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퀘벡은 눈으로 가득하다.
2018.03.25
싫증을 잘 내는 성격이다. 격동의 시기 열다섯 살 때는 더 그랬다. 소위 중2병을 겪으면서 중학교 입학할 때 엄마가 사준 운동화가 더 이상 신기 싫어진 것이다. 검은 운동화. 엄마는 내가 더 클 거라고 생각해서 한 치수 큰 운동화를 사주셨다. 내 발은 더 크지 않았기에 235 사이즈 운동화는 정말 불편하고 신기 싫은 칙칙한 운동화였다. 반스가 유행하길래 나도 반스를 사달라고 졸랐건만 사주시지 않았다. 엄마와 말이 안 통하는 군! 아부지, 울 아부지라면 사주실 거야. 하지만 아빠도 그건 안된다고 하셨다. 이미 운동화가 있는데 새로 사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고 하셨다. 나의 소비습관을 바로잡기 위한 방침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부모님 의도대로 부모님은 공짜로 나에게 무언가를 사주는 존재가 아니라고 깨달았다. 학창 시절에는 늘 그러셨다. 용돈 주시는 것부터 티 한 장 사는 것도 신중하셨다. 다 커서 엄마와 이 이야기를 하는데 돈이 없어서 그랬다고 하셨다.
아무튼 나는 이런저런 쓴맛을 보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유행템에 대한 욕심이 사라졌다. 정확히는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욕심부린다고 내 손에 쥐어질 것들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 손에 그것이 쥐어지는 것이 당연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는 같이 쇼핑을 하다가 "엄마가 그냥 사줄게. 골라봐"라는 말씀을 하시곤 한다. 예전보다는 훨씬 집안 상황이 여유로워졌다.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갔고 우리 식구 중 누구라도 사고 싶은 운동화가 있으면 살 수 있다. (발렌시아가는 잘 모르겠다 허허) 그런데 나는 골라보라는 엄마에 말에 "아냐, 됐어. 엄청 필요한 거 아냐."라고 말한다. 욕심을 부리지 않는 편이 더 익숙했고 그냥 받는 것이 마음 한 구석에 불편함으로 남는다. 나에게 너무 당연해질까 봐 걱정, 조바심이 든달까.
그래서 처음으로 비행기를 10시간 넘게 타고 가는 타지에서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면 치안도 아니고 영어도 아니고 경비였다. 2년 내내 강의하고 밤에는 알바를 하면서 열심히 모았지만 6개월 동안 여행할 충분한 경비를 모으지 못했다. 계속 출국일을 미룰 수 없어서 최소한의 금액만 가지고 출국하게 되었다. 어학연수를 한다는 이유로 부모님께 도움을 받았다. 도움을 받은 것도 스트레스.... 이래저래 돈에 관해서 가장 스트레스가 컸다. 계산기를 아무리 두드려도 여행 내내 편의점에서 끼니를 때워야 하는 경비였다. (미국 물가에 팁까지!) 얼굴에 철벽을 깔고 부모님께 받은 비상용 신용카드를 긁어도 됐지만 스스로 용납이 되지 않는 행동이었다.
막 처음 토론토에 도착해서는 정말 예산에 딱 맞춰서 사용했다. 30분 정도 거리는 걸어 다녔고 식사도 대충 때웠다. 몬트리올과 퀘벡에서 사용한 경비도 토론토와 비슷하게 맞춰두었다. 가서 한 끼 정도만 추천받은 맛집을 가고 나머지는 정해진 예산 안에서 꼭 사용하는 걸로. 그래야 나중에 뉴욕에서 다양하게 즐길 수 있으니!
그러다 퀘벡에 도착해서 막 번화가를 돌아다니는데 예쁜 레스토랑들에 가게들까지 모두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플러스 내 코까지... 달달한 팝콘 냄새부터 치즈 냄새까지 정말 미춰버리는 줄 알았다. 그러다가 결국 '파스타가 먹고 싶다!'라는 생각에 다다랐다. 이곳의 물가는 서울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팁'이 추가되는 순간 좀 더 비싸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다. '아 레스토랑에서 팁까지 주고 파스타를 먹기에는 내 예산이 부족할 텐데' 바로 예산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그동안 토론토와 몬트리올에서 잘 아껴 썼는데 이곳에서 무너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내 발은 어느새 레스토랑 안에...
내가 성냥팔이 소녀도 아닌데 별별 구슬픈 생각이 다 드는 것이다. '아니 그 파스타가 뭐라고 한 끼도 못 먹나? 정말 슬프다! 정말!' '내가 이렇게 궁상떨려고 이 먼 곳까지 왔나?' 괜히 아련하게 창가에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을 힐끗 봤다. 이런 구슬픈 생각을 하며 비참해질 바에 배부른 상태로 돈걱정을 하자는 아주 놀라운 결론에 이르러서 레스토랑에 들어갔고 맛있는 파스타를 먹었다.
파스타를 먹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먹으면 먹을수록 더 들어가지 않을 정도록 느끼함이 나를 휘감았고 '아! 우리의 파스타와는 또 다르구나! 생긴 건 똑같은데!' 음식에 대해 깨닫는 것들이 생겼다. 정말 이날 이후로는 정말 한국인에게 검증된 맛집이 아닌 이상 막 들어가지 않게 되었고 미국에서는 더더욱 그러지 않았다. 안 그래도 슴슴하게 먹는 나에게 정말 짜고 짠 음식들뿐이었다. 내 충동(?) 덕분에 좋은 가르침을 얻었다.
느끼하고 짰어도 분위기는 냈다는 만족감으로 퀘벡의 아브라함 평원을 찾아 나섰다. 구글 지도에서 '이곳이 아브라함 평원이야!'라고 알려주는 곳은 형체를 알 수 없는 눈밭이었다. 나는 정확히 위치도 모르면서 그냥 눈밭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들어갔다. 아주 큰 실수였다. 내 신발은 러닝화였고 구멍 사이로 눈이 숭숭 스며들었다. 한 발 내디뎌서 움직이면 푹푹 빠지기 일쑤였다. 종아리까지. 나는 3월의 캐나다를 몰랐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보던 그 멋있는 풍경을 보는 것을 결국 포기하고 나는 그냥 숙소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했다. 서치를 더 꼼꼼히 해서 구글맵에게 속지 않고 정확한 스팟을 찾아내기로 다짐했다. 내 발과 얼굴은 꽁꽁 얼어 있었고 몸을 녹일 저녁을 사들고 숙소로 갔다. 뭐니 뭐니 해도 컵라면과 맥주 조합이 몸을 녹이기 좋지! 외국에서 컵라면 먹는 것만큼 사치가 어디 있겠어 후후! 이게 최고 사치다! 기분 좋은 사치! 아주 흐뭇해하며 포크로 라면을 후루룩 먹으며 면으로 시작해 면으로 끝나는 퀘벡에서의 하루를 마무리했다.
p.s. 아이러니하게도 대학생 때는 부모님께 손 벌리는 것이 죄송하고 마음의 짐이었는데 일을 하고 돈을 벌기 시작하니까 뻔뻔해진다. 가끔 부모님께서 선물을 주시면 이제는 기분이 좋아진달까! 하하! 부자 장년 부부가 가난한 청년에게 선물을 주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 있다며.... 거절은 없고 감사히 받기만 하겠다며... 어쩔 수 없는 간사한 마음이란... 받은 만큼은 아니어도 드릴 수 있게 되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무마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