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영화. <자산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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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어보 The Book of Fish, 2019 제작
한국 | 시대극 | 2021.03.31 개봉 | 12세이상 관람가 | 126분
감독 이준익
영화 <자산어보>는, 큰 개인과 작은 사회에 관한 이야기이며, 물 같은 개인과 돌 같은 사회에 관한 이야기이며, 흐르는 개인과 고착된 사회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길이라면 자신을 기꺼이 내던졌던 개인과, 그러한 개인을 감당하지 못한 사회에 관한 이야기이니, 물처럼 흐르는 큰 존재와, 돌처럼 고착된 작은 존재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돌처럼 고착된 당시 조선은, 하늘 위, 땅 위, 물밑의 실재와 현상을, 물처럼 흐르며 자유롭게 유랑했던 정약전과 같은 종류의 사람을, 감당할 수 없었다. 정약전이 제자 창대에게 한 다음의 말은, 돌처럼 고착된 사회와, 물처럼 자유로이 유랑하는 개인을, 잘 드러낸다. “나는 성리학으로 서학을 받아들였는데 이 나라는 나 하나도 못 받아들였다”
정약전(丁若銓, 1758년 4월 8일(음력 3월 1일)~1816년 6월 30일(음력 6월 6일))은, 천주를 믿고 서학을 한 죄로, 흑산도로 유배된다. 주자를 믿어 성리학을 탐구하는 일에 정진하여 조선의 질서를 공고히 하는 정초 작업에 기여해야 하는데, 천주를 믿어 서학을 탐구하는 일에 정진하여 백성을 현혹하고 결국 조선 땅의 질서를 교란할지 모르니, 흑산도로 유배당한 것이다. 박해자들에게 천주는 참으로 공허한 개념이었다면, 정약전에게 주자는 참으로 무서운 존재였다. 박해자들과 정약전은, 적어도 서로에겐, 실체도 없는 명목에 맹목적으로 붙들려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리학에 정통했던 정약전이 이르고자 한 것은 성리학도, 서학도 아니며, 평등사회였다. 성리학을 탐구하여, 세상을 구하려 하기 보다는 입신출세하려는 제자 창대에게 정약전은, 이 나라의 주인이 성리학인지 백성인지를 묻는데, 이 질문은 그의 영혼의 눈이 향해 있는 세계가 어떤 가치가 현현되어 있는 세계인지를 알려준다.
흑산도로 유배된 정약전은 흑산도 연해의 수족(水族)을 관찰하여 분류하고 기록한 실학서인 <자산어보>(1814 발표) 집필에 정진한다. 나라에 꼭 필요한 성리학자였던 정약전은 신학을 한 죄에 대한 벌로 흑산도로 유배되었는데, 이제 유배된 곳에서 성리학자도 신학자도 아닌, 박물학자로서의 삶을 시작한 것이다. “학처럼” 살았던 정약전이 “검은색 무명천처럼” 살기 시작한 것이며, 제일철학인 신학과 순수과학인 박물학 모두에 정진하게 되었으니, 진짜 서학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학처럼 사는 것도 좋으나, 구정물, 흙탕물 다 묻어도 마다않는 자산 같은 검은색 무명천처럼 사는 것도 뜻이 있지 않겠느냐?”라고 했던 박물학자 정약전의 뜻있는 삶은,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박물학자 찰스 다윈을 떠올리게 한다.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1882)은 1831년에 비글호에 탑승하여 갈라파고스 제도의 생태계를 조사한 후 그것을 단서로 탐구에 정진한 결과 1859년에 <자연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에 관하여 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를 발표했는데, 다윈은 당시 서구 세계 질서를 공고하게 지탱해주던 창조설에 반하는 진화설을 주창한 탓에 세인들 사이에서 우스운 짓을 하고 허황된 말을 하는 사람으로 취급당했었다. 정약전 역시 물밑 생물이나 관찰하고 기록하며 다니다 보니 주자에 빠져 있는 어부 창대에게도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정약전은, 세인들의 시선이나 흰 두루마기가 검은 무명천처럼 물들여지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흑산도의 색을 이루는 다양한 생명체의 생김과 활동을 관찰하고, 어종을 분류하였으며, 할 수 있는 한, 근연종으로 생각되는 것들까지 세세하고 체계적으로 기록하였다. 그는 생명이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진화되어 현재의 종에 이르렀으며 따라서 모든 생물은 계통학적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다윈처럼 생각하진 않았겠지만, 오히려 천주가 각각을 독립적으로 창조하였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흑산도 생물들을 분류하였을지 모를 일이지만, 흑산도를 헤집고 다니면서 보이는 족족 관찰하고 분류하고 기록하는 정약전의 모습을 보면, 같은 시기에 다른 곳에서 역시 동물과 식물을 보이는 족족 관찰하고 분류하고 기록했던 박물학자 다윈이 떠오른다.
