행은 그때의 나에게도 힘이 되었지만 지금의 나에게도 힘이 되고 있다. 코로나로, 일로 허덕이는 와중에 올해 나에게 준 유일한 선물이라 특별하다. 고작 1박 2일이지만. 또 선물하고 싶은 1박 2일이었다. 

또 보자 바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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