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보다 우선하는 것은 신뢰다
얼마 전 영화를 매우 좋아하는 친구에게
나도 이제 영화를 많이 볼 거야.
그래서 영화에 대해서 많이 아는 사람이 될 거라고 했다.
친구는 그래. 많이 챙겨봐. 이 영화 저 영화 가리지 말고 다 챙겨보라고 했다.
꼭 좋은 영화만 골라본다고 좋은 건 아니라고
좋지 않은 영화도 보면서 자신의 취향을 확실히 알 수 있을 거라고.
'기획의 습관' 저자에게는 미안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이 책은 근래 가장 평점이 낮은 책이 되겠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그저 나와 맞지 않는 책이었다.
그 이유는
우선 저자가 하는 일을 이미 나도 8년 정도는 해왔고
학생 때부터 광고 or 커뮤니케이션 기획 또는 브랜딩과 관련해서
많은 책을 읽어왔다. 그래서 나에게 새로울 게 없는 책이었다.
좋은 책의 기준 중에는 나에게 새로움을 선사해주는 것이 있겠는데,
이 책은 그런 부분이 거의 없었다. 이건 어쩔 수가 없다.
아쉬움이 좀 있지만, 이 또한 좋은 배움이 된다.^^
나와 맞지 않는 이유 두 번째는
저자의 태도가 그리 맘에 들지 않아서다.
실제 만나서 얘기를 해보면 다를 수 있지만
오로지 나의 느낌으로만 보자면
저자는 아직 대단한 경지에 오른 그런 사람은 아닌데
마치 자신이 그 이상의 업적을 이룬 듯하고 대단해 보이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인다.
읽어보지 않은 자기계발서를 비판하고
유명 교수의 트렌드 서적 역시 읽어보지도 않고 폄하하고..
글쓰기에 대한 책들에 대해서도 다들 비슷하다며 독창적이지 않다고 한다.
책 중간에 학부 시절 교수님께 책 좀 읽었다고 거들먹거린다는 고백이 있는데
여전히 그러한 태도를 갖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세 번째 나와 맞지 않다고 생각한 이유는
과도한 정의와 설정 그리고 과장이라고 느껴지는 것들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뱀은 인류 최초의 사과 마케터다.
대화는 몽상이고, 혁명이며, 여행이 되기도 하고, 순진한 상상이며, 유대감, 우정, 그리고 사랑이다.
만일 천국에 가는 기준이 문서의 양이었다면 난 천국에 가고도 남을 것이다.
심할 때는 화장실도 안 가고 15시간 동안 책상에 앉아 있던 적도 있다.
독일어, 도덕경 원문, 그리스어, 라틴어, 그리고 아랍어와 수메르어 등 고대어 위주로 공부했다.
물론 모두 다 사실 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어쩔 수 없다.
그 외에도 맘에 안 드는 부분들이 곳곳에 있었다.
어려운 문장으로 이뤄진 책이 아니지만 책 읽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굉장히 속독으로 읽었다.
책을 다 읽고 느낀 바를 정리하자면,
이야기 또는 설득은 신뢰에서 비롯되는데, 그 신뢰가 거의 없었기에
설득은 실패하고 말았다. 나는 책을 거의 받아들이지 않았다.
좋은 말들 맞는 말들도 많지만, 대부분 이해하고 있던 것들이라 더욱 그랬다.
이제 내가 기대하는 것은
독서 모임을 통해 다른 분들의 긍정적 후기와 각자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얘기들을 듣고
부족한 많은 부분을 채우고 싶다는 것이다.
책은 단지 소재요. 지적 대화를 풍성하게 해주는 것은 신뢰하는 멤버 그리고 그들의 경험이니 말이다.^^
P.S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부분이 약 5~10% 정도 있었는데 굳이 포함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