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도전, 오로지 완주를 목표로 나아가는 마라톤.
만화에 대한 애정의 정도에 비하여 만화가라는 직업의 위상에 대한 나의 관점이 얼마나 보잘것없었는가 하면, 대학 전공을 선택할 때에도 '전문직이 되고 난 후에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기는 쉬워도 다른 일을 하다가 전문직이 되기는 어렵다'라는 핑계로 만화와 연관된 전공으로의 진학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더랬다. 만화가는 전문직의 범주에 들지도 않을뿐더러, 마치 내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만화가가 되고 인기를 얻게 될 수 있을 것처럼 말이다. 정작 소위 '전문직'이 되어 업무에 치이고 시간에 쫓기고 피로에 짓눌리게 되었을 때엔, 직장을 그만두고 만화가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가 되어있었다.
시간이 흘러 나 스스로를 돌아볼 여유가 생기게 되었을 때 여전히 나에게 만화를 그리는 것은 중요한, 그리고 제법 커다란 나의 일부분이었다. 나의 아이들이 빛을 볼 수 있게 된다면, 나의 아이들이 나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사랑받을 수 있게 된다면 나는 무척 기쁠 텐데, 하는 생각이 슬슬 다시 고개를 들었다. 내 꿈을, 내 마음의 소리를 외면하지 말아야겠다 마음먹고 난 후, 나는 만화를 그리는 소프트웨어를 이것저것 사용해보고 (하지만 기계치 난독증 끈기 부족으로 능숙하게 사용하기는 실패), 관련 분야 카페에 가입해서 공모전이니 구인 구직 관련 글들을 기웃거리고 (하지만 사회성 부족 용기 부족으로 가입과 동시에 유령회원이 됨), 만화학과로 유명한 모 대학교로의 학사편입이나 사이버대학교 수강도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역시 실행력 부족으로 좌절). 더구나 페이스북에 올린 나의 만화일기에 주위 사람들이 소소한 응원을 보내주자 나는 조금 (솔직히는 상당히) 우쭐해져 있었다. 내가 내 만화들을 바깥세상에 내놓기만 하면 모두들 감탄을 금치 못할 거야..... 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취향이 비슷한 몇몇에게는 인정받고 또 나름 사랑받는 만화가가 될 수 있을 거야, 하고. 그 수가 많지 않더라도 진가를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진 사람에게 라면, 나의 만화와 그 세계관의 대단함에 공감받을 수 있겠지, 하고.
그러던 중 직장인 7년 차에 접어든 2013년, 나는 '웹툰'의 세계에 눈뜨게 되었다 (다행히도 그때엔 모두 무료였다). 그전까지는 '이끼' 나 '은밀하게 위대하게'와 같은 명작 웹툰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들어도 그게 뭔가 나는 잘 모르겠네 하고 지나칠 정도였다. 그러던 내가-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밤 새는 줄 모른다고, 어느 순간 웹툰에 빠져들어 헤어 나올 줄을 모르고 '신의 탑'이나 '치즈 인 더 트랩' 같은 대작들을 정주행 하느라 며칠에 거쳐 날밤을 샌 적도 있었다. 하일권 작가님의 웹툰들, 특히 '안나라수마나라'는 내가 지녔던 꿈을 외면할 수 없겠구나 하고 깨닫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주었다. 점점 더 다양한 장르의 웹툰을 접하면서 (내 눈에는) 거친 선으로 쓱쓱쓱 그려진 그림에도 탄탄한 스토리 구성이나 공감 가는 내용이 있으면 많은 사람들-최소한 취향이 비슷한 몇몇-에게 인기를 얻고 응원을 받는 것을 보고 용기를 얻게 되었다. 대체, 이런 작가들은 어떻게 이런 좋은 (연재) 기회를 얻게 된 거지? 나,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독자들과의 접근성이 뛰어나고, 웹을 통해 쉽게 이슈화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웹툰은 '날로 먹는 떡'처럼 비쳤다. 그래. 웹툰. 웹툰으로 도전해봐야겠다..... 그리고, 친구들과 기분 좋게 와인 한 잔 마시고 기분 좋게 취한 직장인 8년 차의 어느 가을날. 나는 사고를 치고 말았다.
