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가진 고정관념은?
먼지봉투 없는 청소기’ ‘날개 없는 선풍기’….
다이슨의 제품은 다이슨이나 ‘에어 멀티플라이어’와 같은 브랜드보다 제품의 특징으로 더 알려져 있습니다. 청소기, 선풍기, 가습기, 헤어드라이기 등 판매하는 제품은 몇 안 되지만 이들은 늘 ‘혁신적’이란 수식을 놓치지 않습니다.
지난 4월, 다이슨은 헤어드라이기 ‘다이슨 슈퍼소닉’을 공개했습니다. 지난해 무려 17억 4000만 파운드(약 2조 9000억원)의 매출을 올린 글로벌 기업의 야심작이라기엔 소박한 게 사실. ‘고작 헤어드라이기?’라는 반응이 먼저였죠. 하지만 다이슨 슈퍼소닉은 보통 헤어드라이기가 아니었습니다. 시연회장에서 모두를 놀라게 했던 건 바로 소리였습니다. 기존 제품에서 나오던 소음이 거의 없었습니다.
다이슨은 헤어드라이기의 단점이 소음이라는 걸 파악하고 소음을 없앤 제품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팬(헤어드라이어의 모터가 이 팬(fan)을돌리면 바람이 나온다)을 없애야 했는데, 그전에는 아무도 이 팬을 제거할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하더라도 대체할 수 있는 걸 찾지 못했거나요. 팬이야말로 헤어드라이기가 돌아가는 핵심이니까 말입니다. 다이슨 슈퍼소닉은 팬이 없어 소리도 덜 나고, 바람도 강하고 가볍기까지 했습니다. 일본 도쿄에서 열린 발표 현장에서 다이슨의 창업자 제임스 다이슨(James Dyson)은 “다이슨은 세상에 없는 제품이 아니라 기존 제품을 세상에 없던 방법으로 ‘재발명’하는데 집중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확실히 ‘팬 없는 헤어드라이기’는 헤어드라이기의 재발명품이었습니다. ‘먼지봉투 없는 청소기’ ‘날개 없는 선풍기’처럼 말이죠.
스스로를 혁신가보다 발명가라 불리길 원하는 제임스 다이슨. 그는 1947년 영국 노포크에서 태어났습니다. 지금의 다이슨을 설립하기 전 커크 다이슨(Kirk Dyson)이라는 회사를 차렸는데, 이곳에서 처음 만든 것은 볼배로(Ballbarrow)라 불리는 정원용 수레였습니다. 보통의 정원용 수레가 폭이 좁은 바퀴를 사용해 땅에 홈을 남기고 좌우로 넘어졌는데 다이슨은 공처럼 생긴 큰 바퀴를 달아 안정감을 더했습니다. 하지만 경쟁사의 모조품으로 회사의 사정은 악화됐습니다.
다이슨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 1978년 말 ‘먼지봉투 없는 청소기’ 아이디어를 고안했습니다. 보통의 진공청소기에는 먼지가 모이는 먼지봉투가 있습니다. 하지만 종종 먼지가 봉투의 구멍을 막아 청소기의 흡입력을 떨어뜨리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다이슨 먼지봉투가 문제니 먼지봉투를 없앤 청소기를 만들면 되겠다고 아이디어를 냈지만 커크 다이슨의 투자자와 동업자는 “후버진공 청소기로 유명했던 당시 세계 최대 가전업체도 그런 시도는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이듬해 1월 그를 회사에서 쫓아냈습니다. (이런 경력 때문에 다이슨은 자신이 창립한 애플에서 쫓겨났던 스티브 잡스에 비유되기도 합니다.)
이후 다이슨은 홀로 창고에서 먼지봉투 없는 청소기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원심분리를 이용해 공기를 빠른 속도로 회전시켜 먼지를 분리해 모으는 원리였습니다. 그의 방식대로라면 기존 진공청소기의 문제도 해결되고 먼지봉투를 사는 비용도 절약됐습니다.
다이슨은 이 기술을 특허 내 대당 10%의 로열티를 받는 조건으로 일본의 한 기업에게 사용을 허락했고 그 자금을 바탕으로 다시 7년 간 제품개발에 매달려 1993년 지금의 다이슨을 설립했습니다. 첫 제품 ‘다이슨 DC01’이 나오기까지 그가 만든 시제품은 무려 5127개. 다이슨 DC01은 다른 청소기에 비해 5~10배 비싼 가격인데도 출시 2년 만에 영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청소기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미국 시장 진출 3년 만에 후버를 제치고 ‘비틀즈 이후 최고의 명성을 얻은 영국 산(産)’이란 호평을 얻기까지 했습니다.
