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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해정 Nov 11. 2016

응답하라, 레트로!

청소년 인문 매거진 <유레카>(2016년 2월 발행) 

2015년 시작된 레트로 열풍은 올해도 이어졌습니다. 패션뿐 아니라 가전제품, 식품, 게임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레트로 스타일이 트렌드로 떠올랐습니다. 특히 대중매체에서 레트로는 마치 흥행공식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라붐, 레트로 컨셉의 신곡 ‘아로아로’ 인기 상승

최근 ‘응팔’이 불러일으킨 복고 열풍을 타고 인기 상승세를 타고 있는 라붐은 신곡 ‘아로아로’의 컨셉과 의상까지 레트로로 구성해 네티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OO일보 2016년 1월 30일


레트로 풍 게임, 스팀에서 즐겨라

과거 8비트 게임기 시절의 감성을 자극하는 그래픽과 게임 내용으로 무장한 인디 게임이 유행이다. 온라인 게임 플랫폼인 스팀에 등록된 레트로 풍 게임만 수백 가지다. OO신문 2016년 2월 2일

롯데네슬레코리아, ‘테이스터스 초이스 레트로 1988’ 한정판매

80년대 큰 인기를 끌었던 ‘테이스터스 초이스 레트로 1988’이 한정 출시됐다. 과거 레시피를 그대로 사용해 그 당시 판매되던 제품과 동일한 맛을 재현한 것이 특징이다. OO일보 2016년 1월 17일


에어 조던 2, 레트로 ‘JUST DON’

에어 조던 2가 특별한 고급스러움을 입고 다시 돌아옵니다. 최상급소재로 처음 이탈리아에서 제작됐던 이 유서 깊은 럭셔리 시리즈는 Don C와의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로 다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OO일보 2015년 12월 8일


패션에서 시작된 레트로

터틀넥 니트와 통이 넉넉한 연한 색 청바지, 그리고 체크무늬 코트. (이 설명만으로 덕선이를 떠올렸다면 당신도 ‘응팔’ 덕후!) tvN의 ‘응답하라 1988’ 마지막 회에서 덕선이가 입었던 옷차림입니다. 패션은 돌고 돈다더니 덕선이 패션이 다시 유행입니다. 똑같은 차림으로 덕선이가 2016 봄, 쌍문동에 다시 등장한다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90년대 패션이 대유행입니다. 덕선이가 입었던 그 코트도 현재 매장에서 판매 중인 제품이라고 하네요.


복고주의를 지향하는 패션 스타일. 과거 유행했던 아이템을 현재 정서에 맞게 재해석한 패션을 레트로(retro)라고 합니다. 레트로는 회상, 회고, 추억을 뜻하는 ‘레트로스펙트(retrospect)’의 줄임말인데요, 레트로 패션, 레트로 룩, 레트로 디자인처럼 패션이나 디자인 분야에서 쓰였습니다. 이 말은 1970년대 프랑스에서 처음 쓰이기 시작했는데요, 지금은 패션·디자인뿐만 아니라 폭넓게, 여러 영역에서 통용되고 있습니다. 가요, 영화, 광고 등 대중문화를 비롯해서 가전제품, 식품, 게임 등에서도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지요.


기업들이 레트로 열풍에 뛰어들었습니다. 90년대 선보였던 패키지 디자인을 다시 활용하거나 옛날 광고를 다시 보여주는 등 레트로 마케팅을 다양하게 펼치고 있습니다. 그 열풍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뜨거운데요, 레트로가 소비자들에게 ‘먹히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어른들에겐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젊은 세대에겐 검증된 새로움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특히 기업은, 주 소비계층인 어른들의 추억의 정서, 즉 노스텔지어를 자극하면서 가질 수 없고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레트로 상품을 통해 다시 찾을 수 있다고 설득합니다. 소비자들은 레트로 스타일의 제품을 소비하며 즐거웠던 추억과 시간을 다시 떠올리는 셈이죠.


