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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 off Oct 06. 2018

위저드 베이커리를 읽고,

제빵사의 진짜 마법이란 ?

오랜만에 위저드 베이커리를 읽었다. 지금까지 한 7번 덜 되게 읽은 것 같다. 처음엔 10살 즈음, 사촌언니들의 흔치 않은 추천으로 읽기를 시작했었다. 새엄마로부터 잦은 폭력을 받던 언니들에게 아마 이 책은 더 특별히 다가왔던 것 같다. 나도 그랬으니까.

읽는 내내 현실과 오차가 전혀 없어서 몇 번이나 울었다. 또한 1인칭 시점이기에 더욱 그 불안감과 억울함 그리고 원망, 두려움, 절망, 후회가 마음 속까지 와닿아버려서, 끝없이 마음이 허물어졌다.


이 책에서 주인공은 말한다.


'그런 소소한 일들을 시작으로 집에서 내가 머물 공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나는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고개를 되도록 깊게 숙였고, 그 숙인 시선 끝에서 그녀의 슬리퍼가 말없이 사라지면 고개를 들었다'

'나는 단지 이 자리에 있었을 뿐인데'


불가촉천민도 아닌데, 머물어야할 공간과 머물지 말아야할 공간, 마주치면 안 되는 눈, 고개를 숙이고 있어야 하는 시간이 세세히, 낱낱히 이 소년에게 정해져있었다.

한 번 버려진 적이 있다는 과거가 이 소년을 더욱 절망에서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버려지기만 했는가? 어머니가 샹들리에에 목을 매달고 자살을 했다. 소년은 어릴 적이기에 그 사실을 옅게 기억한다고 생각했으나 결국 그 기억들은 소년의 이곳 저곳에 푸른 곰팡이처럼 피어있었다. 마치 동충하초처럼 소년의 몸을 뚫고 이곳 저곳에 포자덩어리가 생식해있었다. 소년의 힘과 정신을 있는 힘껏 흡수해버리면서.  그들은 더 더 자라나기를 안달하고 있었다.

이후, 끝내 소년은 '새어머니의 딸을 성추행했다' 라는 오명을 쓰고 한밤중에 집에서 도망쳐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잠적하게 된다. 


오븐 속에서 시작된 이상하고도 오묘한 그리고 조금은 아픈 소년과 제빵사, 파랑새와의 공존기. 평범해보였던 제빵사의 '나사가 풀려있는 모습'에 소년은 동질감을 느끼고 마음을 열어간다. 이에 제빵사는 바삐 노력하지 않으면서도 진득하게 소년을 치유해나가며 스스로 더 큰 안정감을 갖기 시작한다. 까칠하고도 투박한 '마법사' 제빵사의 속내가 이토록 달큰할 줄은 아무도 몰랐겠지. 그는 쇼트닝이 다 녹을 때까지, 초콜릿이 다 졸아 사라질 때까지도 개의치않고 소년을 다독인다. 어쩌면 이 마법사의 진짜 마법은, 신비로운 힘이 깃든 빵을 만드는 것이 아닌, 얼어버린 소년의 마음을 한 순간 녹여내었다는 것이 아닐까. 



115P 종류를 불문하고 감정의 폭발적인 상승은 언제나 경계할 대상이다. 비이성적인 행위를 촉발하는 에너지의 출처는 대체로 욕망과 맥락이 닿아있으니까. 고대부터의 모든 종교가 보여줬듯이 극단적이고 끓는 점이 낮은 사랑은 공격과 폭력을 부른다. 사람의 감정이 한 덩어리의 밀가루 반죽과 같다면. 나는 아직 누군가를 좋아해본 적이 없지만 그럴 만한 사람이 설마라도 나타나면, 한 덩어리의 감정을 최대한 가늘고 길게 뽑을 거다. 솜씨 좋은 장인이 뽑아낸 면발만큼이나 가늘고 길게. 굵고 짧게 토막 나는 감정이라면 분노만으로도 충분해



위 내용은 내가 읽자마자 감탄했던 내용이다. 전부터 되새기는 말이지만 쉽게 달아오른 관계는 쉬이 식기 마련이며 몹시 위험하다. 일상에 적용시켜보자면 고기도 센 불에 구워버리면 맛이 없고 마시멜로도 센 불에 구우면 겉만 타버린다는 것이다. 이처럼 무엇이든 가늘고 길게 그리고 약하고 잔잔하게 시작하고 끝내는 것이 늘 안전하고, 타격이 적다. 굵고 짧게 토막 나는 감정은 위에서 말했듯이 분노로도 충분하더랬다. 


이 책에선 마지막 장을 덮을 때 까지도 소년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제빵사와 파랑새의 이름 또한 나오지 않는다. 유일하게 이름이 나오는 것은 배 선생 (이것도 성 뿐이다) 그리고 그녀의 딸, 무희. (성은 알 수 없다) 이게 전부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사실이 굉장히 독특하다. 이름이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거부하고, 등장인물을 이름이라는 틀에 구속받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을까. 혹은 이름의 존재로써 두드러지는 '인간'의 존재성에서 벗어나 인간에 한정 지어지지 않는 자유롭고 제한없는 존재를 만들어내기 위함이었을까. 아니면 이름을 붙이지 않음으로써 더욱 신비롭고 몽환적인 분위기와 여운을 빚어내기 위함이었을까. 목적이 무엇이든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는 점이 아주, 아주 마음에 들었다.

구병모 작가는 늘 나를 놀라게 한다. 


세밀한 감정선과 몽환적이고도 오묘한 세계관, 특정 가정을 현실적으로 담아낸 모습, 그들의 대화,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는 특징 그리고 결말이 두 개라는 사실.

이 특징들만으로도 이 책을 죽을 때까지 되새김질 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지금까지 읽었던 책 중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작품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난 언제든 망설임 없이 위저드베이커리가 속해있다 단언할 것이다. 언제 읽어도 마음이 싱숭거리는, 적당히 달큰하고 마음이 시려운 소설. 내 유년은 이 책으로 인해 한 층 더 깊어졌고, 무르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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