“책명을 ‘자산어보’라고 명명한 데 대하여 정약전은 자서의 서두에서 말하기를, ‘자(玆)’는 흑이라는 뜻도 지니고 있으므로 자산은 곧 흑산과 같은 말이나, 흑산이라는 이름은 음침하고 어두워 두려운 데다가 가족에게 편지를 보낼 때마다 흑산 대신에 자산이라고 일컬었기 때문에 자산이라는 말을 제명에 사용하게 되었다고 해명하고 있다. 이어서 그는 이 책을 쓰게 된 경위를 대략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흑산도 해중에는 어족이 극히 많으나 이름이 알려져 있는 것은 적어 박물자(博物者)가 마땅히 살펴야 할 바이다. 내가 섬사람들을 널리 심방하였다. 어보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사람들이 제각기 다른 말을 하기 때문에 이를 좇을 수가 없었다. 섬 안에 장덕순(張德順, 일명 昌大)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두문사객(杜門謝客)하고 고서를 탐독하나 집안이 가난하여 서적이 많지 않은 탓으로 식견이 넓지 못하였다. 그러나 성품이 차분하고 정밀하여 초목과 조어(鳥魚)를 이목에 접하는 대로 모두 세찰(細察)하고 침사(沈思)하여 그 성리(性理)를 터득하고 있었으므로 그의 말은 믿을 만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드디어 그를 맞아들여 연구하고 서차(序次)를 강구하여 책을 완성하였는데, 이름지어 『자산어보』라고 하였다. 곁들여 해금(海禽)과 해채(海菜)도 다루어 후인의 고험(考驗)에 도움이 되게 하였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정약전은 <자산어보>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창대라는 사람의 도움으로 <자산어보>를 집필할 수 있었다. 바다 생물에 호기심이 생긴 정약전은, 성리학을 깊이 이해하는 일에 목말라 있던 창대와 지식을 교환하기로 했다. 자발적 합의에 의해 교환하기로 한 것이니, 정약전은 자신이 가진 것과 창대가 가진 것의 값을 평등하게 쳐주었으며, 자신의 지위와 창대의 지위를 평등하게 위치시킨 셈이다.
하지만, 정작 창대의 눈에 정약전은, 그 좋은 배경과 능력을 소용없이 낭비하는 사람처럼 보이기만 했다. 창대에게 바다 생물은, 먹거나 파는 것이지, 학문이라는 영역 안에서 이야기될 종류의 것들이 아니었다. 반면, 정약전은, 자신의 주변 세계를 지식으로 만들고 학문으로 정초 시킬 줄 아는 사람이었기에, 그에게, 흑산도의 모든 어종은 새로운 학문을 위한 단초가 되었다. 명석한 창대가 이러한 작업을 하면 좋으련만, 창대에게 바다는 현실이 아니었다. 그에게 영원한 현실이자 나아가야 할 빛은 주자가 가르치는 세계이며, 자신이 보고 만지는 세계는 언젠가 빠져나가야 할 세계이자 그림자였다. 따라서 창대에겐, 어부로 살면서 알게 된 정보를 지식으로 체계화하고 학(學)으로 정립시켜 후대에게 영영세세 전승할 수 있는 가능성에 골몰할 이유가 없었다.
정약전은, 하늘 위에 실재하는 존재 자체를 믿고 탐구하였고, 땅 위에 존재하는 것들의 위계적 질서를 지탱하는 원리를 탐구하였으며, 물밑에 존재하는 것들을 분류하여 체계적 질서를 마련하였다. 성리학을 통해 땅 위의 이치를 깨달은 그는, 하늘 위의 존재와 물밑에 사는 생명체들로, 마음의 눈과 몸의 눈이 향하게 했다.
그런데, 정약전의 눈이 향했던 곳 너머에 있는, 결국 그가 이르고자 한 곳은, 모두가 어울려 평등하게 사는 대동세상(大同世上)이었다. 그는, 성리학으로 서학을 받아들이고 보니, 보이는 세계에서는 각자가 신분으로 귀천이 구분되어 있으나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는 모두가 형제자매인 평등한 세상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서학으로 흑산도 사람들의 삶과 자신의 삶을 조망하고 보니, 성리학이 그 어둡고 척박한 삶을 어떻게 더 어둡고 척박하게 만들어 버리는지를 목도할 수 있었고, 어둡고 척박한 그곳 사람들이 평등한 세상에서 어울려 살게 하려면 자기 같은 지식인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다 생물의 종류를 구별하여 체계화하는 일이었을 것이며, 이러한 작업은 반드시 흑산도 사람들뿐만 아니라 후세대 전체에게 쓸모가 있다고 그는 생각했을 것이다.
더하여, 마음의 눈을 들어 하늘 위를 바라보았던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눈을 내려 물밑의 생물을 관찰하고 기록하면서 성리학과 서학에서 깨달아 알게 된 것들이 물밑 세계에도 유비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이는 그가 창대에게 했던 말, 즉 “벗을 깊이 알면 내가 더 깊어진다.”, “좋은 건 다 받아들여라.”라는 말을 지식인으로서 정언명령처럼 새기고 다녔기 때문일 것이다.
즉, 하늘 위, 땅 위, 물밑을, 모두 탐구하고 탐색한 그는, 진리에 이르는 참된 도상위에 있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대로, 그는 믿기 위해 이해했고, 이해하기 위해 믿었다. 그는 하늘 위를 믿기 위해 서학과 성리학과 박물학을 이해해야 했고, 서학과 성리학과 박물학을 이해하기 위해 하늘 위를 믿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