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e 1
졸업을 하고 나서 제일 무서운 것 그리고 부담되는 많은 존재중 하나는 바로 부모님의 '기대'가 아닌가 싶다. 우리 부모님은 직접적으로 내게 '나는 너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았지만, 말을 하지 않아도 암묵적으로 느껴지는 느낌적인 느낌이란 게 있다. 그 느낌은 이런 느낌이다: '이제 4년 동안 원하는 공부를 시켜줬으니,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돈 많이 벌고 얼른 성공해라.' 이런 부담감 아마 많은 졸업생들이 느끼고 있을 것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벤자민은 다행히 부잣집 아들이라 돈의 대한 걱정은 또래 졸업생들에 비해 들 걱정하긴 하지만 부모님의 '기대'의 대한 부담감을 피해 삐딱선을 타고 있는 친구다. 벤자민은 대학 졸업 후 집으로 돌아와 그야말로 '잉여' 생활을 한다. 무엇을 해야 할지도, 뭐를 하고 싶은지도 모른 채 빈둥빈둥 놀고만 있는다. 내가 부모 입장이라고 해도 속이 탈것 같다. 미국 대학 비가 좀 비싼가! 4년 동안 고급차 3대 값을 까먹고 이제 좀 나가서 돈도 벌고 잘 살 줄 알았는데 이건 뭐 불효자도 이런 불효자가 없다.
다른 집 자식들은 다들 잘 나가는 거 같아 배가 아팠는지, 벤자민의 부모님은 자기네들 면도 세우고 아들 면도 세울 겸 졸업한 벤자민을 위해 삐까뻔쩍한 졸업파티를 하기로 결정한다. (삐까뻔쩍 아닌데 사실 집이 으리으리해서 대충해도 삐까뻔쩍해보여서 적어놨다. 부러운 놈) 근데 말만 벤자민을 위한 파티지, 손님들은 죄다 부모님 친구들밖에 없다. 왠지 결혼식장에 신랑 신부 하객보다 부모님 하객이 많은 것과 같은 느낌이다. 너무 암울해진 벤자민은 자기 방에 돌아와 '아 넘나 구린 거'라는 표정으로 앉아 자기가 키우는 열대어들을 슬프게 바라본다. 그때 문이 열리면서 아빠와 오랜 비즈니스 파트너 로빈슨 아주머니가 들어온다.
다짜고짜 집에 데려달라고 하는 로빈슨 아주머니. 딱 봐도 이 아줌마가 영계 꼬실라고 작정을 한 모습이다. 뇌쇄적인 눈빛으로 "엄.. 벤자민.. 나 집에 좀 데려다 줄래?"라고 말을 한다. '귀찮아 죽겠는데 진짜 짜증 나는 아줌마일세'라는 표정으로 로빈슨 아주머니를 댁으로 모셔다 드렸다. 근데 이 고픈 아주머니는 벤자민에게 들어와서 차나 한잔 마시고 가란다. 아줌마들 사이에서의 라면 먹고 가 란달까? 어쨰뜬, 뭐 굳이 다 설명을 안 해도 알겠지만, 이것을 시작으로 벤자민과 로빈슨 아주머니는 불륜 관계가 된다.
이 사실을 알리가 없는 벤자민의 부모님은 로빈슨 부부의 딸 엘레인을 만나보라고 권유를 한다. 로빈슨 아주머니랑 응츠응츠한 관계이고, 엘레인에 대한 마음이 1도 없던 벤자민은 그냥 만나서 밥만 먹기로 한다. 그리고 이미 로빈슨 아주머니한테 걱정 말라고 엘레인이랑 만나도 밥만 먹고 헤어질 거라고 약속한 벤자민은...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 엘레인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정말 이래서 인생은 항상 똑바로 살아야 한다. 어느 순간 엿을 먹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러게 왜 아줌마랑 응츠응츠를 해가지고.. ㅉㅉㅉ 어쨌뜬, 벤자민은 사실을 말할 수 없음에 양심의 가책을 가지고 똥 마린 개모냥 낑낑되다가 결국엔 솔직하게 털어놓게 된다. 당연히 미친년이 아닌 이상 엄마랑 그렇고 그런 관계를 가진 남자를 어떻게 마음에 품겠는가! 엘레인은 절규하고 고통스러워하며 다시 자기의 학교인 유씨 버클리 (버클리 음대 아니죠)로 돌아간다.
근데 이 양심 없는 철면피의 소유자 벤자민은 엘레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차를 타고 5시간 거리인 버클리까지 올라가 숙소를 잡고 매일 엘레인에게 가서 자기의 마음을 고백한다. 근데 이게 우째된일... 엘레인은 다른 핸섬보이와 사귀고 있었다. 하지만 딱 봐도 엘레인이 진짜 좋아해서 사귀는 게 아니라 벤자민의 대한 복수심? 뭐 말하자면 '너보다 더 잘난 놈 만나고 있다 이 새끼야'라는 식으로 사귀는 거 같다. 그걸 본 벤자민 열불 터지고 계속 결혼하자고 조른다. 엘레인도 머릿속으론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 마음이 자꾸 벤자민한테 가니까 말로는 튕기면서 자꾸 벤자민과 만난다. 얘도 보면 이상한 애다.
그러던 어느 날! 엘레인의 아버지, 미스터 로빈슨이 벤자민에게 찾아온다. 로빈슨 부부가 이혼하기로 했다고 "그것은 바로 너 때문이야!!!!!! 그러니까 우리 딸내미한테서 꺼져 이 더러운놈아!!!꿰에에엑!! 아 그리고 엘레인 곧 결혼함ㅋ"라고 경고를 하고 유유히 사라지신다. 벤자민은 반은 미쳐서 엘레인을 찾아다닌다. 하지만~ 없죠오~ 결국은 결혼식 당일날 엘레인의 남친 친구들에게 수소문을 한 끝에 결혼식장을 찾아내고 "엘레인!!!!!!!
엘레인!!!!!!"을 한 열 번을 외친다. 뭐 그 뒷일은 말을 안 해도 다들 눈치를 챘을 것이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건 그냥 단순한 불륜+러브스토리가 아닌, 성숙함과 미숙함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졸업생의 모습이다. 아직 이성적으로 행동하기보단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미련하고 생각 없이 단순한, 하지만 가장 자기의 감정에 충실하고 물불 안 가리는 용감함과 뜨거움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닌가 싶다. 가장 아프고 가장 어설프고 힘든 시기. 찌개용 두부처럼 어설프게 단단한, 하지만 끓는 주전자 보다도 더 뜨거운 나이. 이 영화의 OST "The Sound of Silence"의 가사 중 "people talking without speaking, people hearing without listening" 이 지금 이 커플을 말해주는 것 같다. 벤자민과 엘레인이 지금 무슨 말을 해도, 어떤 말을 해도 어른들은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고 이해도 못할 것이다. 그들이 지금 제일 필요로 한건 침묵의 소리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