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으로 가는 차 안에서 심훈의 《상록수》를 읽었다.
박동혁과 채영신. 둘은 사랑하지만 농촌계몽운동을 위해 서로 다른 곳으로 떨어져 분투한다. 둘의 이상은 열매를 맺었을지 몰라도 삶은 비극적이었다. 하던 일을 후임에게 맡길 수 있을 때 혼인하기로 약속했지만 채영신은 건강악화로 죽음을 맞는다.
이 소설은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한 작품이다. 필경사가 있는 부곡리에서 ‘공동경작회’를 운영하며 농촌계몽을 했던 심훈의 조카 심재영과 화성군 반월면에서 농민을 대상으로 야학을 연 최용신이 그 주인공이다.
심훈은 필경사에 머물며 심재영과 최용신의 이야기를 《상록수》로 탄생시켰다. 필경사는 ‘붓으로 밭을 일군다’는 뜻으로 동명의 문학잡지에서 따왔다고도 하고 <필경>이라는 본인의 시의 제목에서 따온 것이라고도 한다. 고아한 목조집으로 집 주변에는 그가 직접 심었다는 대나무들이 오랜 세월이 흘렀음을 말하듯 울창한 숲으로 변해 집을 감싸고 있었다. 집안으로 들어서니 낡은 책상과 원고 더미가 눈에 띈다. 필경사만큼이나 담백한 책상이다.
심훈은 문학의 힘으로 민중을 일깨우고자 했다.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무조건적인 무력항쟁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그는 문학을 통해 민족과 소통했다. 특히 흙에 묻혀 사는 민중을 계몽하는 것이 먼저라 생각했다. 그 결과물이 《상록수》인것이다.
필경사에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숨어있다. 심훈의 셋째 아들 심재호 선생은 심훈이 타계하기 다섯달 전에 이곳에서 태어났다. 비록 아버지의 모습을 보지 못했지만 그는 아버지의 삶을 더듬으며 전국에서 아버지의 유품을 모았고 자료를 수집했다. 심훈의 책상, 원고, 사진 등 50여년동안 모였고 유품을 기꺼이 기증했다고. 심훈의 유골 역시 이곳에 이장했다. 그 효심의 깊이에 감탄하고 간다.
필경사를 떠나 한진포구로 향한다. 차로 5분 정도면 만날 수 있는 곳. 《상록수》에서 채영신과 박동혁이 사랑을 약속했던 곳의 배경이다. 여름방학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이곳은 어떨지. 심훈의 혼이 살아 있는 필경사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