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가 같이 일을 한다고 하면 수강생들께서 가장 많이들 물어보시는 질문 '두 분은 안 싸우세요?' 사이가 좋으신가봐요, 너무 보기 좋아요, 부러워요.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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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라고 왜 안 싸우겠나. 말 한 마디, 억양 한끗차이, 대답을 했냐 안 했느냐 차이로도 쉽게 목소리가 커진다. 정말 터무니없이 작고 사소한 것들로도 모녀 사이의 불화를 지피기엔 충분하다. mbti 전에는 혈액형이던가. 우리집은 식구 네명이 모두 O형이다. 싸울 땐 세상이 끝날 것처럼 싸운다. 친구같은 모녀 사이도 예외없다. 가장 최근의 다툼을 소개하자면.. A수강생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데 그건 A가 아닌 B수강생이다, 아니다 A가 맞다 로 목소리를 키우다가 내기할까! 100만원! 으름장을 내기까지 했다. 어이없고 유치하지만 결과는 누가 맞았는지 아직 해결 못 봤다. 매일 마주하는 수강생분들이 워낙 많으니 가끔 우리끼리 이런 소통의 오류가 생긴다.
엄마 제발 말할 땐 두서없이 말하지 말고 주어를 꼭 써서 말해라, 꼰대처럼 말하면 안 되니 조심해라, 요즘은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으니 편협한 시각으로 보면 위험하다, 카톡이나 문자할 때 제발 오타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고 메시지를 전송해라, 안 보이면 안경을 써라 등등. 평소엔 편하게 농담 던지며 지내다가도 싸울 때 만큼은 돌연 변심하는 엄마의 단골멘트. '내가 네 친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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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엄마랑 같이 일할 때 좋은 점은 뜻밖에 있다. 생각하는 것도 비슷하고 가치관도, 추구하는 바도 비슷한데, 엄마는 내가 생각하는 수준보다 한 두 단계 더 위에서 내려다보는 능력이 있다. 나는 그걸 연륜에서 오는 현명함이라고 본다.
일을 하다보면 업무적으로 거래처나 외부인이 끼는 경우가 허다한데 모든 일이, 모든 사람이 내 맘 같진 않은 법이다. 어떻게 일을 이렇게 처리할 수 있지? 왜 사람이 이렇게 말만 번지르르 하고 실속은 없지? 어쩜 이렇게 회신이 늦고 일처리가 답답할 수 있지?자료 보내준지가 언젠데 왜 아직도 일이 완료가 안 됐지? 등등. 그럼 나 같이 성격 급한 사람은 속에서 욱하니 올라와 일을 감정적으로 대할 위험이 있는데, 한결 차분한 엄마와 모든 진행상황을 공유하고 있으니 이를 예방할 수 있다. 천만다행이지.
성격이 급해도 너무 급한 나는 뭐든 빠릿빠릿하고 완벽하게 처리하고자 하는 피곤한 완벽주의자 성향이 있다. 내가 하는 것만큼 남도 그래주길 은연중에 바라고 기대한다는 게 문제다. 옛날 어딘가에서 인턴으로 근무할 때 사수로부터 조언을 듣길, 다 좋은데 과제 제출하듯이 일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는 말씀이 기억에 남아있다.
엄마는 나의 바짝 서서 팔랑거리는 기를 한 템포씩 부드럽게 낮추며 연락 오겠지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이렇게 말하지 말고 단어를 조금 고쳐보면 어때, 지금 말투는 너무 딱딱하니 부드럽게 돌려 말해보자, 지금은 타이밍이 좀 애매하니 담에 또 이런 일이 있으면 그때 건의하자, 등등.
엄마는 비록 나보다 엑셀을 못 다루고 증빙자료를 못 만들고 외부 사람들과 업무 메일을 빠르게 주고 받진 못할지라도, 사람 대 사람으로서 매사 멀리 보고 넓게 볼 줄 안다. 어차피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기에 예외가 있을 수 있음을 이해하고, 차분하고 섬세하게 더 넓은 범위로 생각한다.
나도 나이가 더 들고 세상을 더 겪으면 엄마처럼 넓게 사고할 수 있을까. 지금보다 더 현명하고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그럼 좋을 텐데. 참 다행이지. 엄마가 내 엄마라서 너무 좋아. 나는 오늘도 엄마에게 살을 부비며 애교를 부린다. '우리 엄마는 뭘 먹고 자라 이렇게 현명해?' 어이구 다시 엄마 배 속으로 들어와. 드루와드루와. 우리 모녀는 오늘도 평화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