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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해정 Jan 24. 2017

낮보다 환한 동대문의 밤

동대문 야시장 

일요일 밤. 동대문 도매시장이 가장 바쁜 시간이다.

옷을 사러 나온 상인과 DDP의 야경을 구경하러 온 관광객들로 동대문은 낮보다 

더 환한 밤을 보낸다.


동대문디지털플라자(DDP)의 뒤쪽이 동대문 의류도매시장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일기를 쓰면 선생님이 검사했다.


‘집에 전화가 와서 마담을 찾으면 얼른 엄마를 바꿔줍니다. 외국인과 통화하면 무섭습니다.’


다음 날 선생님은 나에게 “엄마가 술집을 하냐”고 물었다.


엄마는 동대문시장에서 주로 유럽인을 상대하는 옷가게를 했고 아빠는 공장에서 유럽에 팔 옷을 만들었다. 유럽에서 ‘마담’은 성인 여성을 지칭하는 일반적인 말이지만, 한국에선 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이 말을 쓸 때 주의가 필요하다. 이건 ‘미스’도 마찬가지다.


정직한 나는 이 일을 일기로 썼다. ‘선생님이 엄마가 술집을 하냐고 물어봤습니다.’ 

우리 부모님은 내 숙제에 관심이 없었는데, 선생님이 뜨끔했는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일 때문에 부모님이 일하는 동대문시장에 처음 가보게 됐다. 진짜 옷가게를 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었는지 모른다. 졸려 죽겠는데 억지로 끌려나왔으니 한밤중이었을 것이다. 차 안에서 꾸뻑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밖이 아주 환했다. 고요하던 동네와는 다른 풍경이었다. 내가 차 안에서 한나절을 자 아침이 온 줄 알았다.


일요일 새벽, 분주한 동대문 도매시장의 풍경

종로5가와 광장시장부터 청계8가 종합시장까지, 약 2km의 청계천로 좌우로 그 안쪽 골목에 빽빽하게 분포된 시장을 동대문시장이라 부른다. 주변에 흥인지문이 있어 이런 이름이 붙었다. 지하철 동대문과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사이, 두산타워와 밀레오레 맞은편. 평화시장, 광희시장, 유어스, 디자이너크럽 등이 모여있는 곳은 의류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동대문 의류도매시장이다. 밤에만 문을 열어 동대문 밤시장이라고도 부른다.


이곳은 월요일 새벽, 12시부터 다음날 3시까지가 가장 분주하다. 전날이 휴일이고, 주말장사를 마치고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할 신상제품을 사러 온 소매상인들이 대거 방문하기 때문이다.


주변을 서성이며 사람들을 구경한다. 미디어에서 ‘큰손’이라 부르는 중국인 상인과 젊은 남녀 사장들, 시장에 오지 못한 상인을 대신해 옷을 사다주는 사입삼촌, 건물을 오가며 옷 짐을 이동해주는 지게아저씨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1900년대 초 동대문시장이 형성됐고, 1970년대 의류 도매시장이 전성기를 맞았다. 중국의 저렴한 의류가 수입되면서 침체기가 이어지고 있다곤 하지만 여전히 대한민국 대표 의류시장으로 활력을 띠고 있다.


도매상가 상인들이 분주하게 옷을 정리하고 있다.옷만큼 많은 게 현금이다. 도매시장에선 현금 계산이 불문율이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포장마차.상인들과 관광객의 야식을 책임진다. 단연 인기 메뉴는 분식이다.
지방 상인은 옷 짐을 들고 다니지않고 이렇게 지역이름이 적힌 곳에 물건을 두고 다른 곳으로 사입을 하러 간다.


서울의 랜드마크, DDP

북적북적한 시장통에서 고개를 돌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 새침을 떠는 동대문의 새로운 모습과 마주한다. 동대문디지털프라자(DDP) 때문이다. 원래 동대문운동장이 있었던 곳이다. 2008년 동대문운동장이 철거되면서 역 이름도 ‘동대문운동장역’에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으로 바뀌었다. 이름을 바꾸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동대문운동장은 사라져간다.


DDP는 이라크에서 태어난 영국의 건축가, 여성으로선 드물게 세계적 스타 건축가의 대열에 선 자하 하디드의 작품이다. 우주선 같은 유선형이 그의 건축의 특징. 안타깝게도 지난 3월, 세상을 떠났다. 처음 DDP가 만들어질 때 그 모습이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난이 쏟아졌으나 지금은 명실상부 서울의 랜드마크로 외국인 관광객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1층엔 LED 장미정원이 있다. 총 2만5550송이로, 70에 365를 곱한 수다. 대한민국이 광복을 맞은 지 70주년이 되는 해를 기념해 만들어졌다. 동대문을 찾는 사람들이 꼭 찾는 포토존이다.


겨울은 추워야 겨울. 오돌 오돌 떨다가 포장마차에서 떡볶이와 어묵을 사먹었다. 도매시장 맞은편 밀리오레나 에이피엠 뒤편에도 음식점이 많지만 죄다 프렌차이즈나 고깃집이라 재미가 없다. 도매시장 쪽으로 넘어오면 맛있는 음식이 훨씬 많다. 시장 상인은 늘 밖에서 음식을 사먹어 ‘입이 고급’이라고 말하던 엄마의 농담이 문득 떠오른다.


동대문의 숨은 맛집을 더 소개해볼까.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11번 출구 롯데 피트인 건물 뒤편은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양고기로 만든 케밥이나 꼬치, 고기 파이 등 그들의 전통음식이 의외로 한국사람 입맛에 잘맞는다.


DDP 1층 LED 장미정원.최고의 포토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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