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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흐니 Oct 16. 2021

오래 보고 싶다, 내 학생들

짧게 스치듯 지나가는 한 선생으로서 한탄하기

나는 청소년 진로 강사이다. 짧게는 한두 시간 학교 창의적 체험 활동시간이나 진로 시간에 들어가서 강의를 한다.  두 시간씩 대 여섯 회 수업할 때도 있지만 하루 두세 시간 강의하고 끝인 경우가 많다. 주제도 다양하다 기업가정신부터 디자인씽킹, 학습코칭, 강점발견 등 한 아이가 성인으로 성장하면서 필요한 근육들을 길러주는 무엇이라면 공부해서 강의를 한다. 공교육도 사교육도 아닌 그렇다고 대안교육을 하는 것도 아닌 보따리 장사를 하는 듯한 프리랜서 강사인 나는 교육계의 애매한 위치에 있으면서 서글플 때가 참 많다. 가장 속상하고 큰 벽을 마주할 때는 아이들의 시그널을 느꼈을 때다. 나 좀 봐주세요. 나 힘들어요. 나는 도움이 필요해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어떻게든 변할 수 있다면 해보고 싶은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고도 하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때 가장 서글픔이 몰아친다. 동시에 교육을 하는 의미를 다시 되짚어 보게 된다.



한 번은 한 고등학교로 학습코칭을 하러 갔을 때 일이다. 공부하는 방법, 학습을 위한 좋은 환경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 일장연설을 하는데 한 학생이 꽤 잘 들으며 나랑 눈이 자주 마주쳤다. 그러다 이내 공부 잘하는 방법이라는 내 강의 주제가 따분했는지 엎드리기 시작했다. 잠들지는 않았다. 자신의 학습 상태에 대해서 체크해보고 어떻게 앞으로 공부하면 좋을지 계획을 세워보라고 하니 백지다. 그래도 자지는 않는다. 꼿꼿이 앉아서 생각을 골똘히 한다. 나는 아이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학습 동기가 낮은 편이구나, 모두 높을 수는 없지. 그러면 어떤 것에 관심이 있어요?" "그런 거 없어요. 공부하는 거 싫어요." 그러고 보니 강의 내내 공부하기 싫다는 말을 크게 했던 것 같다. "저는 꿈도 없고 관심 있는 것도 없고 공부는 싫어요." 아이는 같은 말을 다양한 문장으로 바꿔서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학습코칭 수업을 지루해하는 한 학생으로 보였는데 눈빛이 좀 달랐다. 계속 나를 쳐다보고 생각을 하고 활동지를 들여다봤다. "공부 싫어해요. 좋아하는 과목 없어요."라는 이 아이의 말이 반항적으로 들리다가도 이내 "저도 답답하고 돌파구가 필요해요."라는 말로 들렸다. 어쩐지 고작 두 시간 강의를 끝내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무겁고 집 가는 내내 아이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내가 뭐라고 두 시간을 만나든 2개월을 만나든 2년을 만나든 아이를 변화시킬 수는 없는데 괜히 나에게 시간이 더 주어졌으면 하는 마음이 생겼다. 내가 많이 부족한 선생이라도 그래도 관심 한 스푼 더 줄 텐데 하고 말이다.


또 다른 학교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세상 제일 무섭다는 중학교 2학년 학생들과 하는 진로 수업이었다. 역시 엄청 스펙터클 하게 수업하지 않는 한 조금씩은 지루해한다. 그래도 학생들에게 폰을 쥐어주고 관심분야를 검색하게 하니까 초점 흐린 눈들이 또렷해지면서 교실에는 이내 활기가 돌았다. 폰을 나누어 주는데 한 학생이 "저는 오늘 폰을 안 가져온 것 같아요"라고 하는 것이다.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내 폰을 빌려주었다. 그런데도 그 학생은 가만히 멈춰있었다. "관심 분야 없어요?"라고 물어보니 그렇단다. 그래서 혹시 친한 친구가 있느냐고 물어봤다. 친한 학생이라도 있으면 이 친구에 대해서 뭐라도 힌트를 줄 것 같아서 물어본 건데 친한 친구도 없다고 했다. 들어보니 전학 온 지 이 주밖에 되지 않았다고 했다. 아이는 꼭 내 심장이 자신의 처지를 알아줬으면 하는 말투로 친구가 없다고 이야기했다. 내 수업은 고작 15분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찾아볼까? 표에 있는 것들 하나하나 잘 살펴볼래요?" 내가 그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의 전부였다. 괜히 쉬는 시간에 대화를 해볼 수도 연락을 주고받을 수도 없는 위치, 입장이었다. 나는 그저 두 시간 진로 수업을 채우고 떠날 사람이니까.


또 한 번 집 가는 길에 다른 실루엣이 내 눈에 아른거린다. 여러 실루엣들이 내 앞에 겹쳐서 나타난다. 내가 미처 위로하지 못한 아이, 더 말 걸지 못한 아이, 그냥 뒤돌아 두고 올 수밖에 없었던 아이. 내가 정말 대단해서 누군가의 인생을 제대로 바꿔놓겠다고 시작한 교육이 아니었다. 누가 봐줬으면 하는 마음을 가진 친구들을 조금이라도 들여다보고 싶어서 시작했던 교육이었는데 나는 그 누구 하나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당장 해야 하는 것에 급급했고 시간을 채우기 바빴다. 시간이 있다면 기회가 더 주어진다면 그래도 아쉬움은 남겠지만 한 번이라도 더 눈길을 주고 말을 걸고 에너지를 줄텐데. 잘 가르칠 자신은 없어도 듬뿍 사랑해줄 자신은 있는데 너무 내 처지가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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