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못한 결과
평범하고 무난하게 살던 나는 때마침 나타난 남편과 늦지 않게 결혼을 했고 아들, 딸을 낳고 맞벌이를 하며
열심히 살던 워킹맘이었다.
내 인생을 바꾸어줄 일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그냥 오늘을 살며 내일도 그렇게 잘 살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큰 파도 없는 삶이었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적어도 내 인생의 파도는 그날로부터 시작된 것 같다.
혼자 사는 막내 남동생이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중국으로 직장을 옮겨야 해서 집을 정리한다기에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집 정리를 도와주러 갔었다.
그때가 여름이었는데 두 달 후 가을에 미국에서 살고 있는 사촌동생 결혼식에 참석하러 LA에 다녀온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즈음 오랫동안 일하고 있었던 직장에서 힘든 일이 많아 몸도 마음도 지치는 시기라 그랬는지 동생의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도 가고 싶다!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그동안 학교도, 직장도 결석이나 결근 한 번 하지 않았던 나는 방학이 아닌 학기 중에 자리를 비운다는 것은 절대 생각도 못했던 일이었다.
그런데, 미국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마음을 흔들었다.
그리고 무엇인가에 홀린 듯..
며칠 뒤에 미국행 비행기 표를 끊었고, 용기를 내어 직장에 휴가 허락을 구하고, 남편의 회사와 아이들 학교에도 통보를 하고, 미국에 계신 이모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이모 두 분이 미국으로 이민 가신지 40년 넘었는데, 나에게 이모들이 계신 미국은 멀고 먼 우주 같은 곳이었다. 그렇게 꿈에만 그리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미국을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미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부터 내 마음은 매일 비행기를 타 듯 들떠 있었다.
우리 아이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 직장을 따라다니며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를 다녔다.
친정도 멀고 시댁도 아이들을 봐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나는 일터에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며 일을 했었다. 두 아이들은 새벽부터 일어나 나를 따라 출근하듯 나와야 했고, 내 직장 근처의 기관들을 다니며 오후에 만나 집으로 퇴근하듯 왔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어른들도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던 아이들에게도 열흘간의 미국 여행은 정말 좋을 거라 생각했다. 우리 가족에게는 평생 추억으로 남을 여행을 하게 된 것이 모두 내 덕이라고 생각하며 좋은 엄마, 좋은 아내라고 스스로 뿌듯해했다.
여행 준비를 하며 중간에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던 딸아이가 긴장하는 모습을 느꼈지만 아무 걱정 하지 말라며 토닥였는데, 지나고 보니 정작 아이가 무엇에 그렇게 긴장하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아이들은 때마다, 시마다 자기들의 어려움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있는데, 정작 부모들은 너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될 때가 많다. 정확하게 말!로 표현되지 않은 아이들의 마음을 바로바로 읽어내기란 너무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씩만 더 살피고 깊게 관찰했으면 알았을지도 모르는 일을 그냥 지나쳐서 아이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경우가 생긴다. 딸아이의 성향을 잘 알고 있었거나 힘들다고 보내왔던 신호를 세심하게 받아줬더라면 그날의 시작이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비겁한 변명을 하자면, 나의 육아가 4살 위인 큰아들에게 먹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딸아이에게도 그대로 적용이 될 거라 생각했다. 큰 아이가 먼저 방향을 틀어줬다면 또 다른 시작이 생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2016년 8월 27일 토요일
우리 가족은 LA에 도착했고 기대하고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이모가 준비해 주신 숙소는 바다가 보이는 롤링힐스에 있었는데 그냥 숙소에만 있어도 너무 좋았다.
내가 미국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보던 장면 속으로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현실과 꿈이 뒤섞여있는 묘한 감정..
그냥 붕붕 떠다니는 기분이 매일 이어졌다.
이모가 데리고 다녀 주신 여행지는 크고 넓은 자연이었는데, 그곳에서는 정말 모든 것이 멈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끝이 보이지 않은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을 뛰어다니던 딸아이가 한껏 신나는 표정으로 나에게 와서 했던 말이 잊히지 않는다.
"엄마~ 나 지금 모험하고 있는 것 같아~"
그 말 한마디에 나는 온몸이 행복감으로 충만했다.
안 그래도 행복해 죽겠는데, 딸아이까지 신나 보이니 더 바랄 것이 없는 시간이었다.
당시 중1이었던 아들은 밝고 장난기 많던 초등 시절을 보내고 사춘기로 접어든 시기라 겉으로 보기에는
미국에서도 막 신나 보이지 않았다.
걱정이 되었던 이모가 여행 온 거 즐겁냐고 물어보셨는데, 아들은 웃음기도 없이 "네!"라는 단답형 대답만 했을 뿐이다. 모든 질문에 "네" "괜찮아요" 로만 대답이 가능했던 시기였다. 그래도 내 눈에는 신기하고 즐거워하는 아들의 눈동자를 중간중간 읽어내며 안심했다.
아들한테 보여주고 싶어 잠시 들린 UCLA 대학에서는 남편이 좋아 흥분하며 자기 혼자 다니느라 정작 아들한테 본인 사진만 찍게 할 만큼 남편도 즐거워했다.
디즈니랜드에서의 시간은 정말 꿈만 같아서 마지막 퍼레이드를 보면서 나는 감격해서 눈물이 나기도 했다.
디즈니 캐릭터들이 살아 움직이며 내 옆에서 돌아다니는 기분은 그냥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같은 장소에 있어도 사람마다 자기의 꿈과 감정과 생각으로 바라보고 느끼기에 장소마다 반응의 정도는 달랐지만, 미국 여행은 우리 모두가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음이 확실했다.
사촌동생의 결혼식은 미국 영화의 한 장면 같아서 지금 남겨진 사진만 봐도 황홀하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미국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한국으로 돌아와 각자의 자리로 돌아왔다.
열흘간의 꿈같은 시간은 시간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열흘 전의 일상과 똑같이 지낼 줄 알았다.
약간의 여독이야 예상했지만, 일상이 완전히 틀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단 일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내 일상의 파도는 잔잔 바리가 아니라 그냥 훅! 내리쳤다.
일상으로 돌아오고 며칠 뒤부터 딸아이가 학교에 가기 힘들어했다.....
그 시간이 내가 지금의 시간을 보내고 있게 한 시작점이다.
◆ 엄마의 생각하는 의자 ◆
: 내가 알고 싶은 아이의 마음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