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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rayura Aug 02. 2018

어설프게 만화가를 꿈꾸는 직장인 7

당연하지만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난제: 시간과 노력 

빈번하게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한 초과근무를 하는 직장인이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하루에 몇 시간이나 될까. 운동이니 친구와의 약속이니 가족과의 오붓함이니 등등에 소모되는 시간은 제외하고, 혼자 생각에 몰두하며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시간. (당시 나의 시시콜콜한 일상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보통 6시에 업무를 일단락한 후에 운동을 다녀오고 가볍게 저녁을 해결, 잔업을 정리하고 집에 오면 10시. 어마마마께 문안 올리고 씻고 소소한 대화를 나눈 후 내 방에 틀어박히는 시간은 밤 11시. 무리 없는 일상 유지를 위한 최소 6 시간의 수면을 확보하려면, 침상에 들어야 하는 시간은 새벽 1시. 약속이 없는 평범한 야근일에야 하루 2 시간의 작업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당시의 나는 업무가 많지 않은 날에도 (어느 정도는, 열심히 일한 듯이 생색을 내기 위해) 일을 질질 끌며 퇴근을 늦추는 것이 일상화되어있었다.

셀프 야근의 습관이 고착화되었을 무렵의 페이스북 그림일기

만화에 대한 전문적인 공부는커녕, 그림 그리는 소프트웨어의 사용법조차 숙달하지 못했던 나는, '어차피 막나가는거 맨땅에 헤딩해보자' 하는 심산으로 주먹구구식의 그림을 그려나갔다. 와콤사의 태블릿을 사면 함께 제공되는 Autodesk의 그림 소프트웨어를 사용했는데, 사용 방법이 단순하고 직관적이어서 초심자가 처음으로 써보기에 괜찮았더랬다. 해파리 만화를 그리며 제법 오랜 기간 동안 태블릿을 끄적거려왔음에도 불구하고 브러시의 종류에 뭐뭐가 있는지도 몰랐고, 도면층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다. 소프트웨어 사용이 미숙하니 당연히 시간과 노력은 필요 이상으로 들어가면서도 결과물은 형편없었고, 이것저것 시도해보며 웹툰을 그려나가다 보니 매 회마다 그림이 들쑥날쑥했다. 안 되겠다 싶어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알게 된 만화 전용 소프트웨어를 사보기도 했는데, 이래저래 들떠서 유난을 떨고 몇 번 사용해보다가 끝내 익숙하게 사용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실은, 아직까지도 같은 Autodesk의 소프트웨어를 주구장창 쓰고 있다. 이번 생에 다른 것으로 갈아타기는 글렀지 싶다.)

이렇게 삽질하며 허접스레기 그림을 그려놓곤 '스케치 위에 바로 마카 칠하는데 번지지 않는게 어디야...' 하고 만족했었더랬다. 아오. 이 20세기 화상아.

그나마도 부족한 시간에, '방망이 깎던 노인'의 마음가짐으로. 게으르면서도 때로는 쓸데없이 성실한 무지렁이가 방구석에서 저 혼자 해낼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변변찮았다. 주중에 틈틈이 그림 배치, 밑그림 작업을 해두고 주말에 채색과 마무리 작업을 해서 일주일에 한 편을 완성하는 것은 아주 이상적인 경우였고, 일이 이렇게 굴러가는 것은 거의 드물었다. 손 많이 가는 장면이 들어갈 때면 한 장을 그리는 데에만 주말이 모두 날아가버리는 경우도 있었고, 배 째라 하고 몇 달씩이나 손을 놓아버린 적도 있었다. 내 머리 속에 들어있는 만화인데도 예전 내용이 가물가물한데, 독자들은 오죽했을까. 이렇게 드문드문 업로드되는 웹툰에 독자들이 붙어있을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수많은 웹툰 도전작들의 바다 속에서, 자주 업데이트를 해야만 간신히 수면 위로 올라와 독자들의 눈에 띌 기회를 얻게 된다. 수면 위에 코 끄트머리라도 내놓기 위해서는, 가라앉지 않도록 계속 팔다리를 바동거리며 움직여줘야 한다. 그런데 평균이 한 달에 한 번 꼴의 업데이트이니, 아주 잠수함 뺨치는 은둔 실력이었다. 

실은, 비단 업데이트 속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노트에 끄적거린 만화를 그대로 웹툰으로 그려, 컷 분할의 개념도 없이 가독성이 나쁘고 내용도 불친절하기 그지없었다.

한 편을 거의 완성해갈 무렵에는, 해외 도시로 학회를 가거나 심지어 휴가를 갈 때에도 노트북과 태블릿을 함께 챙겨갈 정도로 만화를 그리는 것에 사로잡혀있었다. 90%의 자기애와 9%의 자기 연민, 나머지 1%는 독자에 대한 의리로 연재를 이어나갔고, 동굴 속에 틀어 박혀 세상 물정 모르는 내 만화들에게 바깥바람을 쐬어주고자 한 처음의 취지는 시간이 흐를수록 퇴색했다. 방구석에서 그 누구의 관심도, 그 어떤 피드백도 없이 저 혼자 만화를 그려왔던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어쩌다 손이 삐끗해 마우스 클릭을 잘못해서 내 만화에 들어오게 되었더라도 이거보단 조회수가 많이 나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개점휴업상태인 내 만화. 이에 전전긍긍하면서도, 뭔가 개선하기엔 이미 늦었으니 어떻게든 완결이나 하고 보자-며 갈 길을 재촉했던 나. 말에게 눈가리개를 하고 엉덩이를 때리며 이랴 이랴 하듯이, 나의 첫 웹툰은 그렇게 누구에게나 열려있었지만 그 누구도 찾지 않은 채 완결을 향하 나아갔다.


그렇다. '첫 웹툰'이라 함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는 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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