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도전들의 연쇄 효과
삼십 대 중반의 직장인에게 웹툰 도전은 어딘가 부끄럽고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고,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키덜트'라 해도 좀 멋져 보이는 프라모델 조립 등의 취미가 아니라, 뭔가 현실감각 없고 유치한 느낌이랄까. 게다가 '취미'를 넘어 진지하게 만화가가 되기를 희망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니. 그에 반하여 그 결과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한 편의 만화를 완결 짓고 난 후에도, 결국 나는 동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마치, 민망한 춤-흡사 가이린 양의 '죽음의 무도'와 같은 것을 열심히 추고 있었는데, 춤에 도취되어 주위가 보이지 않을 지경이고 부끄러워 죽어버릴 것 같지만 그래도 누군가 보고있어줬음 좋겠다 하고 있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내 옆으로 강아지 한 마리도 지나가지 않더라 하는 얘기.
(저...정신차리고;;;; 주, 죽음의 무도에 마음을 빼앗겨선 안 돼!!) 시간과 노력과 애정을 많이 들인 작품이 바닥에 가라앉게 하고 싶지 않아서 다시 물장구를 치기를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되도록 짧고 가볍게 풀어갈 수 있을 이야기로 또 다른 웹툰을 연재하는 것을 생각했다. 작가의 이름이 화면에 걸리면, 그래도 작가 이름을 타고 들어가 이전 작품을 둘러보는 독자들도 생기겠지. 이 두 번째 만화의 목적은 그저 독자와 첫 번째 만화의 연결점이 되어주는 것이 우선이었다. 적어도 두 번째 웹툰을 시작하기 직전까지는. '흥미를 끌어주는 것으로 충분해'라고 생각했건만 이 만화 또한 제 나름의 생명을 얻고 나니 제멋대로 자라나, 나의 시간과 애정을 점령해나갔다.
두 번째의 웹툰 도전은 '더 나았다'라고 하기엔 애매하지만, 좀 더 나의 (부족한) 시간과 (역시 부족한) 능력을 감안하여 절충안을 찾으려 노력했고 어느 정도 성공했다. '성공'이라는 것이, 조회수가 많거나 이슈화가 되었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기만족의 척도 상의 얘기이다. 첫 연재 때는 마라톤 경기를 나 혼자 동떨어져 달리며 (심지어 눈가리개까지 하고) 내가 꼴찌인지 이 길이 맞는 길이긴 한지 알 수 없는 상태로 달렸다면, 그나마 두 번째에는 함께 달리는 사람도 시야에 들어오고 나를 시선에 담아두고 있는 관객도 드문드문 찾을 수 있다는 정도.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 과정을 대폭 줄여 일주일에 한 번 정도의 속도를 낼 수 있었고, 평일 새벽에 만화를 업로드하면 출근시간대에 조회수가 많이 올라갈 수 있다는 정도의 노하우도 생겼다. (혹시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맨바닥부터 꽃삽같은거 하나 덜렁 손에 들고 삽질해왔던 나의 웹툰 도전기에 대해 더 적어볼까 하는데, 그때엔 '직장인의 웹툰 도전 성공기' 같은 제목을 달 수 있게 되면 좋겠다 희망하고 있다.)
이전보다는 나아졌다 해도, 들어가는 품에 비하여 결과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진다는 것에는 별 차이가 없었다. 훨씬 더 가볍고,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면 나의 시간과 능력으로는 '웹툰 리그'라는 시스템에서 독자의 눈에 발견되기 위해 수면 밖으로 나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또 예전처럼 잠수함 자기만족호 운행을 재개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런 소모적이며 자괴감만 남는 작업을 바로 다시 시작하기엔 피로가 많이 쌓여있었다. 더구나, 갑자기 몰아친 개인적인 일들로 진지한 내용의 만화를 이어가기에 시간적 심적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또다시 '해파리'를 선봉으로 세워 웹툰을 시작했고 (슬슬 얘기가 지루해진다만;;) 이 역시, 시작할 즈음엔 나의 두 전작들을 수변 밖으로 디밀어줄 연결고리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모아두었던 페이스북의 만화일기를 적당히 편집해 올리며 적당히 날로 먹어보자 하는 심산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이 역시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갑자기 몰아친 개인적인 일들'이라는 나의 결혼과 임신과 출산과 육아가 만화의 소재로 변질(!)되면서, 해파리 웹툰은 기존 페이스북 만화일기와는 다른, 새로운 만화이자 나의 고유한 기록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취기를 빌어 저지른 돌발행동은 내가 (벌써 햇수로는 5년째) 웹툰을 그리게 하는 시발점이 되어주었다. 시작했으니 결과야 어떻든 끝이라도 내보자 하는 오기가 하나의 만화를 완성시키게 해주었고, 그것을 되살리고자 하는 시도가 또 다른 만화의 완성과 극소수이지만 소중한 독자를 얻게 해주었고, 그것들을 사장시키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내가 가정을 이루는 과정의 소중한 기록을 남기게 해주었다. 나는 여전히 주위의 친한 친구들 외에는 내가 만화를 그리고 있다는 얘기를 하지 않지만, 아직도 만화는 내게 취미 이상의 것이며 만화가는 나의 장래희망이다.
그리고 내 인생의 '큰 그림'에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여유 한 조각-출산 휴가를 얻게 되면서, 나는 또 다른 꿍꿍이를 가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