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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집사 Nov 11. 2022

엄마는 어르신들의 아이돌이야

지금은 실버시대

원래는 일회성 이벤트 수업이었다. 강남구의 한 노인복지센터 관계자의 연락을 받고 어르신 쿠킹클래스를 처음 진행했던 때. 단 1시간의 수업을 마치고 돌아가신 어르신들께서 복지센터에 입소문을 아주 단단하게 내신 모양이다.


"선생님, 작년에 했던 어르신 쿠킹클래스요. 올해도 해볼 수 있을까요?"


사진 출처: 본인 제공


반응이 너무 좋았다고. 그렇게 회차를 점점 늘려가더니 이제는 상반기에 1차례, 하반기에 1차례. 공식적으로 파트너십을 맺어 매년 어르신 쿠킹클래스를 진행하고 있다. 강남구에 등록된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굵직한 복지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쿠킹클래스 프로그램을 신청하신 어르신들은 복지센터 직원이 동행하여 우리 스튜디오로 직접 오셔서 요리수업을 수강하신다.


우리 스튜디오 공간이 그리 넓지 않아 한 번에 모실 수 있는 인원이 한정돼 있다 보니, 복지센터 측에서는 소수 정원으로 A그룹, B그룹 나누어 어르신들을 입장시키고 있다. 이제는 워낙 어르신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자자해 복지센터의 여러 프로그램들 중 가장 인기가 높은, 아니 뜨거워서 대기자가 너무 많다 보니 직원들도 당첨자 선발하듯 매 분기마다 어르신들 참석 명단을 추려낼 정도라고 하셨다.


사진 출처: 본인 제공


"선생님이 대체 어떻게 수업을 하시길래 어르신들이 이렇게 좋아하시는지 궁금해서 와 봤어요."


그러던 어느 수업 날, 복지센터의 담당 팀장님이 사전 연락 없이 깜짝 방문을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르신 복지 차원에서 진행하는 공예, 요가, 서예, 라탄, 체조 등등 다양하고 유익한 프로그램들이 많은데 그중 어르신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건 바로 우리 요리수업이라는 것.


평균 연령 80대. 그중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도 있으니, 어르신 요리수업에는 안전상 불을 쓰지 못한다. 그리고 어르신들은 자리에 앉아서 요리를 하셔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이렇다 보니, 메뉴 기획안을 새로 정리할 때마다 매번 쉽지 않다. 메뉴 선택의 폭이 넓지 못하다. 그럼에도 매번 새로운 음식, 맛있고 영양가 있고 조리과정이 쉬운 음식들을 소개해드리고 싶은 마음이니  어르신 요리수업을 앞두고는 우리 레시피북과 이전 기록들을 계속 살펴본다.


사진 출처: 본인 제공


"안녕하세요, 어르신들. 반갑습니다. 앞으로 한 달 동안 매주 똑같이 이 시간에 오실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4번 볼 거예요."


"지금은 모든 게 어색하고 낯설지만, 이따 수업 끝날 때쯤 되면 너무 편하고 즐거우실 거예요. 그러니 마지막 수업 때는 얼마나 섭섭하시겠어요."


"앞으로 절대 결석하지 마시고, 병원 스케줄 겹치지 않게 일정 잘 보시고, 우리 앞으로 한 달 동안 잘 만나봐요, 어르신들."


매번 어르신 요리수업이 있을 때면, 이렇게 다정한 인사를 건네며 1시간 동안 눈을 맞추고 수업을 이끄는 엄마는 세상 상냥한 여자가 된다.


사진 출처: 본인 제공


불을 못 쓰는 어르신들 대신 엄마는 단독 시연으로 죽, 국, 탕, 수프 등을 끓이고 어르신들은 가볍게 손을 놀려볼 수 있는 간단한 칼질 및 손질로 밑반찬, 김치, 샌드위치, 김밥, 떡 등을 만들어 보신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엄마가 만든 시연작은 작은 한 입 그릇에 담아 어르신들께서 직접 맛을 볼 수 있도록 시식을 하고, 어르신들이 각자 완성하신 음식은 준비한 용기에 담아 모두 댁으로 가져가실 수 있도록 진행한다.


입맛 없을 환절기에는 맛깔나는 밑반찬을, 날씨 좋은 날엔 나들이 가시라고 소풍 도시락을, 가끔은 젊은 친구들처럼 즐겨보시라며 재미있는 이색 디저트와 카페음료를, 계절이 바뀌어 으슬으슬해질 땐 따뜻한 국을 준비한다.


