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속 외사랑, 나의 아이들과 나의 대변인
단 한 과목이라도 낙제하면 1년을 유급해야 하는 단과대학의 특수성 덕분에 나는 4년 동안 고3과 같은 생활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더구나, 최종 전공과목을 선택할 때까지 학교 성적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기 때문에 전공 공부 외에는 시간을 투자할 여력이 없었다. 물론 방구석에서 만화를 그리는 것을 멈추지는 않았지만, 전공 공부에 몰두함에 따라 나의 창작물들이 남들에게 사랑받기는커녕 바깥바람을 쐴 수 있게 될 가능성조차 점점 쪼그라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만화들은 야금야금 그 세력을 늘려갔다. 그것들은 마치 나름의 생명을 가진 것처럼 성장하며, 창조주(!)인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제멋대로 멀찌감치 달려 나가서 '따라잡을 수 있으면 따라잡아봐'라고 거들먹거리고는 내게 뒷수습을 떠넘기기 일쑤였다. 몰입하여 만화를 그리고 있노라면 그에 사로잡혀, 주인공이 두근두근할 때면 나도 두근두근하고, 분노하는 장면을 그릴 때면 선이 과격해지며 연필에 힘이 들어가고, 행복한 표정을 묘사할 때면 나도 입이 헤벌어지는 것이다. 틀림없이 만화를 그리는 내 얼굴은 그려지는 얼굴과 비슷한 표정을 지으려 요상하게 일그러져 있을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연애 고자인 내가 그나마 연애를 할 때면 만화 그리는 것이 유난히 손에 안 잡혔다는 것이다. 물론 누구나 연애를 하면 만나는 사람 외에는 많은 것들이 눈에 안 들어오기 마련이지만, 내 생각에 나는 만화 속의 주인공들이 주고받는 감정을 통해 유사연애를 하고 있던 게 아닌가 싶다. 말 그대로 '비현실' 사랑의 결과물인 나의 아이들, 나의 만화들은 노트, 연습장, 스케치북 등을 하나 둘 점령해가며 나의 정신세계를 으슥한 곳으로 이끌었다.
이러한 어둠의 자식들과 상반되게 밝은 바깥세상에서 귀여움 받으며 자라난 아이도 있었으니, 바로 나의 분신과도 같은 해파리 캐릭터였다 (타이틀 이미지에 등장한 동글동글한 괴생명체가 그것이다). 고등학교 때에 친구가 내게 붙여준 해파리라는 별명에 캐릭터가 부여되어, 수업시간 노트의 구석이나, 친구를 만나러 들린 카페의 종이 냅킨 등 어디든 여백과 필기구만 있으면 등장하여 '배고파', '졸려', '귀찮아' 등을 남발하였다. 때때로 이 녀석은 작정하고 나를 힐난하거나 비꼴 때도 있는데, 우울한 감정을 해파리의 입을 빌려 토로하며 스스로를 희화하면 어둡고 묵직한 기분이 약간은 가벼워지기도 했다.
구석진 곳에서 나 홀로 만화를 그려오던 나에게, 남들에게 '만화를 그린다'라고 내세울 수 있는 것은 나의 대변인격인 이 녀석 밖에는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점점 나이가 들어가고, 대학생을 거쳐 직장인이 되고, 아직은 보잘것없긴 해도 '사회적 지위'라는 것이 생겨나면서 진지하게 만화를 그리고 있다는 사실은 남들 앞에 내세우기 부끄러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캐릭터를 앞세워 내 근황이나 감정상태에 대한 (저 딴에는) 촌철살인의 대사를 툭툭 벹어내는 것은 그나마 쿨 해 보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정말로, 만화가로서의 나의 미래는 너무나 희미해져 버렸다. 고등학교 때에 나는 친구들에게 '일단 열심히 돈을 벌고, 40살이 되면 일본에 가서 만화 공부를 할 거야'라고 호언한 적이 있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어느 정도 비슷한 생각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너무 순진했던 당시의 나는, 20대 중반부터 돈을 벌기 시작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안정된 직장 생활을 하며 돈을 착실히 모을 것이라 생각했었고, 현실의 나는 조금이라도 더 안정적으로 엉덩이를 붙이기 위해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열렬하게 몸을 비비적거려야 했다. 더군다나, 그렇게 얻은 (보다) 안정적인 엉덩이는 미래가 불확실한 꿈을 위해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