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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집사 Nov 01. 2022

평생 먹어본 전복요리 중 최고

이름도 거룩할 전복초

사진 출처: 본인 제공



이제는 결혼할 때 많이들 생략한다는 폐백과 이바지, 답바지 혼례문화. 굳이 전통을 따르며 형식적인 것들을 챙기기보다 신혼여행 같은 실속을 더 차리는 게 낫다는 인식이 많아지고 있다. 우리 스튜디오에도 이런 문의가 가끔 온다. '이바지는 어떻게 하세요?', '선생님도 폐백음식을 하시나요?'


지금처럼 이렇게 본격적으로 쿠킹스튜디오를 운영하기 전부터도, 엄마는 주위 지인들의 부탁을 받고 혼자 집에서 폐백, 이바지를 다수 해냈었다. 그러다 입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아가 강남과 분당 인근의 일명 VIP 고객들을 대상으로도 혼례음식 주문을 많이 받으면서 '어떻게 이런 걸 다 혼자 집에서 했지?' 놀라울 만큼의 저력을 보였다.


당시 학생이었던 나는 내 생활이 바쁘다는 핑계로 세세히 기억하진 못하지만, 분명한 건 우리 집은 원래 항상 엄마 덕에 음식이 풍요로웠고, 부엌에선 엄마가 늘 업을 하는 잔상이 남아있기에 그냥 '그런가 보다' 한다.



사진 출처: 본인 제공



이젠 사라져 가는 추세라곤 하지만, 혼례음식을 바라보는 엄마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우리 딸은 집에서 이런 음식을 먹고 이런 문화와 환경에서 자라왔어요, 하며 보여주는 것이 신부 측에서 준비하는 이바지, 그리고 이것에 답하여 신랑 측에서 보내는 음식이 답바지이다. 그런데 폐백과 이바지 등이 워낙 고가의 음식들이다 보니, 가끔은 의미가 변질돼서 너무 보여주기 식의 비싼 식재료만 꾹꾹 채워 넣는 수준으로 가볍게 생각하는 점이 조금 아쉽다고 엄마는 말한다. 딸을 가진 입장에서 그 숨은 뜻에 진지하게 임할 수밖에 없다고.


전통 혼례음식은 손이 엄청 많이 간다. 종류나 적은가. 그래서 비싼 것이다. 칠절판, 구절판에 다채롭게 담아내면 우와, 감탄하며 너무 예쁘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수밖에 없는데 이를 위한 그 과정은 어마 무시하다. 우리 고유의 전통 디저트라 할 수 있는 정과들이 많아 더욱 그렇다. 많은 분들이 아실 법한 도라지정과, 인삼정과, 호두정과 등등 모두 예쁘게 손질한 재료들을 설탕시럽에 재웠다가 튀기거나 말리는데, 문제는 이걸 말리고, 뒤집고, 말리고, 뒤집고 또 말리고의 반복 과정을 거친다는 것.


어쩌다 도라지정과 수업이라도 할 때면 내가 맨날 엄마에게 묻는 레퍼토리다. '치워도 돼?', '아직 다 안 말랐어', '다 마른 것 같은데?', '아직 아냐', '도라지 언제 끝나?', '조금만 더' ... 맛있으니 용서가 되는 과정이지 보통 손이 많이 가는 게 아니다.



사진 출처: 본인 제공



요리수업을 (매일) 많이 하다 보니, 이젠 이전만큼 폐백과 이바지 주문받기가 어려워졌지만 이바지 음식은 꼭 결혼할 때만 해당되는가. 아니다. 평소 귀한 분께 신경 써서 선물하고자 할 때 생각보다 이런 음식 선물은 무척이나 좋은 반응을 받는다. 드셔 보고 맛있으니 또 생각나고, 혼자 드시는 게 아니라 가족들과 같이 드실 테니 피드백과 리액션은 2배, 3배로 부푼다. 평범한 사물형의 선물이 아니라, 음식이야? 흔치 않은 경우라 자주 회자된다. 게다가 직접 만든 음식들로 선물했다네? 그럼 그 정성에 반해 게임 끝이다.