하룻밤 사이 태블릿으로 끄적끄적한 것을 웹툰 연재랍시고 D포털의 웹툰 리그에 올리고 말았다!!! 두근두근두근. 드디어 나의 만화가 첫 세상 나들이를 하게 되었다.
결과는.... 말해 무엇하랴. '결과'라는 말을 하기도 참담하지만. 나의 자식과도 같은 만화가 조회 수나 추천 수로 평가될 수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웹툰을 업로드한 날이면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보며 조회 수가 얼마나 늘었는지 확인했다. 그러나, 회를 거듭할수록 조회수는 형편없었고 가까운 한둘을 제외하곤 주위 사람들에게 웹툰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을 얘기도 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터무니없이 우스운 얘기지만, 나는 작가명을 '해파리'로 하면 혹시나 내가 아는 사람들이 나인 줄 알아챌까 봐 '양장피'라는 작가명으로 웹툰을 업로드했다. 왜 작가명이 양장피야-하는 질문에 이런 자의식 과잉의 산물을 설명해야 할 때면 몸서리치게 부끄럽지만. 뭐, 술김이었다고 변명하기로 한다.) 1, 2주 정도 걸려서 겨우 한 편을 완성하고-그림에 공을 많이 들이거나 유독 일이 바쁠 무렵엔 한 편 그리는 데 한 달 넘게 걸리는 때도 있었다- 업로드하면 조회 수가 늘어나는 것이 10에도 못 미쳤다. 독자들이 웹툰을 보고 올라가는 조회 수보다, 댓글이 달렸는지 확인하고자 내가 내 웹툰에 들어간 횟수가 더 많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 무렵, 웹툰은 영화화/드라마화가 되면서 창작물로서의 위상이 올라가고, 캐릭터 상품 등으로 경제적 위상도 급상승하던 때였다. 웹툰에 도전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심지어 초등학생조차 장래 희망으로 꼽을 정도로 직업으로서 웹툰 작가의 위상도 올라가게 되었다. N사 포털은 더했겠지만-D사 포털의 웹툰 리그에 매일 엄청난 수의 도전 작품들이 올라왔고, (당시의 나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나의 만화를 포함한 다수의 웹툰들이 매우 미숙하거나 대중성이 부족했다. 내 눈에는 마뜩지 않은 아마추어 작가의 어설픈 웹툰들조차 나의 고차원적인(!) 만화보다 훨씬 인기가 있었다. 정성을 들이고 또 들여 간신히 업로드한 내 만화가 (최신 순으로 정렬했을 때에) 다른 웹툰들이 무더기로 업로드되며 웹툰 리그 첫 화면에서 순식간에 밀려날 때면 속이 쓰렸다. 게다가 다른 도전 작품들의 조회 수는 왜 그리 높은 건지. 사돈에 팔촌까지 다 광고하고 다닌 걸까. 나는 진짜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얘기했는걸. 공정하지 않은 것 아냐? -하고 터무니없는 불만과 필사적인 정신승리가 기어올라올 정도로 나는 이 참담한 결과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실망스럽고 또 실망스러웠지만 중간에서 그만 두면 나의 '꿈을 향한 일보'라는 것은 죽도 밥도 안 되고... 무엇보다 (술김이지만) 그나마 용기 내어 바깥세상으로 등 떠민 나의 아이, 나의 만화를 이대로 요절시킬 수는 없었다. 설령 '그다음'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일단 한 편을 완결 짓는 것을 목표로 해서 나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마치, 시작할 때엔 금메달의 부푼 꿈을 안았다가 이내 현실을 직시하고는 성적과 상관없이 완주만을 목표로 마라톤을 뛰듯이. 다리는 천근만근이고 발은 부르터 땅을 디딜 때마다 아프고 후회스럽다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