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일 D-17
나보다 몇 해 일찍 결혼한 친한 지인이 나에게 물었다. "만약에 결혼하면 애 낳을 거야?"
이 질문을 받을 때 나는 결혼 전이고, 결혼 생각이 크지 않던 때였는데, 그래도 낳고 싶다고 했다.
결혼을 하는 것보다 아이를 가지는 것을 더 꿈꿨던 것 같기도 하다.
의외의 대답에 이 재미난 친구는 또 의외의 질문을 한다. "환경오염도 심하고, 경쟁도 심하고, 치안도 안 좋은 이 세상이 아이를 키우는 게 맞을까? 낳아줬는데 원망하면 어떡해?"
오은영 박사는 뉴스라디오에 나와서 과거와는 달리 아이가 생산재가 아닌 소비재라고 이야기한다.
낳고 나면 경제적 이득을 얻기보다 경제적 희생을 더 많이 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경제적 관점에서만 봤을 때 아이를 낳는 것은 어릴 적 쌓아놓은 스펙과 커리어에 방해가 되며
투자가치가 없는 행위다. 혼자서 혹은 둘이 벌었을 때 오히려 더 안정적일 수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그렇다. 아이는 소비재다. 많은 희생과 투자를 통해 제 한 몫하는 사람을 만들어야 하고, 나 자신 역시 부모님의 투자와 희생으로 겨우 풀칠하며 살아가는 사회인이 되었다.
그럼에도 내 뱃속에는 곧 태어날 아기가 숨 쉬고 있다. 친한 지인의 질문에, 경제논리에 그 어떤 대답도 '합리적'인 이유가 될 수는 없겠지만 나의 생각은 이렇다. 그 어떤 시대에 태어나도 삶은 고달프다. 전쟁이 벌어지는 곳에 태어나도, 경제적 부흥기에 태어나도, 남자든 여자든 누구든 그냥 삶은 힘겹고 외로운 시간이다. 부모의 역할은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어떤 환경에도 살아갈 힘을 만들어주는 것이기도 하니까.
살아갈 힘을 주는 건 그저 사랑인 것 같다.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사랑만큼 무한한 사랑이 있을까? 나는 한 인간으로 무한한 사랑을 쏟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비록 몸이 망가지고, 많은 것을 양보하게 되겠지만 한 인간을 사랑으로 채우고 세워나가는 일이 얼마나 나에게도 가치 있는 일이 될지 느껴보고 싶었다. 나의 아이, 그냥 한 사람이 내 사랑으로 인해 세상을 살아갈 힘도 얻고, 세상을 아름다운 곳이라고 경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사람을 세우는 경험을 부모로서, 엄마로서 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다.
결혼을 하고, 출산을 앞두면서 이렇게 '합리적'이지만은 않고, 이상으로 가득 찬 생각이 들 때면 내가 사랑받은 딸이라는 걸 느낀다. 내 안에 채워진 무언가가 있고, 나눌 무언가가 있어서 아이가 있는 행복을 꿈꾸는구나 싶다. 사실 20대까지만 해도 나는 부모님과 애착형성이 잘 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허구한 날 말 안 듣는 나쁜 딸, 열심히 키워놨더니 제멋대로 구는 딸이라고 비난받을 때가 많아서 나는 부모님께 어떤 존재일까 고민하던 때가 더 많았다.
30대가 되면서는 부모님께 무언가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우울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아주 결정적인 순간들엔 부모님은 내 편이셨다. 이제 좀 크고 나도 부모가 되려다 보니 모질게 하셨던 그 말들이 무엇인지 알겠고, 서툴 수밖에 없었던 부모님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를 평가하고 판단하려던 것이 아니라 그저 내 딸이 귀하고 아까워서 하는 말들이었다는 걸. 내가 생각한 것보다 나를 더 큰 사람으로 생각해서 아쉬는 마음에 내뱉은 말들이라는 걸 깨닫는다. 그 마음을 조금씩 이해하고 깨달으며 엄마가 될 내 안에 단단한 무언가가 생겨나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지금 아기를 품을 만큼 내가 어른이 되었다는 건 그만큼 부모님의 엄청난 지분이 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어리고 가난했던 그들이 자신의 젊음을 희생해서 사랑으로 키워낸 존재라는 걸. 나는 아마 오랫동안 알고 있었고 느끼고 있었을 거다. 그 고귀한 사랑을 또 내 아이에게 잘 나눠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