젊은 세대들도 레트로 제품을 통해 노스텔지어를 느낀다고 합니다. 이들은 부모님 사진이나 부모님께 들은 이야기를 통해서 특정 세대의 집단화된 기억을 학습하고, 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노스텔지어를 느끼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레트로 제품을 소비하고 싶은 욕망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LG의 클래식 TV의 주고객층이 신혼부부이고, ‘응팔’ 시리즈나 MBC ‘무한도전’의 ‘토토가’ 같은 방송이 젊은 층에게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던 이유도 아마 이 때문인 모양입니다.


화면 속 레트로 열풍은 경제위기의 반증?

접하기 쉽고 파급력 있는 영화나 드라마 등의 대중매체에서도 레트로 감성, 레트로 콘텐츠가 주류로 자리 잡았습니다. ‘응팔’ 시리즈를 비롯해 영화 <세시봉>(2015) <국제시장>(2015) 등 지나간 세대 이야기를 다룬 콘텐츠의 인기가 높습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마찬가지였고요. 

헌데 이런 대중매체 속 레트로 열풍이 경제위기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설명도 있습니다. 실제로 국내 레트로 콘텐츠 열풍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본격화됐거든요.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과거로부터 위로를 얻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레트로 콘텐츠가 유행하게 됐다는 설명입니다.


과거에도 ‘시대물’ ‘역사물’을 다룬 드라마나 영화가 있었지만 대부분 역사적 사건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하지만 레트로 콘텐츠는 역사가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개인의 추억을 콘텐츠로 만들어내는 것이지요.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도, 독일의 간호사나 광부로 일하러 갔던 역사적 사건을 역사가 아닌 개인의 기억으로 다루고 그려나가고 있는 것이지요. 이처럼 개인의 이야기가 현재 레트로 드라마와 영화의 특징입니다. 


또 1990년대, 그러니까 1997년 외환위기를 겪기 이전의 시기를 그리고 있다는 것도 특징입니다. 당시 한국은 정치와 경제, 문화가 모두 안정기에 있었고, 폭발적 성장을 거듭했던 시기였습니다. 이때의 풍요로움을 화면에 담아내는 것 역시 레트로 콘텐츠의 특징입니다.


새로운 것은 없을까

레트로 콘텐츠를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한국외대 문화콘텐츠학과 김평수 교수는 한 웹진의 기고를 통해 대중매체 레트로 열풍에 대해 일침을 가합니다.


세상에는 한 시대를 관장하는 주류문화가 있다. 그 주류문화가 매너리즘으로 흐르면 언제나 틈을 깨고 나오는 창조적인 문화도 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21세기에 들어서서는 당대의 문화가 실종되었다. 오직 ‘레트로(retro)’ 열풍만이 휩쓸고 있다. (중략)

21세기속의 대중은 새로움과 미래가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런 문화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대중의 가슴은 허전할 수밖에 없다. 우리 시대 예술가들은 오늘날의 문화에 끝없이 반문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예술가들이 레트로 문화가 주류가 된 이 사회에 대해, 창조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면, 앞으로 다가올 세상에는 창조적인 미래가 없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나는 아직까지는 레트로가 주는 노스탤지어보다 새로움이 주는 설렘을 맛보고 싶다. 설렘을 주는 창의적인 콘텐츠가 얼마나 생산되는가가 우리사회의 건강성을 측정하는 척도라고 믿는다.

과학기술인공제회 웹진 <Sema> ‘레트로가 호명한 노스텔지어의 시대’ 中


‘추억만 있을 뿐, 새로운 문화는 없다’는 것이 주장입니다. 문화 전반에 새로운 것이 없기 때문에 과거의 레트로가 되풀이 될 뿐이라고 하는데요. 앞서 말했던 경제위기 속 레트로가 탄생한다는 것과 새로움이 사라진 자리에 레트로가 채워진다는 의견은 모두 생각해볼 만한 주제들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다른 얘기지만 개인적으로 레트로 룩의 붐은 대환영입니다. 한동안 ‘소녀시대 필’ 스키니진이 유행해 허벅지와 골반이 늘 긴장상태였는데, 저도 오늘 덕선이처럼 통 큰 청바지를 입었습니다. 이제 좀 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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