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한 번을 읽고 또 한 번을 더 읽고 나서야 말하고 싶었던 의미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던 책이에요.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경제적으로 큰 부담 없이 살아가지만 반복되는 일들로 인해 삶의 의미를 고민하던 때 수녀원에서 아이가 당하는 불합리함을 알고 선택의 기로에 놓이며 마침내 본인이 받았던 사소한 모든 것들의 의미를 깨닫고 다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소설입니다.
개인주의가 강해지고, 스스로에 대한 우상화가 예전보다 심해진 요즘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닐까 합니다.
"쉬엄쉬엄해야지. 그러다가 당신 자신한테 따라 잡히겠어."(38p)
=> 이러한 부분 또한 클레어 키건이 '나'라는 개인을 강조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보다 앞서 나를 따라잡는 나와 같은 말로요.
"요즘 펄롱은 뭐가 중요한 걸까, 아일린과 딸들 말고 또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했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는데 어딘가로 가고 있는 것 같지도 뭔가 발전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때로 이 나날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44p)
=> 많은 것들은 변하고 있는데 느끼지 못하는 것들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참고로, 글의 처음은 "10월에 나무가 누레졌다."로 시작하는데 그 또한 변함을 알리는 것 같았습니다.
펄롱은 차를 세우고 노인에게 인사를 했다.
"이 길로 가면 어디가 나오는지 알려주실 수 있어요?"
"이 길? 노인은 낫으로 땅을 짚고 손잡이에 기댄 채 펄롱을 빤히 보았다. "이길로 어디든 자네가 원하는 데로 갈 수 있다네." (54p)
=> 느끼는 것에 따라서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하루하루가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너무 빨리 변하는 하루에 감당을 못할 수도 있고요. 다만,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달렸다는 건 변함없는 것 같습니다.
가는 길에 오래전부터 알고 거래해 온 사람들을 마주쳤다. 대부분 반갑게 걸음을 멈추고 말을 걸었으나, 여자아이의 새카만 맨발을 보고 그 아이가 펄롱의 딸이 아니란 걸 알아차리자 태도가 바뀌었다. 몇몇은 멀찍이 돌아가거나 어색하게 혹은 예의 바르게 크리스마스 인사를 하고는 가버렸다. (117p)
=> 저에겐 꽤 많이 인상 깊은 부분이었습니다. 처음 읽으나 두 번째 읽으나 변함없는 감정을 전해주었던 건 이 구절이었던 거 같아요. 그 사람이 어떤 조건을 가졌건 새카만 맨발을 본다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걱정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120p)
=> 글을 읽으면서도 부끄러워 주변조차 없었던 구절입니다. 최근에 국가사업과 연계해 회사 앱을 분석하고 조사한 학생들의 발표를 들었는데 바쁘단 핑계로 귀 기울여 듣지 않았던 일이 생각나 한참을 반성했네요. 작은 행동에도 친절을 담아 다가가야 할 것 같습니다. 결을 다르지만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라는 책을 읽으면서도 같은 느낌을 받았던 거 같아요. 소설에선 성공이 아니라 삶 전반에 대해서 말하기 때문에 의미하는 영역 자체는 좁지만 의미하는 결은 같은 거 같아요. 삶에서 모든 부분은 너 혼자가 아니라 함께 구성된 것들이라고요. 심지어 성공 마저도요.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 - 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일은 지나갔다. 지금부터 마주하게 될 고통은 어떤 것이든 지금 옆에 있는 이 아이가 이미 겪은 것, 어쩌면 앞으로도 겪어야 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121p)
=> 펄롱은 본인이 받은 작은 불씨를 키워 또 다른 작은 불씨를 심은 것 같습니다. 이 작은 불씨가 이 아이가 겪은 것, 어쩌면 앞으로도 겪어야 할 것을 버티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또 이러한 불씨들이 앞으로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소설의 시대 배경보다 지금은 훨씬 더 개인화된 세상을 살아가고 있고, 더 답을 쫓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나와 너로 이분화된 시대에 개인의 성공만이 답이라고 느껴지는 삶 속에서 키건의 이 소설은 공동체의 가치를 함께 사는 것의 의미를 알려주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스쳐지나가는 말 혹은 행동 어쩌면 그것도 아닌 것일 수도 있지만 평생 누군가에게는 아주 중요한 의미로 자리잡고 있다는걸 얘기하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