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해정 Sep 26. 2016

공기를 사 마시는 시대가 온다

청소년 인문 매거진 <유레카>(2014년 5월 발행) 

쿡쿡, 오늘도 남동생 옆구리를 찌릅니다. “야, 물 떨어졌다.” 

남동생은 “그냥 수돗물 마시면 안 되나. 옛날에는 그냥 물을 마셨다는데…” 

볼멘소리를 합니다. 그리곤 한마디 덧붙입니다. 

“이러다 공기까지 사먹게 되면, 누나는 날 얼마나 더 부려먹으려나.” 

동생아, 이제 그럴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데 공기는 가벼우니까 누나가 들게~


<쇠북공기전 망징패조편>이란 단편소설이 있습니다. 재기발랄한 상상력으로 사회의 이곳 저곳을 꼬집는, 김종광이라는 소설가가 쓴 작품입니다. 다소 어려운 한자말의 제목이지만, 내용은 쇠북공기란 회사가 어쩌다 망했는지를 그린, 제목보다 무겁지 않은 소설입니다.


2000년대 초반에 쓰인 이 소설은 2020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2020년에는 어떤 모습일까요? 이때는 물처럼 공기도 사마십니다. 쇠북공기는 공기를 유통하는 회사입니다. 쇠북공기를 비롯한 여러 업체들은 매장에 공기캔을 팔기도 하고, 거리에 공기 자동판매기를 설치하기도 합니다. 점점 경쟁업체들이 많아지자, 질 좋은 공기를 마시며 놀 수도 있는 공기유흥장소까지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소설은 쇠북공기가 해체되는 과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곧 공기를 사고파는 시대가 올거라는 소설 속 예언은 꽤 흥미롭고 어색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성적으로 따져 본다면 공기를 사 마시는 것은 너무나 허무맹랑한 일입니다. 기체를 어디에 담을 것이며, 어떻게 흡입할 것이며, 그것이 진짜 좋은 공기인지 아닌지를 누가 감별하고, 과연 저절로 마셔지는 공기를 대체 누가 돈을 주고 사고 싶어 할까요? 그러나 답은 이미 나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허무맹랑한 실험은 이미 세계에서 테스트 되고 있으니까요.


공기를 파는 사람들 

몽뀍의 공기가 담겨있는 공기캔. ‘몽뀍’이란 말의발음은 프랑스어로 ‘방구’와 발음이 비슷하다. 이런말장난 때문에 더 인기가 있는 것이라고, 드블레는말한다.

프랑스 서남부에 몽 (Montcup)이란 시골 마을이 있습니다. 이곳에 사는 20대 청년 앙뚜안느 드블레(Antoine Deblay)는 자기 마을의 공기를 캔에 담아 프랑스의 클라우드펀딩 서비스를 통해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캔에 5.5유로로, 약 8천원입니다. 이 캔에는 250㎖의 몽 공기가 담겨 있습니다. 팔릴까 의문이지만, 드블레는 수주 동안 거의 천 개 이상의 주문을 받았으며, 마진도

60% 이상으로 매우 짭짤하다고 밝혔습니다. 이 캔은 ‘마을의 공기를 너무 많이 써버리면 안 된다는 이유’로 한정 생산된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더욱 잘 팔리게 되었습니다. 








키릴 루덴코의 공기캔 시리즈

수원지에 따라 생수 맛이 달라지는 것처럼, 공기도 지역마다 ‘맛(?)’이 다를까요? 자기가 여행한 곳의 공기를 캔에 담아 판매하는 예술가도 있습니다. 바로 체코의 사진작가 키릴 루덴코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수공예품 전문 온라인숍( www.etsy.com)에서 각나라 유명 도시들과 루브르 박물관, 노트르담 대성당, 에펠타워 등 세계 여러 관광지의 공기를 캔에 밀봉해 9.99 달러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선 세계 각국의 여러 공기들을 맛볼 수 있습니다.


프랑스의 드블레나 체코의 루덴코가 캔에 넣은 공기가 정말 프랑스와 세계 여러 나라의 것인지 확인하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믿고 삽니다. 이들이 파는 것은 공기가 아니라 그곳의 공기를 넣었다는 ‘의미ʼ를 파는 것입니다. 인터넷에 검색도 안되는 시골 오지의 맑은 공기를 구입하고, 자신이 여행했던 또는 자신의 고향의 공기가 담긴 캔을 장식장에 진열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충분히 만족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치 기념품을 구입하는 것처럼 말이죠. 이런 심리를 이용해, 루덴코는 공기캔에 이런 문구를 적어 놓았습니다. ‘이 공기는 스트레스를 경감시켜 주고, 향수병을 낫게 해줄 것입니다’. 사실로 밝혀진 바는 없어도, 꽤 설득력 있는 설명입니다.


