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 새내기, 새싹, 새순.
대개 '봄'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아닐까 한다. 시작을 품은 단어들, 사계절의 문이 열리는 계절. 그래서 봄은 항상 풋풋하고, 설레는 감정을 뜻하고 있지만, 내게는 외로움의 시작을 알리는 계절이었다.
나는 산과 들로 둘러싸인 시골의 작은 동네에서 나고 자랐다. 스무 살이 되어 대학에 가기 전까지는, 버스라고는 하루 한 번 내지는 두 번 들어오는 것이 전부였던, 말 그대로 깡촌이었던 곳이다.
시골의 삶은 한가함과는 거리가 멀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해가 질 때까지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하는 날들의 연속이다. 게다가 일곱이나 되는 대식구를 건사해야 했으니 나의 엄마와 아빠는 몸과 마음을 갈아 밭으로, 논으로 퇴비 삼아 뿌려야 했을 것이다. 그렇게 계절이 바뀔 때마다 부모님의 모습도 함께 닳아갔다.
하지만 그런 사정이야 어린 내게는 나를 돌보지 않아도 된다는 일종의 면죄부가 되지는 않았다. 마흔이 훌쩍 넘은 지금은 피곤함에 스러져가는 부모의 등을 내내 쫓아다니며 볼멘소리를 해대는 어린 내가 얼마나 성가셨을까 어느 정도 짐작이 된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런 사정을 알리 없었다. 아니, 알았다 한들 나 좀 봐달라며 떼를 썼을 것이 분명하다.
농사란 때가 있는 법이다. 때맞춰 내리는 비를 놓치지 않아야 하고, 쉴 새 없이 나타나는 새와 고라니를 막아야 하며, 따뜻해진 기온과 습도를 읽어야 한다. 그러니 나의 아우성은 응답이 없는 채로 허공에서 마르고 흩어지기 일쑤였다.
아빠는 무심했고, 엄마는 항상 날이 서 있었다. 책임감과 피로감으로 짜인 옷은 쉽사리 벗어내기가 힘들었던 모양이다. 나는 그 옷자락에 스치며 자랐다. 그들의 감정을 고스란히 흡수하면서.
쩍쩍 갈라진 손등 위에 녹인 파라핀을 덧씌우듯, 나는 내 마음 위에도 감정을 덧발랐다. 한 겹, 두 겹, 수십 겹. 그 속에서 외로움도 함께 굳어 갔다.
내가 열 살 남짓하던 어느 봄이었다. 하굣길에 비가 쏟아졌다. '잠시면 그치겠지.' 하는 나의 바람은 아랑곳 않는 듯이 바람까지 세차게 불며, 창밖만을 바라보는 내 마음을 따갑게 적셨다. 아이들은 마중 나온 부모 손에 이끌려 한 우산을 나눠 쓰고 집으로 향하거나, 미리 준비한 우산을 펼치며 교실을 나섰다.
나를 데리러 올 사람은 없었다. 혹시나 싶어 공중전화까지 비를 맞으며 달려가 집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밭에 물길을 내야 했고, 작물들이 쓰러지지 않게 비설거지를 해야 했을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내 서러움은 못내 밖으로 꺼내지지 못한 채로 비에 섞여 신발만을 적실뿐이었다.
가방을 머리 위로 올려 쓰고 혼자 걸었다. 그러다 산기슭에 버려진 찢어진 우산을 겨우 주워 간신히 머리만 가릴 정도로 펼쳐 들고 집으로 걸었다. 어린아이 발걸음으로 대략 30분가량의 거리는 그날따라 더욱 멀게 느껴졌다. 먹구름이 내려앉아 어둑어둑해진 하늘이 꼭 도화지에 내 마음을 꺼내 칠해놓은 것처럼 보였다.
집에 도착했을 때 역시 아무도 없었다. 잦아진 빗소리만이 토독토독- 지붕을 두드릴 뿐이었다. 몸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바닥에 점점 번졌다. 한껏 젖어버린 운동화를 들고 화장실로 가 대야에 넣어놓고, 걸레를 들어 바닥의 물기를 닦았다. 한숨인지, 설움인지 모를 탄식이 입에서 새어 나왔다.
그날 처음으로 깨달았던 것 같다. 봄은 누구에게나 같은 마음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