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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해정 Oct 28. 2016

대안화폐,
모두를 위해 만들어진 돈

 가상화폐와 지역화폐의 차이점도 함께 알아보세요 

‘돌기 때문에’ 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돈을 가진 사람이 돈을 소비하지 않고 쌓아두기만 하면 어떻게 될까요? 물가는 떨어지고 돈의 가치는 올라 사람들이 경제생활을 하기 어려워집니다. 그러면 돈이 필요한 사람들끼리 돈을 만들어 쓰면 안될까요?

도움_《돈의 반란》(문진수 지음, 북돋움 펴냄)


언제부터인지 살기 어려워진 마을이 있었습니다. 마을에 탄광이 있어 예전에는 그래도 넉넉했었는데 지금은 탄광도 폐쇄됐고 석탄을 가공하는 공장도 문을 닫았습니다. 상점에는 손님이 없어 재고품이 쌓여갔고, 직업을 잃은 사람들 중에는 거리로 나온 이도 있었습니다. 나라에선 다른 마을도 어렵다며 기다리라는 대답만 되풀이할 뿐이었습니다. 문제는 돈이었습니다.


마을에 돈이 없으니 노동자의 월급을 줄 수도, 물건을 살 수도 없었던 것이죠. 사람들은 광장에 모여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했으니 해결법을 찾자고요. 그때 누군가가 말합니다. 


그럼 우리가 돈을 만들면 어떨까요?


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가짜 화폐’을 만들었습니다. 정부에서 발행하는 화폐를 위조한 것이 아니라 마을에서만 쓸 수 있는 마을의 화폐였습니다. 마을에서만 통용된다는 점, 그것만 제외하고는 나머지는 진짜 돈과 똑같았습니다. 


돈을 받은 탄광과 공장은 다시 문을 열고 노동자들을 불렀습니다. 일을 하는 사람이 생기자 다른 마을에 갖다 팔 수 있는 물건이 생겼습니다. 탄광과 공장은 빌린 화폐를 진짜 돈으로 갚았습니다. 노동자들은 일한 대가로 가짜 화폐를 받고, 상점에서 생필품을 샀습니다. 상점에는 재고가 없어졌고, 이 돈으로 다시 공장에서 물건을 사오거나 진짜 돈으로 교환했습니다. 


마을은 다시 생기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적막했던 아침에는 출근하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거리를 메웠고, 저녁에는 식탁에 둘러앉아 음식을 나눠 먹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집집마다 들려왔습니다.

돌지 않는 돈의 대안, 대안화폐

소설 《유토피아의 한 장면 같지만(사실 유토피아에는 화폐조차 존재하지 않습니다만), 이 이야기는 1930년대 독일의 작은 탄광 마을 슈바넨키르헨(Schwanenkirchen)의 실제 이야기입니다. 돈의 이름은 ‘베라(wara)’였고, 베라 덕분에 마을의 살림살이가 다시 회복됐다고 합니다. 베라와 같이, 정부에서 발행하는 화폐가 아닌 마을과 같은 공동체에서 ‘필요에 의해 만든 화폐’를 대안화폐라 부릅니다. 


돈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조금은 생소하지만 역사 속에선 대안화폐를 만들었던 마을이나 공동체가 많이 존재했고, 지금도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대안화폐를 왜 만드는 걸까요? 만들어진다고 해도 누가 그걸 믿고 사용할 수 있을까요? 


일반적으로 화폐는 가치 척도, 교환 매개, 지불 수단이라는 기능을 가집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어떤 기능일지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본주의 이후 돈에 ‘가치 저장’이라는 기능이 추가됐다는 것입니다. 화폐는 오랫동안 묵혀 두어도 썩거나 가치가 떨어지지 않습니다. 은행에 맡기거나 누군가에게 빌려주면 이자라는 보상까지 받게 됩니다. 이게 바로 가치 저장 기능인데, 이것 때문에 돌아야 할 돈이 ‘돌지 않는’ 이유가 만들어졌습니다. 


사람들이 가치 저장의 도구로 돈을 쌓아두기 시작하자 다른 기능들, 즉 교환을 하거나 지불을 할 때 필요한 돈이 없어지게 되죠. 돈을 사용하지 않고 저장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쓸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뉴스에서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재벌들이 돈을 풀지 않는다’, ‘사람들이 지갑을 열지 않는다’, ‘통화량이 적어 디플레이션이 심화되고 있다’. 모두 돈이 돌지 않아 경제가 어려워질 때마다 나오는 말들입니다.


대안화폐는 바로 이런 지점에서 생겨났습니다.


