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비하지 못한 일에 대한 불안
등교거부...
아직도 말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한다.
유치원 교사로 오랫동안 일했던 나는 새로 입학해서 적응 시기에 유아들이 유치원 등원을 거부하는 일은 너무 일상적으로 봐왔고, 교사로서 잘 해결해 왔었다. 하지만,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의 등원 거부와는 달리 학교를 안 가겠다고 하는 등교거부는 어마어마하게 큰일이며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때의 나는 그랬다. 내가 겪지 않았던 일들은 모두 어마 어마하게 큰 일이고, 말도 안 되는 일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말도 안 되는 일은 없다는 걸.. )
그런데,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딸아이가 학교에 들어가지 못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 여행을 마치고 일상을 돌아와 정신없이 밀린 일을 하던 나는 오전 중에 딸아이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모든 엄마들이 공감할 테지만, 오전 중에 선생님한테 전화가 온다는 것은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 같아서 놀라며 받곤 한다. 준비물을 안 가져갔을까 잠시 생각하다 전화를 받았는데, 선생님이 전한 소식은 너무 당황스러웠다.
"00이 엄마!! 00 이가 왜 이럴까요? 애가 1교시부터 울기 시작하더니 지금이 3교시인데, 아직까지 울음을 멈추지 않아요. 수업을 해야 하는데 큰 일이네~ 진짜 애가 왜 그럴까?"
선생님은 나이가 많으신 부장 선생님이셨는데, 말투가 나까지 혼내는 듯한 말투로 들려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그보다 아이가 1교시부터 내내 울고 있다는 소리에 놀라 바로 학교로 뛰어갔다.
아이들을 챙기며 일을 해야 했기에 내가 근무하는 유치원 바로 앞에 초등학교를 보내고 있었다.
허둥지둥 교실에 도착한 나는 책상에 엎드려 울고 있는 딸을 보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얼른 교실에서 아이를 데리고 나와야겠다는 생각에 선생님께 죄송하다고 하며 딸의 물건을 챙겨 교실을 나왔다. 나와 함께 학교를 나온 딸은 서러운 듯 울었고 나는 꽉 안아주었던 것 같다.
왜 울었는지 물어도 대답을 안 해주는 딸의 마음을 알 길이 없었다.
일단 유치원 내 사무실로 데리고 와서 안정될 때까지 기다렸다.
나는 원장으로 근무하고 있었기에 교사들처럼 교실에서 아이들과 수업하는 일은 없어서 다행히 공간과 시간을 낼 수 있었다. 아이가 안정이 되고 이유에 대해서 묻고 담임선생님과 통화도 한 후에 왜 계속 울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날 1교시부터 사회 시험을 봤는데, 딸은 공부도 못 했고 시험인지도 몰랐던 것이다.
열흘간의 여행 중에 공지되었던 학교 스케줄을 미리 확인하고 갔어야 하는데, 바쁜 나는 생각도 못 하고 아이를 학교에 보냈었다. 1교시부터 시험을 본다는 사실에 먼저 놀라고, 시험지를 보니 모르는 문제투성이었던 아이는 또 놀라 속상해서 울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냥 대충 보고 넘어가도 될 것인데, 딸은 그런 성격이 안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높은 불안을 가지고 있었던 딸은 학교생활을 하면서 늘 미리 준비하고 계획하며 자기의 불안에 대해 대비해 오고 있었다.
그런 아이가 갑자기 준비하지 못했던 시험을 맞닥뜨리고 모르는 문제를 풀어야 하는 시간이 너무 괴로웠던 것 같다. 선생님은 우는 딸에게 괜찮다고 달래 보셨던 것 같은데, 이미 불안이 높아진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어려웠을 것이다. 힘들어진 선생님은 아이들이 모두 보는 교탁 앞에서 전화를 하셨고, 아이들이 모두 듣는 상황에서 나와 이야기를 하셨다. 이미 시험을 통해 속상해서 울던 딸은 친구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선생님께 혼났다고 생각했고 무엇보다 친구들의 집중된 시선이 부담스러워 책상에 고개를 묻고 들지 못했겠지...
그 순간 아이의 마음은 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도망가고 싶었을 것 같다.
혼자 박차고 나갈 용기도 없으니 누가 와서 좀 구해주길 간절히 바라지 않았을까..
얼마나 속상하고 괴로웠을까...
하지만 이런 생각은 나중에 딸을 이해하니 들었던 생각이다.
그때는 딸로 인해 수업이 방해가 되고 선생님을 힘들게 했다는 사실이 더 신경 쓰여 선생님께 죄송하다는
말만 했다. 학교는 아니지만 나도 유치원 교사로 오랜 시간 일을 했기에, 늘 교사의 입장에서 생각을 더 많이 했었다. 우리 아이가 잘해서 선생님께 인정받고 아이를 잘 키웠다 인정받는 학부모가 되고 싶어서 어떻게든 교사의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했고, 아이의 생각과 반응 보다 선생님의 말씀과 학교의 방침을 더 앞세웠다.
아이들이 친구와 문제가 생겨도 그 친구의 입장에서 먼저 말하며 내 아이의 마음은 뒤로 미뤄두고 문제 해결만 가르쳤다. 이 또한 나중에 깨닫게 되었지만 나는 내 아이에게도 엄마이기 전에 교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또 비겁한 변명이지만, 그때의 나는 그게 최선인 줄 알았고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딸아이의 수고로 나는 많은 것들을 깨닫게 되고 돌아볼 수 있었다.
◆ 엄마의 생각하는 의자 ◆
: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부분은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