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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해정 Dec 29. 2016

사도세자, 이곳에서 잠들다

수원화성의 품

5월, 이곳 수원화성은 만연한 봄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미세먼지 없이 오랜만에 날이 맑았던 하루. 성벽을 따라 걸으며 사도세자와 정조의 길을 떠올렸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사도세자의 비극적 죽음에 대해선 모두 익히 알고 있으리라. 총명하고 사내다운 기질이 남달랐다는 그는 뒤주에 갇혀 8일 뒤 세상을 떠났다.


영조 뒤에는 노론이 있었다. 노론은 영조가 왕위를 차지하는데 큰 힘을 보태준 정파. 그런데 사도사제가 노론의 상대 세력인 소론과 가까이 지내고 있었고, 이 때문에 노론은 세자가 왕위에 오르면 자신들이 몰락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노론은 세자가 정변을 일으키려 한다고 모함했고 영조는 세자를 의심했다. 사도세자는 변질된 붕당정치의 희생자였다. (이건 역사적인 가정일 뿐, 다른 설이 존재한다)


11살이란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은 정조는 사도세자에 대한 그리움이 각별했다.


왕이 되고 가장 먼저 한 일도 정약용을 시켜 사도세자의 무덤을 조선 제일의 명당으로 옮긴 일이다. 그것이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명당으로 꼽힌 곳이 화산(花山) 융릉 자리였는데, 그곳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다. 정조는 그 사람들을 강제로 이주시키지 않고 새로운 장소에 성을 쌓고 사람들에게 집을 지을 돈과 이사 비용을 챙겨 사람들을 데리고 왔다.


그곳이 바로 팔달산 근처 지금의 수원화성이다.


봉돈. 불을 피워 비상사태를 알렸던 봉돈. 화성 안에 작은 성처럼 벽돌을 쌓아 올린 그 모습이 아름답다. (수원문화재단 제공)
팔달산을 시작으로 장안문, 화홍문, 방화수류정, 수원천, 행궁광장을 도는 코스가수원화성 여행의 정석이다. 그중 화홍문의 경치. (수원문화재단 제공)

봄으로 가득 찬 성벽을 따라 걸으며

만든 당시의 모습을 거의 보존하고 있는 화성은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건축물이자 동양건축사의 백미로 손꼽힌다. 이를 인정받아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거의 6km에 달하는 거대한 성. 화성의 북문이자 정문인 장안문으로 들어서면 성벽을 따라 걸을 수 있도록 정갈하게 조성된 길을 마주할 수 있다.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이 성벽길 코스는 꼼꼼히 살피며 걷겠다고 마음먹으면 반나절이 족히 걸릴 정도로 길다.


수원시는 2016년을 ‘수원 방문의 해’로 지정했다. 놀기 좋은 6월에도 이곳에서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한국을 대표하는 가수들이 참여하는 K-POP 슈퍼콘서트도 열리고(17일~18일), 드론 페스티벌(25일~26일)도 예정되어 있다.


성벽길을 걸으며 사도세자와 정조의 삶을 떠올렸다.


사도세자가 죽지 않았다면, 노론의 근거지인 서울을 떠나 개혁을 시도했던 정조가 좀더 오래 살았다면,(정조는 갑작스런 죽음을 맞았다. 이후 독살설이 제기됐다.) 조선 사회는 어떻게 달려졌을까. 지금 이 화성은 어떤 모습을 갖게 됐을까. 성벽처럼 긴 상상이 이어졌다



이 글은 청소년 인문교양 매거진 <유레카>에 2016년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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