진짜 맑은 공기가 필요한 사람들

스트레스나 향수병을 치료해주는 공기캔이 아닌, 진짜 맑은 공기가 필요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대기오염이 심각한 나라의 사람들입니다. 당연히 중국이 먼저 떠오릅니다. 공기오염으로 인한 폐암 등 각종 질병으로 매년 35만에서 50만 명이 조기 사망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을 정도로 문제가 심각합니다.


중국에서 공기를 사업화하는 프로젝트는 이미 시작됐습니다. 작년에는 중국의 괴짜 억만장자인 천광뱌오가 공기캔을 팔아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지난 3월에는 남부에 있는 구이저우(貴州)성이 ‘시진핑 표 공기캔’ 개발에 나서겠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습니다. 구이저우성은 공기캔이 일본 후지산 관광지구에서 판매되어 큰 인기를 끌었던 상품이라고 소개하면서 구이저우의 우수한 공기 질을 바탕으로 공기캔 개발에 나서기로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시진핑 주석의 이름이 붙은 이유는 구이저우성을 방문한 시 주석이, ‘공기의 질이 최상’이라는 보고를 듣고 “공기캔을 만들어 팔아도 되겠다”는 말을 농담 삼아 성 관계자에게 던졌기 때문입니다.


천광뱌오

중국의 자선왕이자 괴짜부자로 알려진, 재생이용유한공사의 회장이다. 그는 중국의 환경오염에 관심이 많다. ‘저탄소 사회는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란 문구가 적힌 공기캔을 제작하기도 했고, ‘스모그 법안을 제정하자’란 노래를 만들기도 했다.


공기오염은 유럽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유럽에서 가장 심각하다고 손꼽히는 볼리비아에서도 건강을 위해 공기를 팔기도 합니다. 이베이(eBay)에서는 그리스와 접한 불가리아의 로도프 산맥에서 채취한 공기를 비닐봉지에 담아 약 9파운드(1만5800원)에 판매하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공기를 담은 이 ‘에어 백’에는 채취 날짜가 적혀 있어 나름 신선도도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알레르기나 천식 등 호흡기 질환이 있는 환자나 노인들에게는 맑은 공기를 사 마실 수 있는 일이 희소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물에도 종류가 있는 것처럼 이들에게도 종류별로 공기를 처방할 수도 있겠죠. 맞춤공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제품도 개발됐습니다. Ohita라는 제품입니다. 이것은 간단히 말해 휴대용 공기청정기입니다. 외출 시에 가방이나 옷 등에 핀으로 고정할 수 있으며, 언제 어디서나 맑은 공기를 걸러 마실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공기를 파는 미래, 필요할까?

한국에서도 공기를 파는 사업이 시도된 적이 있었습니다. 지난 2002년 제주도와 제일제당(지금의 CJ)이 협약을 맺고 ‘네이처 에어 제주삼다맑은공기’라는 제품을 출시했죠. 당시만 해도 공기는 자연재이자 공공재이기 때문에 사유화할 수 없다는 입장이 매우 강했습니다. 결국 2005년 사업이 중단됐습니다. 


그러나 2014년 ‘제주세계자연유산 산소스프레이’를 상품화하자는 제안이 다시 제주도에서 제기됐다고 합니다. 제주발전연구원에서 발표한 ‘제주지역 힐링관광 발전방안’ 연구보고서에는 “최근 외국인들에게 ‘K-팝ʼ에 이어 한국식 명상체험인 ‘K-힐링ʼ 열풍의 조짐이 있다. 이러한 트렌드에 맞춰 제주만의 독특함을 갖춘 다양한 ‘J-힐링ʼ 상품을 개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삼다수 워터스프레이를 ‘J-힐링ʼ 상품 사례로 제시했습니다.


힐링이라는 정신적인 치유의 목적으로든 건강상의 이유로든 공기사업은 앞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특히 숨을 쉬는 데 사용되는 산소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미래가 도래할지도 모른다는 보고서가 등장할 정도로 대기오염이 세계 최대 화두인 지금, 맑은 공기를 파는 사업은 어쩌면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기체를 어디에 담을 것이며, 어떻게 흡입할 것인지를 상상하는 것은 재미있습니다. 또 이것과 연계되어 어떤 산업이 뜰지 예상해 보는 것도 흥미롭고요. 그런데 막상 물처럼 공기캔을 사야 하는 미래가 온다니, 슬프기도 합니다. 맑은 물과 공기를 어려움 없이 구입할 수 있는 미래가 아니라, 아무 걱정 없이 공급받을 수 있는 미래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





작가의 이전글 선택을 도와주는 쇼핑,큐레이션 커머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