그래서 우리 한 단골 수강생님께서는 주위 선물하실 일이 있을 때마다, 이렇게 이바지 음식들로 개별 1:1 수업을 요청해서 푸짐하게 음식을 만들어 가신다. 실제 혼례음식을 준비하는 것처럼 도자기 찬합 그릇에 완성된 음식을 담아 보자기 포장으로 마무리한다. 고급의 끝판왕일 수밖에.


엄마와 오랜 인연이 있는 수강생님께서 맨 처음 이바지 스타일로 음식을 준비하실 때 요청하신 반찬류는 전복초, 홍합초, 그리고 호두장과였다. 전복초와 홍합초는 싱싱한 전복과 홍합을 준비하는 것부터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이른 새벽부터 가락 수산시장에 들러 아주 크고 좋은 놈들로 데려왔다. 아주 약간의 과장을 보탠다면, 내 주먹만 한 사이즈의 홍합들을 데려온다. 그리고 깨끗이 손질한 전복과 홍합은 각각 다른 양념장에 조리면서 끓여 완성하게 된다.



사진 출처: 본인 제공



찬합 그릇에 전복초를 예쁘게 차곡차곡 담는데 생각보다 전복이 많이 들어가게 되면서, 남은 전복초가 몇 개 없었다. 엄마는 나에게도 먹어보라고 그중 한 개를 건넸고 난생처음 먹어보는 음식에 곧 나는 '?!?!'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와, 너무 맛있어!"

"그치? 엄청 부드럽지?"

"와, 선생님 너무 맛있어요! 태어나서 먹은 전복요리 중에 최고인 것 같아요!"


엄마와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아 더욱 친근한 이모 같은 수강생님 팔을 부여잡은 나는 그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입틀막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 실장님이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으면 전복이 더 많이 남았어야 하는데 없어서 어떡해, 수강생님도 같이 시식하며 너무 맛있다고 만족해하셨다.


"음, 역시. 역시 맛있어요."


전통 한식이면서 궁중음식으로 전해지는 전복초는, 짭조름한 간장 양념이 골고루 배어들어 연한 밤색이 된 전복이 무척이나 부드러운 식감을 자랑한다. 그러면서도 전복 특유의 쫄깃함을 잃지도 않았는데, 일단 한 입 먹으면 전복이 이렇게 부드러워질 수 있다고? 하는 생각에 놀라게 되는 것이다. 밥반찬인데 크게 짜지도 않다. 그래서 맨입에 먹어도 자꾸 손이 가고, 돌아서면 생각나는 맛이 된다.


 

사진 출처: 본인 제공



수강생님께서는 몇 달 뒤, 또 다른 선물하실 일이 있어 이바지 음식들을 수업 메뉴로 부탁하셨다. 이때는 전복초, 홍합초 그리고 새롭게 더덕구이를 준비했다. 내가 전복초를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된 엄마는, 이날 더 많은 양의 전복을 넉넉히도 준비했다. '수업에 쓰고 남은 건 우리가 다 먹자!' 하며 의기양양 즐거워하는 엄마의 모습에 나는 그저 브라보 박수를. '너무 좋아. 너무 기대돼.'


수업시간에 수강생님 찬합 그릇에 완성된 전복초를 가득 채워 담고도, 이 날은 따로 도시락 반찬통 두 통이나 나올 만큼 양이 넉넉히 남았다. 한 통은 수강생님께 드리고 , 남은 한 통은 우리가 그날 가족들과 저녁식사하며 먹어치웠다. 아주 깨끗이. '전복이 이렇게 맛있어도 돼?'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 엄마는 잊지 못하는 말이 있다고 했다.


"예전에 김 사장님도 그러셨잖아. 돈만 많으면 전복초를 산더미 같이 쌓아두고 계속 퍼 먹고 싶으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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