대안화폐는 국가화폐와 대비되는 돈이 아니라 국가화폐가 제대로 흘러가지 못하는 영역에 돈이 흐르도록 함으로써 국가화폐의 역할을 하는 보완화폐입니다. 아직 한국에서는 대안화폐를 쓰는 곳이 드물지만 세계 곳곳에서 이미 ‘모두를 위한 돈’이란 트렌드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대안화폐는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쓰는 이용자들의 마음가짐도 매우 중요합니다. 아무도 쓰지 않겠다고 마음먹으면, 그것은 화폐가 아니라 종잇조각에 불과하니까요. 대안화폐의 사례를 통해 대안화폐가 어떻게 쓰이는지 좀 더 살펴봅시다.

브라질 교육화폐 사베 Saber

2004년 당시 브라질 국민의 40% 이상은 15세 미만이었습니다. 아동과 학생이 많다는 점, 이는 학교와 교육문제로 직결됐습니다. 이들을 위한 상당한 교육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브라질은 스페인어로 교육이란 뜻의 ‘사베’라는 교육화폐를 도입했습니다. 


교육부는 상대적으로 성적이 떨어지는 학생들에게 사베를 배포했습니다. 이 학생들은 사베를 가지고 상급반 학생들에게 과외비처럼 쓸 수 있었죠. 이 돈을 받은 상급반 아이들은 다시 본인보다 윗 학년인 아이들에게 과외를 받았습니다. 


우리로 치면 고3인 아이들에겐 후배로부터 받아들인 사베가 상당했습니다. 브라질은 이 사베를 대학 진학 시 첫 해의 학비로 사용할 수 있게끔 해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사베를 이용해 비용부담 없이 공부에 매진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 만들어졌습니다.


‘안 쓰면 손해!’ 킴가우어 Chiemgauer

킴가우어는 독일 바이에른 주 뮌헨 인근에서 유통되는 화폐입니다. 역사도 길고 쓰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 화폐를 만드는 사무국은 지역에서 활동 중인 비영리단체들에게 3% 할인된 금액으로 킴가우어를 팝니다. 비영리단체들은 정가에 이 화폐를 사람들에게 팝니다. 팔 때마다 3%의 이익이 비영리단체를 위한 후원금이 되는 셈입니다. 손님들로부터 이 화폐를 받은 가맹점은 사무국에서 수수료 5%를 떼고 유로와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럼 가맹점만 손해 아니냐고요? 대신 사무국에선 가맹점에 대한 홍보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또 킴가우어의 장점은 화폐에 ‘감가방식’을 적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감가방식이란 화폐를 쓰지 않고 보관할 경우, 일정한 금액의 보관료를 내야 하는 것으로 이자와는 반대되는 개념이죠. 시간이 지날수록 손해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되도록 빨리 썼습니다. 돈을 돌게 해 돈을 돈답게 하는 것, 이것이 킴가우어의 전략입니다.


준비기간만 6년, 낭트화폐 SoNantes

올해 5월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신상’ 화폐입니다. 프랑스 낭트와 인근 지역에는 많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업체가 몰려 있습니다. 유럽 경제가 장기 침체 국면으로 들어가고, 값싼 중국 수출품이 내수 시장을 점령하면서부터, 공장문을 닫거나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실업자가 되는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낭트는 대기업을 제외한 모든 사업자가 지역에서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를 교환할 수 있도록 낭트화폐를 만들었습니다. 직접 화폐를 교환하는 방식이 아닌, 온라인 장부에 거래를 기록하도록 하는 방식입니다. 내가 빌려준 만큼, 빌릴 수 있는 그런 방식이었죠. 


이 낭트화폐가 인상적인 이유는 준비기간만 6년이 걸렸다는 겁니다. 낭트화폐를 만들고 잘 이용할 수 있도록 대학에선 무엇을 해야 할지, 공공기관에선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을 하는 작은 모임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모임은 공동의 의견을 모았고, 그런 의견들이 모여 공동의 목표가 완성됐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잘 쓸 수 있는 낭트화폐의 이용법이 마련된 것이죠. 이렇게 오랫동안 준비를 거쳐 완성된 낭트화폐. 지역을 어떻게 바꿀지 기대가 됩니다.


화천산천어축제의 농특산물 교환권

한국에도 재미있는 대안화폐 모델이 있습니다. 매년 겨울이 되면 이색적인 풍경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강원도 ‘화천산천어축제’에서 쓸 수 있는 상품권입니다. 


이곳에 입장하기 위해선 입장료 1만원을 내야 합니다. 그러면 주최 측에선 ‘농특산물 교환권’ 5천원권을 다시 내어줍니다. 참가자들은 축제 한켠에 마련된 시장에서 이 상품권을 이용해 물건을 살 수 있습니다. 상인들은 이 상품권을 다시 돈으로 교환할 수 있고요. 지갑을 자연스럽게 열게 하는 이 방법은 실제 5천원어치 이상의 물건을 구매하도록 유도합니다. 


2015년 축제장에서 팔린 농산물만 약 10억원 규모라고 합니다. 마을 사람들과 놀러온 사람들 모두 즐거운 축제가 되겠죠!




이 글은 청소년 인문 매거진 <유레카>(2015년 7월 발행)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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