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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해정 Jan 03. 2017

구산동도서관마을
거북이처럼 느리게 걷는 곳

청소년 인문 매거진 <유레카>(2016년 9월 발행) 

구산동(龜山洞)에 있는 도서관이 아니랄까봐 이곳에 들어가면 거북이가 되어야 한다. 

전시 작품, 벽에 붙은 문구, 사서가 선택한 책들… 하나하나 기울이다 보면 거북이걸음을 걸어야 한다.


서울 은평구 구산동(龜山洞)이란 명칭은 경기도와 경계를 이루는 산 모양이 거북이를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거북이마을의 도서관이라, 상상꾸러미가 펼쳐진다. 안 그래도 이곳이 ‘정말 예쁜 도서관’이라 학생들에게 소개해주면 좋겠다고 추천을 받았기에 마음이 더욱 설렌다. 큰 길이 아닌, 빌라 숲에 도서관은 숨어 있었다.


도서관에 들어서니 먼저 탁 트인 공간이 눈에 띈다. 왼쪽 벽엔 신영복 선생의 글귀인 ‘서삼독(책은 반드시 세 번 읽어야 한다)’이 크게 쓰여 있다. 이곳은 테마가 있는 책을 소개하는 코너이자 전시공간이기도 하다. 이번 달 주제는 ‘탈핵-에너지’. 이와 관련된 전시와 책들이 소개되어 있었다.


총 4층, 이곳엔 다른 도서관엔 없는 특별한 공간이 있다. 그중 만화자료실의 풍경이 독특했는데, 벽 하나를 두고 아이들은 만화영화를, 어른들은 선풍기 바람을 쐬며 만화책을 보고 있더라. 그런데 그 어른들이 모두 아저씨들이어서 웃음이 났다. 꼭 만화방을 온 듯한 편안한 기분이 들어서다. (성인들을 위한 19세 이상 만화도 열람할 수 있다. 물론 어른들만.)

이곳을 애용하는 주민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도서관 같지 않다”는 것이다.

엄숙하고 조용해야 할 것 같은 공기가 이곳에선 흐르지 않는다. 두껍고 무거운 책장을 일렬로 모아 놓는 대신 뒤가 뚫린 하얀 책장을 너른 공간인 복도에 배치했고, 도서관에서 흔히 버려지는 책표지를 이용해 신착 도서 목록을 꾸몄다. 계단과 모퉁이, 시선이 닿는 곳마다 이야깃거리를 마련했다. 좋아하는 책이나 책속의 인물을 추천해달라고 하거나, 내가 생각하는 심각한 환경문제, 우리 동네 자랑거리를 말해달라는 글이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거북이마을의 도서관에선 거북이걸음으로 걸어야지만 도서관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이곳에서 만난 한 친구는 “여기선 책을 읽는 것뿐 아니라 생각도 나눌 수 있어 좋다”고 전한다.


구산동은 마을에 도서관을 두는 게 아니라, 마을을 아예 도서관으로 꾸밀 작정인지 이름도 ‘마을 도서관’이 아닌 ‘도서관마을’로 지었다. 

그 마음 잘 알겠다, 거북이처럼 이동할 수 있다면 우리 마을에도 와 다오. 안 그럼 머리를 구워먹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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