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트리올 도착한 날
2018.03.21~23
토론토에서 오후 4시쯤 몬트리올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예정시간에 도착한다고 해도 늦은 시간인데 1시간 더 늦은 아주 깜깜한 밤에 몬트리올에 도착했다. 짐도 무겁고 날은 깜깜해서 무섭고 그렇다고 택시를 탈 배짱은 없었다. 계획대로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향했다. 아주 작은 B&B(Bed&Breakfast)여서 자정까지 리셉션이 열려 있지 않았다. 우편함에 내 방 키가 있었고 나는 그 열쇠로 숙소 문을 열었다. 그리고 좌절했다. 태어나서 세상 이렇게 가파른 계단은 처음이었다. 그냥 걸어 올라가도 힘든 계단인데 내 몸 만한 캐리어를 들고 올라가야 하다니 좌절… 아주 가파른 덕분에(?) 질질 끌면서 올라갈 수 있었다.
그렇게 방에 도착. 아주 작고 작은 방이었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실망감과 우울감을 느꼈다. 침대는 너무 높고 깨끗해 보이지도 않고... 혼자 고생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 처음으로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내가 가진 돈으로 예약할 수 있는 숙소는 이 정도였는 걸. 다행인 것은 영하 6도의 날씨였지만 짐을 끌고 오느라 추운지도 모르고 땀을 흘리며 온 덕에 씻고 바로 잠에 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숙소비를 결제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대충 옷을 걸쳐 입고는 리셉션에 갔는데 귀여운 소년이 나를 응대했다. ‘이곳은 정말 좋은 숙소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태세 전환) 마음이 갑자기 즐거워졌고 아침 식사가 기대됐다. 나를 응대해준 친구는 영어를 잘 못해서 당황하는 듯했지만 진짜 숙소의 주인 아버지의 도움으로 계산을 잘했다. 같이 사진이라도 찍을 걸 그랬나 싶다! 혼자 여행하면 용기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것 같다.
아무튼 영어를 못해 긴장한 귀여운 친구를 보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다. 기분 좋은 마음으로 씻고 나서 아침식사를 했다. 간단히 빵과 주스를 혼자 먹고 있는데 한 부부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자신들은 프랑스 사람이고 유학을 온 아들을 보러 왔다고 했다. 영어를 못하셨는데 그럼에도 나에게 바디 랭귀지를 사용하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셨다. 내가 퀘벡은 프랑스랑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니 파리에는 그렇게 웨딩 사진을 찍는 중국인이 많다고 이야기해주셨다. 응? 정말 안 되는 영어로 힘겹게 나눈 대화였지만 처음으로 여행을 하면서 외국인과 대화를 했다는 사실이 나에게 에너지를 주었다.
몬트리올에 도착한 밤에는 이 숙소에서 어떻게 3일이나 있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맘에 들지 않는 숙소였는데 다음날 아침이 되니 생각이 180도 바뀌었다. 아늑하고 편한 느낌이 들었다. 왜 3일만 머무르기로 계획을 했는지 아쉬울 정도였다. 친절한 리셉션의 소년, 아침엔 맛있는 오믈렛이 나오고 고된 여행을 하고 오면 다시 깨끗해진 방이 날 반겨주는 곳이었다. 겉으로는 낡고 가파른 계단이 나를 맞이해주는 곳이었지만 알고 보면 몬트리올을 찐으로 느낄 수 있는 곳. 숙소 창밖 풍경은 풍경이라고 할 것도 없었지만 그 장면조차도 3년이 지난 지금도 생각나는 곳. 몬트리올 하면 눈도 있고 푸틴도 있지만 나는 가장 먼저 내가 머물렀던 숙소가 생각난다. 아! 다시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