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산티아고. 일 년 중 가장 해가 길다는 날. 산티아고 시내는 축제 분위기가 한창이다.
오늘 우리는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향로 미사를 듣기로 했다.
향로 미사란 보타푸메이로(Botafumeiro)라고 불리는 대형 향로를 성당 천장에 매달아 향을 피운 후 사제들이 줄을 당겨 분향하는 의식이 행해지는 미사다. 이 향로 미사는 미사에 참석하는 순례자들의 순례 흔적인 악취를 없애고 정화하기 위해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현재 이 향로 미사는 내부 공사로 인해 분향하지 않고 있지만, 2015년 당시에는 격일로 향로 미사가 진행됐다.)
향로 미사를 들으려 온 순례자들과 관광객들로 대성당은 이미 북새통을 이뤘다. 미사가 시작되기 전 잠깐 놀다오자 했던 것이 늦어지는 바람에 앉을 자리를 찾지 못하고 헤매게 됐다.
겨우겨우 대성당 구석에 자리는 잡았는데, 동행인이 뽀루퉁해서는 향로 미사를 듣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이미 한참 전부터 사람이 찰 것이라고 말했는데, 내가 듣지 않고 나가는 바람에 일이 어그러져 화가 난 것이다.
나가자, 듣고 가자 이어지던 실랑이는 어느새 시작된 향로 미사로 인해 중단됐다. 길고 길었던 미사가 끝나고 사제들이 향로에 불을 붙여 향을 피웠다. 이내 사제들이 줄을 당기자 대형 향로가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경건하고 우아하며 숭고하기까지 한 모습에 뾰루퉁했던 동행인도, 그를 달래던 나도 넋을 잃고 빠져들었다.
진한 향이 대성당을 가득 메우자 마치 내게 묻어있는 세속의 때가 씻겨나가는 기분이다. 미처 다 벗어내지 못했던 아쉬움, 미움, 집착 등 많은 감정을 내려앉는다.
향로미사가 끝나고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사람들에 섞여 대성당을 나왔다.
채 가시지 않은 감동을 가슴 가득 품은 채로 대성당 광장에 주저앉아 눈을 감고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서로가 서로에게 하고 싶은 무한한 말들, 전하고 싶은 많은 감정들을 이렇게 담고 정리했다.
그때 한 무리의 순례자들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했던 한국인 순례자들이었다. 그들은 우리의 남은 여정에 대해 묻고는 각자의 일정을 공유했다.
그 중 절반은 산티아고가 마지막이었고, 또 몇 명은 피스떼라(Fisterra), 몇 명은 묵시아(Muxía)까지 간다고 했다.
그들과 작별의 안녕, 다시 만날 날에 대한 안녕을 나누고 헤어지는데 또 다시 누군가가 우리를 부른다. 걷는 내내 만나고 그때마다 반갑게 안부를 물었던 이태리 순례자들이다.
우리를 먼저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해주다니. 하마터면 못보다 싶었는데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이들 역시 우리의 남은 일정을 묻는다. 만남의 장소이자 이별의 장소인 산티아고의 특성상 당연한 질문이다.
피스떼라와 묵시아를 걸어서 다녀올 예정이라 말하니, 자신들은 비행기 일정이 맞지 않아 버스를 타고 다녀올 것이라고 알려준다. 우리의 인연이 여기까지라고 생각하니 못내 아쉬움이 남아 서로의 카메라로 추억 사진을 남겨본다.
밤이 깊어지도록 시내는 시끌벅쩍한 축제 분위기가 이어진다. 까미노에서의 만남을 기뻐하고 맞이할 이별을 아쉬워하는 이들의 추억이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산티아고 외곽의 공립 알베르게에 묵고 있는 우리는 들뜬 분위기에서 한 뼘 떨어져 휴식을 취하며 향로 미사의 여운을 만끽하며 내일부터 걸을 까미노 데 피스떼라(Camino de Fisterra)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