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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해정 Sep 29. 2016

브라질 ‘첨단’ 월드컵

청소년 인문 매거진 <유레카>(2014년 7월 발행) 

올림픽이나 월드컵처럼 스포츠 기량을 국가적으로 겨룰 수 있는 장(場)이 마련되면서, 전혀 다른 트랙에서 출발했던 스포츠와 첨단 과학기술의 융합이 시작됐다.

선수들은 더 잘 뛸 수 있게 됐고, 정확한 분석이 가능해졌으며, 관중들은 실시간 응원이 가능해졌다. 브라질 월드컵을 빛낸 첨단 과학기술을 소개합니다~


“왼쪽 발을 뒤로”, “공을 차”

2014 월드컵 개최국인 브라질은 크로아티아와 개막경기를 치렀습니다. 브라질의 승리로 끝난 이 경기에서 그야말로 ‘감독적인(?) 전술'이 등장했는데요, 바로 하반신 마비 환자 줄리아노 핀토가 주인공입니다.

야구에 시구가 있듯 축구에는 시축이 있습니다. 줄리아노 핀토가 브라질 월드컵의 시축자였습니다. 그는 로봇에 몸을 의존한 채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곧이어 발을 뒤로 젖히더니 브라주카를 앞으로 톡, 찼습니다. 뒤에서 조종한 것도 아니고, 버튼을 누른 것도 아니었습니다. 뇌파를 감지하는 헬멧을 이용해 로봇 발에게 ‘왼쪽 발을 뒤로', ‘공을 차'라고 지시한 것이죠. ‘생각’만으로 발을 움직였습니다. 이것은 핀토와 같은 척추 손상 장애인들의 미래를 바꿀 시축이었습니다. 핀토는 주먹을 치켜들고 환호를 질렀고, 관중들은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유튜브를 본 한 네티즌은 핀토를 보면서 아이언맨과 엑스맨이 떠올랐다고 댓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 감동의 장면은 브라질 출신의 신경과 학자 미겔 니콜레리스 교수를 중심으로 25개국 150여 명의 연구진이 연출한 것입니다. 브라질 정부가 1500만 달러(153억 원)을 지원, 이 프로젝트를 추진했고, 사고로 척추가 마비되거나 근육이 위축되는 병을 앓는 환자 8명을 시축 후보로 꼽았습니다. 프로젝트의 이름은 ‘워크 어게인(Walk Again)’입니다. 이번 월드컵에서 뇌파 감지 로봇을 처음 선보인 2014년은 뇌파를 발견한 지 90주년이되는 해라 더욱 뜻깊었다고 합니다.


심판보다 정확한 심판

드라마틱한 시축을 연출한 뇌파감지 로봇과 함께 이번 월드컵에 처음 선보인 또 하나의 놀라운 기술이 있습니다. 바로 ‘골컨트롤 4D'라 불리는 골 판독기입니다. 골컨트롤 4D는 골을 컨트롤하기보다는, 골 장면을 기록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14개의 고속카메라를 사용해 공의 미세한 움직임과 동선을 잡아냅니다. 골이 들어간 장면을 촬영하고, 카메라가 포착한 사진을 2초 이내에 심판이 차고 있는 시계에 전달합니다. 이 판독기는 사물인터넷(IoT)과 웨어러블 디바이스 기술을 모두 탑재했습니다. 골이 골라인에 들어갔을 경우, 심판의 시계에는 ‘GOAL’이라는 메시지가 뜹니다. 심판의 눈으로 못 본 장면을 이 판독기가 판정하는 것이죠.


이 판독기를 도입하게 된 배경은 이렇습니다. 지난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 독일과 잉글랜드는 16강전에서 맞붙었습니다. 독일이 2대1로 앞선 전반전 종료 직전, 잉글랜드 선수의 발끝을 떠난 공이 크로스바를 때린 후 골라인 안쪽에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심판은 골을 인정하지 않았고, 독일의 골키퍼도 이 골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로 경기가 계속됐습니다. 독일은 4대1로 영국을 누르고 8강에 진출했습니다.


만약 골이 인정됐더라면 어땠을까요? 잉글랜드는 동점을 만들었을 것이고, 전혀 다른 경기 분위기에서 영국이 실점을 허용하지 않았을 수도 있죠. 재미있게도 이 판독기는 오심의 수혜를 입은 독일의 한 기업이 만들었답니다.


골 판독기는 오프사이드 판정을 제대로 해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오프사이드 판정은 골라인 판독만큼이나 오심 논란에 자주 휩싸입니다. 심판의 눈은 속일 수 있어도 고속 카메라의 렌즈를 속일 수는 없겠죠? 그러나 *일부 팬들은 심판보다 정확한 이 기계 심판에 대해 회의적입니다.  과연 심판의 역할을 기계가 대신할 수 있냐는 본질적인 질문부터, 골 판독기가 오히려 혼란을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다른 스포츠 종목에서는 ‘기계심판’이 보편적입니다. MLB는올 시즌부터 비디오 판독을 확대해 종전의 홈런 판독뿐 아니라 심판이 판단 전반을 검증할 수 있도록 체계를 갖췄습니다. 


테니스 메이저 대회의 공 추적시스템은 ‘호크아이’입니다. 이번 월드컵에서 골 판독기와 함께 쓰인 호크아이는 초당 60프레임 속도로 공을 촬영해 공이 떨어진 위치를 정확하게 판정합니다.


