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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해정 Jan 12. 2017

마포 석유비축기지
문화비축기지로 피어나다

청소년 인문 매거진 <유레카>(2016년 11월 발행)

상암 월드컵경기장 맞은편 마포 석유비축기지. 10년 넘게 방치됐던 이곳이 내년이면 친환경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다. 가을볕이 따사로웠던 날, 이곳을 방문했다. 부지 옆 자리 잡은 문화공간 비빌기지에선 못난이 그릇을 파는 시장이 열렸다.

공사가 진행 중인 마포 석유비축 기지

축구 경기가 없는 날인데도 상암 월드컵경기장은 떠들썩했다. 경기장 주변 대형마트에는 ‘코리아 세일 페스타’을 맞아 아웃도어 제품이 좌판을 열었고, 억새가 흐드러지게 핀 하늘공원에서 가을을 느끼러 온 가족들이 보였다. 부모님 손을 꼭 잡고 있는 아이를 유혹하는 캐릭터 솜사탕과 핫도그 노점이 군데군데 보인다.


시끌벅적한 거리에도 끝이 있다. 월드컵경기장을 지나 조금 한적한 공기가 감도는, 매봉산 산자락을 조금 오르다보면 월드컵경기장보다 큰 규모의 부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매봉산에 있는 마포 석유비축기지다.

1970년대 두 차례의 석유파동1973년과 1978년 두 차례에 걸쳐 있었던 석유 공급의 부족과 가격 폭등으로 인한 세계 경제의 혼란을 겪은 우리나라는 위급할 때를 대비해 석유를 비축해두자는 사업을 추진했고 1976년 이곳 성산동 매봉산자락에 석유비축탱크를 마련했다. 사진 속에 보이는 입구를 통해 들어가면 지름 15m에서 38m, 높이 15m의 원통형 석유 비축탱크 다섯 개가 있다. 이 탱크 안에 무려 131배럴의 석유가 들어 간다고.


2002년 월드컵이 개최되면서 경기장 주변을 정리했고 이곳도 정리 대상이었다. 석유는 모두 용인으로 옮겨졌다. 그후 10년 넘게 빈 터로 남아 있었던 이곳을 서울시가 친환경 공원으로 조성하기로 했다. 아이디어 공모전을 거쳐 석유비축기지란 독특한 공간의 특성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공간을 새롭게 탈바꿈하기로 한 것이다. 공사는 올해 말까지 계속되고 내년 봄 산뜻하게 문을 연다. 체험이나 전시, 공연을 즐기는 한편 충분한 녹지도 만나볼 수 있는 ‘문화비축기지’가 되리라는 기대가 크다.


이름도 수상한 비빌기지

가을볕이 따사로웠던 어느 날, 석유비축기지에 다녀왔다. 세금으로 진행되는 공사가 잘 되고 있나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감시도 할 겸, 바로 앞 주차장에 있는 비빌기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비빌언덕은 들어봤지만, 비빌기지라니. 이름이 수상하고도 재미있다. 비빌기지는 주로 대형버스 주차장으로 쓰이는 빈터에 공방과 같은 작업공간과 상점들이 모이면서 만들어진 곳이다. ‘문화로놀이짱’ ‘소생공단’ ‘달바목공’ ‘효자맥주’ ‘키친스카우트’ ‘마르쉐@’ ‘자란다’ ‘카바레사운드’ ‘라라미디어’…. 비빌기지라는 수상한 공간에 모인 수상한 상점들이다. 컨테이너에 아기자기 자리매김한 이들 상점은 개성 넘치는 상품과 음식, 음료를 판매하고 있었다. 업사이클링이나 목공과 같은 작업실도 더러 보였다.


주말엔 상점이 돌아가면서 호스트가 돼, 작고 큰 행사를 기획한다. 오늘은 소생공단이란 곳에서 못난이 그릇 장터를 열었다. 못난이 그릇이란 흠이 있어 정상가에 판매하기엔 좀 ‘그런’ 그릇들이다.


손으로 빚고 불로 직접 구워 만들어지는 도자기의 경우 불 속에서 변형이 생기거나 유약이 흐른다거나 작은 점이 생기기 쉽다. 이걸 ‘요변’이라고 하는데, 사실 아주 자연스러운 거지만 대량생산에 익숙해진 우리는 이런 그릇들을 ‘불량’ 취급한다. 오늘은 이런 그릇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행사다. 밥 담고, 물 마시는 덴 지장 없는 제품들. 돗자리를 깔고 작가들이 직접 판매하니 왠지 더욱 특별한 그릇들 같다. 저렴한 가격에 지갑이 절로 열린다.


한쪽에선 맥주를 만들어보는 클래스가 열렸는데, 맥주 발효되는 구수한 냄새가 비빌기지에 풍긴다. 믿거나 말거나 효모가 발효되는 냄새는 꼭 짜장라면 끓일 때와 비슷하다. 지난주엔 도시농부가 직접 키운 채소나 과일을 판매하는 장터가 열렸고, 언제는 DJ가 와서 음악을 트는 신나는 디스코 파티를 열었다고 한다. 다음주엔 다 같이 모여 고추장을 만든다고. 디스코 파티가 열리는 날은 다시 와 ‘달밤땐스’를 추고 싶다.

발길이 닿지 않았던 곳에

석유비축기지에 있는 다섯 번째 탱크는 석유비축기지의 역사를 담은 기록 전시장으로 운영된다고 한다. 설치된 이후 1급 보안시설로 운영돼 시민들의 접근과 이용이 철저하게 통제됐던 이곳이 ‘환경과 재생’이란 주제로 공원으로 바뀐다니 기대된다. 석유시대가 남긴 거대한 흔적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그 길을 관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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