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아기가 걸음마를 하고 큰 박수를 받는 것처럼 나에게 박수 친 순간들
2018.03.22~24
살면서 소소하게 뿌듯함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면 언제일까? 내가 좋아하는 맛집을 지인들과 함께 갔을 때 여기 정말 괜찮다는 반응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한다. 또 길을 헤매다가 표지판을 잘 찾아서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했을 때도 그렇다. '후훗, 내 눈썰미!' 하면서 혼자 으쓱해하곤 한다. 하지만 평소에 이런 경험을 자주 하지는 않는다. 맛집이든 길을 찾는 일이든 다른 사람이 하도록 내버려 두는 스타일이다. 모두 나에게는 서툰 일이기 때문이다. 예쁜 카페도, 맛집을 잘 알아두는 경우가 별로 없다. 심지어 내가 사는 동네에서도 그렇다.
여행을 하면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맛집을 찾아다니지 않았고 예쁜 카페들을 굳이 검색해보지 않았다. 식사는 대체로 패스트푸드를 이용했고 카페는 길가다가 분위기가 좋아 보이면 들어갔다. 여행경비가 빠듯하기도 했고 맛집을 찾아보는 것에 많은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몬트리올에서는 조금 달랐다. 정말 가고 싶은 카페가 있기도 했고 추천받은 맛집이 있어서 가보기도 했다. 결과는 모두 성공! 어깨를 으쓱하게 만드는 소소한 순간을 즐길 수 있었다.
가보고 싶던 공간
몬트리올에서 가장 유명한 카페 중 하나인 Crew Collective & Cafe.
팀홀튼은 몰랐으면서 이곳은 꼭 가보고 싶다고 출국 전부터 가끔씩 사진을 찾아보고 위치도 미리 저장해 두고 그랬다. 딱 들어가자 보이는 모습만 보면 카페인 것 같지만 사실은 코워킹 스페이스 겸 카페로 운영되는 곳이다. 데이패스, 멤버십(24/7 이용 가능) 등으로 운영되는데 다른 그 어느 곳보다 유니크한 분위기 때문에 꼭 가보고 싶었다. 아주 오래된 건물 (왕립은행)을 리모델링해서 만든 곳이라 현대와 클래식이 섞여있어서 일하러 올 때마다 영감을 뿜뿜하게 해 줄 것 같았다.
실제로 와보니 더 놀라웠다. 꼭 이곳에서 노트북 켜놓고 뭐라고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사람이 워낙 많았는데 일찍 자리 잡고 앉아서 일하거나 공부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나처럼 한 번 구경 오려고 들어온 관광객도 많았다. 슬쩍슬쩍 코워킹 스페이스 안쪽을 살펴보며 회의를 하는 사람들, 미팅을 하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멋있는 공간에서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보니 새삼 부러웠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간다면 멋있는 공간에서 일하고 싶다는 로망이 생겼다.
북적이는 곳을 좋아하지 않지만 각자의 목적으로 붐비는 이 카페는 정말 좋았다. 커피를 만드느라 바쁜 바리스타, 주문을 하는 사람들,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뒤편에서 일하고 있을 사람들의 에너지까지! 여행하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두 번 방문하는 카페였다. 몬트리올을 떠나는 날 오전에도 가서 괜히 노트북을 켜고 글을 썼다. Crew Collective & Cafe에 있는 사람들의 열정에 편승한 기분이 들면서 으쓱해졌다.
몬트리올 푸틴
정말 맛있는 식당에 와서 맛있는 음식을 먹은 것뿐인데 살아있는 나 자신이, 이곳에 와 있는 나 자신이 그렇게 기특할 수 없었다. 바로 몬트리올에서 푸틴을 먹었을 때다. 푸틴은 감자튀김 위에 그레이비소스 그리고 응고된 치즈 커드를 올려 먹는 음식이다. 뭐 그게 음식이냐고 할 수도 있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먹고 싶은 음식이었다. 사실 감자튀김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레이비소스와 치즈가 올라간 순간 말이 달라진다. 환상!
La Banquise라는 푸틴 맛집에 갔는데 이곳은 기본 푸틴에 다양한 토핑을 추가해서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소고기와 양파가 올라간 푸틴을 주문했다. 혼자 갔는데 세 명이 먹어도 될 양이 나왔다. 다행히 남겼다. 하하 (남긴 사진을 이곳을 추천해준 친구에게 보여주니 다 먹은 거라고 했다. 아하하) 여행 온 지 7일 만에 맛집이라는 곳을 오니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미슐랭 5점짜리 맛집도 아닌데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이 차고 넘쳤다.
혹시 선글라스 보셨어요?
몬트리올은 길게 관광을 하기에는 볼거리가 많지 않은 곳이다. 돌아다니다 보면 '또 어디 가면 좋을까?' 방황하곤 한다. 하루는 방황을 하다가 몬트리올 대학교를 구경하러 다녀왔다. 멋있는 건물들에 이끌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손에 있던 선글라스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선글라스를 놓고 온 화장실에 가보니 아무 흔적도 없었다. '아 이렇게 여행 온 지 일주일 만에 뭔가를 잃어버리는 바보가 된 것인가!' 절망감에 빠졌다. 심지어 분실물센터가 영어로 뭐였는지 생각도 안 나서 더 답답했다.
그런데 방황하던 나를 본 학생이 혹시 지하에 Security에 가보는 거 어떻겠냐고 도움을 주었다. 나는 이미 반포기 상태로 가서 혹시 분실된 선글라스가 있냐고 물어봤다. 아니 그런데 내 선글라스가 낯선 아저씨에 손에 있는 것이 아닌가! "This Black one?" 하는 그 목소리가 참으로 반가웠다. 선글라스를 손에 들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울먹이며 다신 뭔가를 잃어버리지 말자며 다독였다.
참으로 조용한 도시인 몬트리올에서 나는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스펙터클한 여행을 했다. 처음 온 낯선 대륙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마치 이 세상에 처음 온 사람처럼 돌아다녔다. 그래서 더 사소한 것에 놀랐고 그래서 작은 일에도 동요했다. 혼자이기에 더 나를 다독여야만 했고 우쭈쭈 해줘야 다음날 또 두렵지만 호기심에 가득 차서 낯선 곳에 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지금은 늘 같은 공간에서 늘 같은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보내서 그런지 이때처럼 혼자 으쓱하는 모먼트가 정말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