FIFA는 기계가 심판 영역을 파고들면서 심판의 권위가 떨어질 것을 우려했습니다. 계속 되는 오심 논란에도 골 판독기 도입을 미루다 이번 월드컵에서처음 선보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골판독기가 과연 심판의 권위를떨어뜨리는 요인이 될까요?




실제로 지난 15일 프랑스와 온두라스 간 브라질 월드컵 E조예선 경기에서 후반 3분 프랑스의 두 번째 골이 온두라스 골키퍼 손에 맞았습니다. 관중들은 선방에 환호를 보냈지만, 심판은 프랑스 득점을 선언했습니다. 골 판독기가 골이라 인정했던 것이죠. 그러나 아무도 공이 골라인 안으로 들어간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FIFA는 골 판독기 카메라에 담긴 공의 모습을 전광판과 TV중계를 통해 증명했지만, 관중들의 야유를 잠재울 수는 없었습니다. 육안으로는 명백히 골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빅데이터, 코치도 되고, 점쟁이도 되고

‘축구’와 관련된 인상적인 영화가 있는데요 바로 주성치의 <소림축구>입니다. 오합지졸 소림축구단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대륙 1위 막강한 축구팀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훈련방식을 떠올려봅시다. 선수들은 몸에 센서를 붙인 채 운동을 하고, 약을 먹고 주사를 맞습니다. 영화에선 무시무시하게 그려졌던 이 훈련방식을 독일 국가대표팀이 적용했습니다! (물론 주사를 맞거나 약을 먹지는 않습니다. 그건 불법이니까요.)


선수들은 훈련과 경기 시 무릎이나 어깨 등에 센서를 부착합니다. ‘SAP HANA’라는 솔루션은 선수들의 개인 정보를 취합, 코칭 스태프에게 넘깁니다. 코칭 스태프는 이 데이터를 분석, 선수들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그날의 컨디션을 체크합니다. 이 기술은 제대로 먹혔습니다. 결승전만큼이나 막상막하의 대결이 펼쳐지리라 예상했던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4대0 완승을 거뒀습니다. 그리고 8강에 진출, 5일 프랑스와의 경기를 앞두고 있습니다. 많은 해설가들은 독일팀 최고의 코치를 이 빅데이터 기술이라 꼽고 있습니다.


빅데이터는 독일 팀을 최강의 팀으로 만들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경기 결과를 예측하는 데에도 활용됐습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지금은 ‘고(故) 문어’가 된 파울이나 펠레가 경기를 예측했다면,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빅데이터가 그 자리를 꿰찬 것입니다. 


지난달 26일 미국에서 열린 구글 개발자 컨퍼런스 마지막 날. ‘구글 클라우드 플랫폼의 미래 예측’이라는 섹션이 열렸습니다. 이 섹션은 빅데이터를 분석해 미래를 예측하는, 일종의 통계 기술을 소개하는 자리였습니다. 이날 구글은 16강에 오른 팀들의 승패를 예측했고, 그 예측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습니다. 구글은 스포츠 데이터 업체인 옵타스포츠가 수년간 쌓아온 국가별 프로축구 경기 데이터를 바탕으로, 출전 선수들의 실력과 경기장을 찾은 자국 팬 수, 그들의 열광 정도와 국가별 대표팀 지원 현황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했습니다.


이 플랫폼은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이 결승에 올라가면, 브라질이 근소한 차이로 이길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구글의 이 빅데이터는 브라질의 우승을 맞추며 점쟁이가 됐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응원 열기가!

구글은 경기 결과를 예측하는 동시에 아주 재미있는 서비스를 선보였습니다. 바로 ‘구글 스트리트 뷰’에 브라질 월드컵을 판올림(업데이트)한 것입니다. 이곳을 통해 브라질 12개 도시에 지어진 경기장을 한눈에 관람할 수 있습니다. 경기장 내부 전경을 360도로 볼 수 있고, 경기장 소식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직접 비행기를 타고 갈 수 없는 ‘축빠’에겐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운 서비스입니다. 이런 상황을 이미 아는 듯, 디에나 익 구글 지도 개발자는 공식 블로그에 “당신이 브라질로 떠나든, 소파에 앉아 편하게 경기를 보든, 구글 지도는 경기장으로 향하는 티켓”이라며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페이스북 역시 ‘트렌딩 월드컵’과 ‘팬맵’이라는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트랜딩 월드컵은 월드컵과 관련된 정보를 뉴스피드에 모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한 서비스입니다. 이 페이지는 실시간 경기 정보 제공과 함께 이를 친구와 공유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 다른 서비스인 팬맵은 월드컵 출전 선수 중 페이스북에서 인기 있는 선수 10명의 전 세계 팬 분포도를 세계지도에 보여주는 서비스입니다. 이 팬맵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선수는 누구일까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입니다.


내일의 과학기술, 4년 뒤의 월드컵

사물인터넷, 웨어러블 디바이스, 빅데이터, SNS 등 첨단 과학기술이 경기장 또는 경기장 밖에서 활약하며 한층 재미를 높여준 2014 브라질 월드컵. 빠르게 진화하는 과학기술의 속도를 쫓는 게 가끔 벅차기는 하지만,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다음 월드컵에서는 또 어떤 기술들이 축구와 함께 우리를 찾아올까요? ‘워싱턴포스트’는 부상당한 선수를 빠르게 케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메디컬 서비스가 다음 월드컵의 관점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다음 월드컵에서도 과학기술의 스타 플레이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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