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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랑 Sep 02. 2020

산티아고 순례길 - 완벽한 만족이란 없다

6월 19일 - 아르까(Arca)

이제 내일이면 산티아고 데 꼼뽀스뗄라(Santiago de Compostela)에 닿는다. 마음 같아서는 최대한 늦게 들어가고 싶지만 늦장을 부려봐야 하루 이틀이고 더 늦장을 부리면 피스떼라(Fisterra)며 묵시아(Muxía)며 일정에 차질을 빚을 것임을 알기에 흔들리는 마음을 잡아본다.


1년 전, 나는 두근거리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산티아고에 갔었다. 그리고 아무런 마음의 준비 없이 들어간 미사에서 이유를 모르는 눈물을 흘렸었다. 그 날의 감동은 여전히 가슴 한 편에 자리하고 있다.


1년이 지난 오늘, 시기도 다르고 상황과 마음가짐도 다른 현재.  이번 역시 작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내 곁에 누군가가 아니, 앞으로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한 사람이 함께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복잡하고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함께할 것임을 안다.


그렇기에 더더욱 산티아고에 닿는 것을, 대성당 미사에 참석하는 것을 뒤로 미루고 싶은 것일 테다. 할 수 있다면 묵시아까지 다 끝마친 후에 들어갈까도 싶지만 그건 그때의 감정이 다를 것이기에 그건 그것대로 남겨두기로 한다.


나 하나만 생각하며 살아왔던 지난 나날들. 그것을 정리함과 동시에 반성하고 깨달으며 또한 앞으로의 삶을 고뇌했던 작년의 까미노.


이제 나는 그 모든 것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나 하나가 아닌 우리, 또는 아직 만나지 않은 또 다른 인연과의 미래가 함께할 앞으로의 시간. 그것을 생각하고 계획하고 고뇌하며 미리 겪어보는 올해의 까미노.

까미노를 걷다보면 다양한 노점을 만날 수 있다. 사진은 가죽공예로 만들어진 공책을 팔던 노점.

나는, 우리는 인생을 똑 닮은 까미노 위에서 지나간 인생을 추억하고 그리워하고 아쉬워했다. 또한 앞으로 맞이할 내일 그리고 미래를 생각하며 고뇌하고 걱정하며 행복해했다.


내일 까미노의 마지막을 함께하며 들어가게 될 산티아고. 그 한 달간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우리에겐 어떤 감정과 생각이 찾아올까.     


신혼여행 처음으로 김치가 들어간 요리를 만들었다.


리공데(Ligonde)의 한 슈퍼에서 컵라면과 볶음김치와 꽁치 통조림을 사놓고 아껴두고 있었는데, 산티아고 입성 하루 전 드디어 요리로 재탄생하여 밥상에 오른 것이다. 사실 요리라고 하기엔 조금 부끄럽지만 한 달 만에 먹는 김치찌개와 김치볶음밥이라니, 그 존재만으로도 감격스러울 지경이었다.


가볍지만 든든한 보까디요(Bocadillo), 또르띠야(Tortilla)도, 손이 많이 가지 않아 거의 매일 저녁 해먹었던 파스타도도 좋지만 역시 한국인에게는 한식이 제일이다. 부족한 재료와 미숙한 요리솜씨에도 왠지 모를 감동이 밀려온다.

부족한 재료지만 한 달 만에 만들어먹는 김치요리는 혈관에 흐르는 한국인의 피를 들끓게 만들었다.

동행인은 해장을 햄버거로 할 정도로 한식, 양식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이라, 까미노의 아침식사인 빵과 커피에도 곧잘 적응했었다. 까미노 초반, ‘라면 먹고 싶다.’고 말하는 내게 ‘1년 내내 빵만 먹고 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아.’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랬던 그는 모처럼 먹는 김치찌개에 절로 탄성을 내뱉었다. ‘통조림 하나 더 살걸 그랬나봐.’라는 그에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뭐든 약간 아쉽다 싶을 때가 제일 좋아.”

세상에 완벽한 만족이란 없는 법이다. 하나도 없을 때는 ‘딱 하나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하나를 가지고 나면 ‘하나 더 있으면 더 좋을 텐데.’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욕심이란 그런 것이다.


까미노도 그렇다. ‘하루 만 더’라는 욕심은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시작, 또 다른 도전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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