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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랑 Oct 16. 2024

6. 괴물 엄마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

다음날 씩씩하게 학교를 가리라 믿었던 딸아이는 어제와 똑같은 상황을 만들고 있었다.

이제는 봐주실 사모님도 안 계시고 교회 동생도 학교를 갔기에 정말 난감한 상황이었다.

유치원 정문 앞에서 아이는 책가방을 맨 상태로 한 발짝도 떼지 않고 문을 붙잡고 버티고 있었다.

이유도 말해주지 않은 채 그냥 학교에 가기 싫다고만 하는데, 정말 방법이 없었다.

시간이 되어 난 회의에 들어가야 하고, 

이제 곧 유치원 아이들은 등원을 할 것이며,

학부모들도 만나게 될 텐데..

나가지도 들어오지도 않고 유치원 문 앞을 지키고 있는 딸을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가 하얗게 되기 시작했다.


속상함이 화가 되고..

화가 분노가 되는 과정이 정말 순식간에 일어났다.

분노가 이성을 지배하기 시작하자 내 몸은 이미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었다.

일단 아이를 어디에 숨겨야겠다는 생각에 아이를 끌고 바로 옆 교회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공간으로 데려가 문을 잠그고 아이를 혼내기 시작했다.

밖에서는 보는 사람이 많으니 큰 소리로 혼낼 수도 없었기에, 참아왔던 화를 큰 소리를 내며 뱉어냈다.

가방을 메고 내 앞에서 떨기 시작하는 딸이 보였으나.. 이미 나는 내가 아니었다.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다가 그것도 성에 안 찼는지 딸을 때리기 시작했다.

나는 이성을 잃었고.. 그냥 있는 대로, 닥치는 대로 때렸던 것 같다.

무슨 말을 하며 때렸는지 기억도 안 난다.

아마도 내 머리가 사고 기능을 잃었거나 기억하고 싶지 않아 지워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렇게 폭력을 쓸 수 있는 사람인지 몰랐다.

나도 내 모습에 놀라고 있었지만 이미 정신을 놓은 나는 생각보단 몸이 먼저 움직이는 상태가 되어있었다.

난 괴물이 되어 있었다.


잠시 이성이 돌아왔을 때는 그래도 엄마라고 아이가 아플까 봐 딸이 매고 있는 가방 쪽을 때렸던 것 같다.

그러다가도 분이 풀리지 않으면 아이를  방안에 있는 작은 방에 다시 가두고 문을 잠그며 학교에 간다고 말할 때까지 나오지 말고 있으라고 협박도 했다.

한 번도 엄마가 화낸 것을 본 적도 없는 딸은 무섭게 변한 내 모습을 보고 벌벌 떨며 빌기 시작했다.

엄마 잘못했다고... 엄마 화내지 말라고..

하지만.. 나는 멈추지 못했다.

분노가 나를 지배하자 딸이 학교를 가지 않는 사실보다.. 오랫동안 쌓여왔던 내 삶에 화가 아이를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그 시기쯤..

내 삶의 화가 켜켜이 쌓이고 있는지도 모른 채 살아오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낄 때였다.

내가 열심히 한다고 세상의 모든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때쯤이었다. 

일에 대한 열정이 넘쳐서 나를 방해하는 모든 것들이 원망스러울 때였다.

요즘은 부부의 공동육아라는 말도 있지만, 그때는 아이들을 케어하는 모든 일을 내가 하며 한쪽으로 기울어진 육아의 문제가 억울할 때였다.

이상하고, 내 뜻대로 안 되며, 원망스럽고 억울한 내 일들을 모두 퍼붓고 있었다.

그 모든 책임을 딸에게 물으며 참지 못하는 화를 아이를 때리며 풀어내고 있었다.

그야 말고 미쳐서 날뛰고 있었다.




지금도 그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지 못한다.

온갖 끔찍한 시간을 흘렀던 것 같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니 누가 와서 나를 좀 말려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은 또렷하다.

어떻게 멈췄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를 때리는 것은 멈춰졌고 그 방을 나왔는데 그 기억은 없다.


사실 그 모든 기억을 할 수 만 있다면 도려내고 싶다.

그날의 모든 순간을 잊어버리고 싶다.

시간이 많이 지난 후 딸에게 그 시간을 기억하는지 물었는데, 딸은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정말 기억이 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긴 했는데, 만약 그렇다면 아마도 너무 충격을 받아 해리 현상이 일어난 것 아닐까 싶다.

나도 동생들이 말하는 어렸을 때 힘든 기억들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마다 아마도 내가 잊고 싶었나 보다 했는데, 딸도 그렇게 자기를 방어하며 지켰던 것 일 수도 싶어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을 잊어주렴..

그때의 엄마를 지워주렴..

그날은 없었던 날로 알아줄 수 있겠니...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그 공간에 있는 것 같아 온몸이 떨리고 눈물이 나서 너무 괴롭고 슬프다.

딸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공포스럽고 두려웠을까..

나는 무엇에 그리 화가 났을까?

나를 무엇이 그리 만들었을까..

그 때의 딸도.. 나도 참 딱하고 안쓰럽다.


나는 남동생이 2명인데 자라면서 동생들에게도 그렇게 대해본 적이 없고, 동생들과 싸워본 적도 없었다.

남동생들이 누나한테 맞고 컸다는 그 흔한 이야기도 내 이야기는 아니었다.

크게 소리를 지른 적도.. 누구를 그렇게 때려본 적도 없었다.

유치원 교사로 오랫동안 일하며 아이들에게도 화도 잘 내지 못했던 나였는데, 그렇게 한 순간에 변한 내 모습을 내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날 밤 잠을 자지 못했던 것 같다.

그 순간이 떠올라 괴롭기도 했겠지만, 나는 이제 유치원에서 일할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나는 책임감이 강했고 교사로서의 역할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지적하고 살았기에 그날 나의 모습은 교사의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나를 심판하고 있었다.

그 누구보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힘들었고 스스로를 혐오하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 시간들을 선명하게 기억하며 잊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를 벌하고 있다.


그때까지도 딸의 문제가 심각하기보단 나는 나를 중심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이 문제가 오랫동안 지속되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렇게 딸아이는 둘째 날도 학교에 가지 못했다.



◆ 엄마의 생각하는 의자 ◆

    : 아이를 키우며 나도 몰랐던 나의 모습을 만난 적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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