먼지봉투 없는 청소기에 이어 날개 없는 선풍기 역시 다이슨의 대표 상품입니다. 바람을 만들기 위해선 날개는 필수였지만, 그 날개 때문에 바람이 끊어지기도 하고 청소 때문에 날개를 분리해야 하는 불편함도 있었습니다. 또 아이들은 항상 선풍기에 손가락을 넣고 싶어 하고요.
다이슨은 날개 없이도 바람을 낼 수 있는 기술을 찾았고, 날개가 없는 최초의 선풍기 ‘에어 멀티플라이어(Air Multiplier)’를 만들었습니다. 날개를 없애고도 날개가 있을 때보다 훨씬 많은 바람을 만드는 이 선풍기는 2009년 <타임>이 선정한 가장 혁신적인 제품 톱 10위에 올랐고 거의 100만원에 육박하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유럽 및 미주 등에서 히트 상품으로 기록됐습니다. “전기를 이용한 최초의 선풍기는 1882년 발명됐다. 날개를 이용한 그 방식은 127년간 변하지 않았다. 127년간 지속돼온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데는 4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다이슨의 일침입니다.
다이슨이 창고에서부터 5000번이 넘는 실패를 겪고 첫 청소기를 만들었듯 그의 직원들도 실패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 실패의 경험 속에서 완벽함이 자란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많이 걸려도 상관없습니다. 다이슨의 연구소에선 어느 누구도 개발 기간이 오래 걸린다고 나무라지 않고 완벽한 제품이 만들어질 때까지 실험을 이어갑니다. 2014년 출시된 신형 청소기 역시 6년이란 개발 기간이 걸렸고 2000여 개의 시제품을 제작한 후 탄생했다고 합니다. 스마트폰이나 에어컨, 세탁기 등 매 시즌 때마다 새로운 제품을 내놓는 여타 회사와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죠.
다이슨 신화를 지탱하는 한 축에 실패에서 얻는 경험이 있다면 다른 한축엔 젊은 엔지니어 군단이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회사를 만들고 100명의 직원을 둔다면 어떤 팀에 가장 많은 인원을 배치할 건가요?
어떤 사람에겐 마케팅팀이, 어떤 사람에겐 디자인팀이 가장 중요할 겁니다. 다이슨은 전체 직원의 3분의 1이 엔지니어와 과학자로 이뤄져 있습니다. 무엇보다 기술이 중요하다는 것이 다이슨의 철학입니다. 또 평균 나이가 26세 정도로 팀은 젊고, 팀원은 경력이 짧습니다. 다이슨은 신입을 좋아하는데, 사회 경력이 없을수록 좀더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다이슨에 재미있는 기업문화가 있는데 신입 직원이 처음 들어와서 하는 일은 ‘청소기 조립’입니다. 조립한 청소기는 집에 가져가서 실제로 사용해보면서 스스로 수리도 해보고 개선해야 할 점도 찾아본다고 하네요.
제임스 다이슨은 2012년 CEO의 자리에 물러나 엔지니어로 남았습니다. 그의 나이가 일흔에 가까우니, 한국에선 벌써 퇴직하고도 남을 나이지만 그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다이슨 스토리는 한국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제조업 경쟁력은 점점 추락하고 있지만 여전히 혁신적 아이디어를 잘 활용한다면 새로운 시장의 기회는 여전히 열려 있다는 걸 다이슨은 증명하고 있습니다. 도쿄에서 제임스 다이슨은 제조업 위기 극복의 위기를 교육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영국 등 서구 국가들이 직면한 제조업 위기는 제조와 엔지니어링에 대한 관심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많은 학생들이 공학과 과학을 선택해 보다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도록 기회를 줘야 제조업이 살아날 수 있습니다.”
최근 정부가 이공계로 진학할 아이들을 위한 혜택을 많이 늘렸는데 이것과도 닿아 있는 이야기죠.
혁신을 위해서는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여겼던 모든 것을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시점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청소기의 먼지봉투를 없애고 선풍기나 헤어드라이기의 날개를 없앤 것처럼 말이죠. 고정관념을 없애면 혁신할 수 있단 얘기는 비단 이런 비즈니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가진 고정관념은 무엇인가요? 공부는 무조건 밤 늦게까지 해야 한다는 것? 무조건 대학을 가야 한다는 것? 다이슨의 이야기를 읽고 내가 가졌던 고정관념은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