어르신들은 금세 편안한 분위기에 매료되고, 쉬우면서 맛있는 음식들에 놀라워하시며, 평생 모르고 지냈던 식재료와 건강 관련 지식 이야기에 흥미로워 눈을 반짝이신다.


매주 1시간의 수업, 1달간 총 4회 차로 이어지는 프로그램. 어르신들은 이 요리수업에 결석하지 않으려 사사로운 약속은 뒤로 미루고, 병원 스케줄을 조절하신다. 그리고 본인이 아끼는 가장 예쁘고 좋은 옷으로 치장하시고 나들이 가는 것처럼 우리 스튜디오에 놀러 오신다.


사진 출처: 본인 제공


첫 수업에는 숫기가 없어 아무 말씀 없이 조용하셨던 분이 마지막 수업에는 무려 1시간 더 일찍 오셔서 '선생님이랑 이야기하고 싶어 일찍 왔다'는 어르신.


 앞에서 과일을 팔길래 선생님 생각나서 사 왔다며 까만 봉다리를 건네시는 어르신.


'선생님 건강하셔야 해요' 하며 꾸벅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시는 88세 최고령 어르신,


나이가 들면 점점 불러주는 데가 없어 이렇게 매주 고정적으로 약속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를 거라는 어르신,


제주도에서 디저트 카페를 운영하는 딸한테 요리수업을 자랑했더니 딸이 선생님 명함 좀 가져다 달라고 했다는 어르신,


집 냉장고에 오래된 발사믹 식초가 있는데 먹어도 되는지 어째야 하는지 통 알 수가 없던 차에, 친구는 그냥 버리라고 했지만 '아냐! 우리 요리선생님한테 가서 물어볼 거야' 하셨다는 어르신,


'선생님 얼마나 할 일이 많은데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도 정성을 쏟으셔요' 라며 손수 담은 아로니아주를 정성껏 갖고 오셔 밤에 피곤할 때 와인잔에 따라서 와인인 척 마셔보라는 어르신,


'선생님 피곤할 박카스가 좋아요? 비타500이 좋아요?' 물어보셔서 글쎄요, 비타500이 좀 더 나으려나요? 하는 대답을 듣곤 일주일 뒤 비타500 1 상자를 갖고 나타나신 어르신.


등등


사진 출처: 본인 제공


1개월의 종지부를 찍는 마지막 4회 차 수업에는 엄마가 어르신들께 작은 선물을 하나씩 드린다. 한식디저트 다과 모둠 상자로, 실제로 우리 스튜디오에서 답례품 주문을 받는 베스트 품목들로 이루어져 있다. 양갱, 월병, 쌀찜카스테라, 약과 등 노곤한 오후 시간대에 따뜻한 커피나 차와 함께 곁들이시라고.


그렇게 어르신들은 마지막 수업날 양손 가득 선물과 음식을 받고 스튜디오 밖으로 나가시는 길에, 한 번이라도 엄마와 눈을 더 마주치고, 한 번이라도 손을 더 잡아보고 싶어 머뭇거리신다. 등을 쓰다듬고, 손을 꼭 잡으며 건강하시라는 따뜻한 인사와 함께.


사진 출처: 본인 제공


이 프로그램을 한지 벌써 햇수로 4년 차. 가끔 중복되는 분들도 계시지만 대부분 처음 뵙는 어르신들이니 인원수 대충 잡아 계산해도 그동안 만나본 어르신만 대략 130명에 육박. 강남구 내의 어르신들을 매년 뵙고 있으니 이제 서초구, 송파구까지 입소문이 번지고 있다. 심지어 지난 어느 출근길에는 지하철역 안에서 누가 아주 반갑게 인사를 건네시길래 봤더니, 우리 수업을 통해 만난 어르신이셨다...! 


"엄마는 어르신들의 아이돌이야."


엄마가 무슨 말을 해도 좋다고 꺄르르, 조리복을 입은 날에는 예쁘다고 꺄르르, 마지막 기념사진 같이 찍자고 하면 사진 꼭 공유해달라고 꺄르르.


이렇게 든든한 열성팬들이 매년 생기는 기분이 어때?


"일부러 나가서 봉사들도 하는데, 우리는 어르신들이 직접 와 주시니 얼마나 좋아. 얼마나 감사한 일이니."


엄마는 미스트롯 나가도 될 것 같아. 할머니들이 뽑아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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